"아침에 운동하고 왔어요. 매일 하는거라 이젠 중독 수준이에요." 갓 샤워를 마친 듯 뽀송뽀송한 민낯을 뽐낸 장혁이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미소년 이미지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깊이감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다.
영화 '보통사람(김봉한 감독)'은 2017년 현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80년대 대한민국 이야기를 담았다. 그 중심에서 장혁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세 번째 악역을 그려 넣었다.
눈빛은 탁하고 감정은 없다. 느릿느릿한 말투는 현실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캐릭터와 연기에 충실했을 뿐이다.
※인터뷰 ②에서 이어집니다. - 평소에는 정해진대로 생활하는 편인가.
"거의 그렇다. 촬영이 없을 땐 오전 10시쯤 회사에 출근해 신문을 읽는다. 사설만 읽는다. 사설은 사람에 따라 논평이 다르고 기승전결이 다르다. 소리내서 읽다 보면 독백같은 느낌으로 대사 연습, 연기 연습이 된다. 그게 끝나면 근처 복싱장에 간다. 프로 선수들이 운동을 하는데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나를 반성하게 된다. 존경스럽다. 운동이 끝나면 사무실에 다시 들어가 작품 이야기를 좀 하고 퇴근해 아이들과 함께 한다.(웃음)"
- 운동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인가.
"에너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느냐 지느냐를 판가름 할 수 있다. 나를 계속 다듬을 수 있다. 이젠 중독 수준이라 하루도 안 하면 안 된다.(웃음) 그리고 연기에도 큰 도움이 된다."
- 체력적인 면에서?
"기술력이 생긴다고 해야할까. 첫 스파링을 뛸 땐 주먹을 못 내민다. 맞을까봐. 손을 떼 봐야 상대방이 어떻게 오는지 알고, 내가 어떻게 갈지 전략을 짤 수 있다. 개개인마다 템포도 있고 리듬감도 있다. 거기에 맞추다 보면 트레이닝이 된다. 집중력과 끈기가 생긴다. 아주 쉽게는 액션 연기를 할 때 큰 도움이 되고, 일반적인 연기를 할 때도 상대 배우의 리듬감을 파악하기 좋다."
- 이시영은 프로선수로 활약했다. 남다를 것 같은데.
"사실 운동을 같이 했다. 이시영을 키운 코치님이 지금 내가 다니는 체육관의 관장님이다.(웃음) 이시영의 행보는 굉장히 높이 평가한다. 운동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 봤으니까. 훈련과 트레이닝의 무한 반복이다.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이겼다."-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다. 가끔 긴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나.
"계속 복싱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피아노를 많이 친 분은 피아노에 대입해 말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비유로 생각해 달라.(웃음) 시합을 하면 몇 승, 몇 패라는 성적이 남는다. 그리고 몇 번의 스파링을 뛰느냐에 따라 나만의 노하우가 달라진다. 배우도, 연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싸워 본 놈이 싸움도 잘 한다고 많이 경험해 본 사람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하우를 쏟아낼 수 있는 것 같다."
- 연기도 하면 할 수록 좋아진다는 것인가.
"힘을 준 사람이 풀 줄 알고, 맞아 본 사람이 피할 줄도 알고 때릴 수도 있게 된다. 내가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할 때 한 선배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절대 한석규라는 배우에게 연기로 들이대지 말아라' 근데 왠지 들이대 보고 싶더라. 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어디 한 번 눈 뜨고 맞아보자' 싶었고 실제로 많이 맞기도 했다.(웃음)"
- 어떻게 덤볐나.
"술을 마시고 연기를 한 적도 있다. 한 신은 내가 절대 석규 형에게 밀리면 안 되는 신이라 감정적으로 힘들었다. 캔 맥주를 벌컥 벌컥 마시고 들어갔는데 석규 형이 '좋았다'는 한 마디를 해 주시더라. 그 말이 너무 좋았다. 이게 어떤 인정을 받았다는 느낌 보다는 '내가 그래도 저 사람에게 반응은 받았구나' 정도였는데 기쁘더라."
- 일련의 과정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많은 것 같다.
"'내가 이걸 왜 하려고 했지?' '여기서 왜 막혔지?'라는 의문이 들 때 경험과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리고 계속 뚤어 보려는 의지가 지금의 나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현장은 무한하고 언제 어느 작품에서 어떤 배우를 만나게 될지 모른다. 내 중심이 명확하게 잡혀 있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나만의 색깔이 생긴다." - 현장에서 운동을 하는 것도 마인트컨트롤의 일환인가.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기는 하다. 솔직히 현장에 나가면 집으로 가고 싶은 이유가 100가지다. '추워. 어제 몇 시간 못 잤는데' '이 대사가 맞나? 이 캐릭터 오늘은 아닌 것 같아' 등 나를 막으려는 것들이 많다. 근데 왜 이 현장에 있어야 하는지 단 한 가지 이유를 찾으면 꽤 괜찮은 하루를 보낼 수 없다. 설득력이 없었다면 또 다른 것을 찾는다. 그러다 보면 가야 하는 이유들이 더 많아진다."
- 역시 열정은 따를 수 없다.
"아주 어렸을 때 '화산고' 촬영 때인가. 주연 배우에게는 의자를 놓아줬는데 난 거기다가 '열정개척 장혁'이라는 이름을 붙여놨다. 내가 그렇게 써 달라고 했다. 그 땐 열정만 있으면, 힘을 갖고 있으면 그냥 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건방졌다.(웃음) 근데 열정과 내공은 다르더라. 배우도 다듬어져야 하고, 시간을 많이 들이면 들일 수록, 체험을 하면 할 수록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의 열정과 지금의 열정은 좀 다른 것 같다. 지금도 아니까 아는 만큼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면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반대로 교태해 질 수도 있고. 다만 원동력은 늘 갖고있고 싶은 마음이다."
- 한석규와는 한 날 한 시 경쟁을 펼친다.
"한석규 선배와는 동지에서 적이 됐고, 김래원과는 드라마에 이어 영화로도 맞붙게 됐다. 내가 '뷰티풀 마인드'를 할 때 김래원은 '닥터스'에 출연했다.(웃음) 그냥 두 작품 모두 잘 됐으면 좋겠다. 작게 보면 경쟁작이지만 크게 보면 한 배를 탄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어쨌든 한국 영화다. 같이 오래 걸려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