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이거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을 바꿨다. 어차피 만나야 하는 팀들이다." 2017 국제축구연맹(FIFA) U-20(20세 이하) 월드컵 조 추첨을 지켜본 신태용(47) 감독의 소감이다. 신 감독은 "생각해 보면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팀들이기에 자신감을 갖고 (경기에) 나서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한국은 15일 수원 정자동 SK아트리리움에서 열린 U-20 월드컵 본선 조 추첨에서 '남미 강호' 아르헨티나와 '축구 종가' 잉글랜드, '아프리카 다크호스' 기니와 함께 A조에 편성됐다. 바누아투나 코스타리카, 뉴질랜드 등 약체로 분류되는 팀들을 기대했던 신태용팀은 사실상 이번 대회 '죽음의 조'에 속한 것이다. 조추첨식 뒤 믹스트존에서 만난 신 감독은 "조편성 전에는 담담했는데 이렇게 힘든 조가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 조는 일명 '죽의 조'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과 함께 남미 축구를 양분하는 강팀이다.
신·구 '축구의 신'으로 불리는 디에고 마라도나(57)와 리오넬 메시(30·바르셀로나)를 모두 배출한 아르헨티나는 U-20 월드컵 6회 우승으로 역대 최다를 자랑한다. 실제로 이날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가 A조에 편성되자 각국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강팀을 피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잉글랜드 역시 유럽을 대표하는 전통의 강호다. 유럽 최고의 프로축구 리그로 평가받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젊은 선수들이 즐비하다. 또 신태용팀의 개막전 상대인 기니는 1979년 이후 38년 만에 FIFA 대회에 모습을 드러낼 만큼 전력이 베일에 가려진 '미지의 팀'이다.
그럼에도 신 감독은 충분히 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다. 성인 선수가 아닌 청소년 선수들간의 경쟁에서는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성인 선수들에 비해 청소년 선수들은 경기 당일 컨디션과 낯선 경기장 분위기 등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당초 대회 목표를 그대로 밀어붙였다.
신 감독은 "월드컵 목표는 8강 이상으로 잡았기 때문에 1차 목표는 조별예선 통과다. 그 뒤부터는 한 경기 한 경기 결승전이라고 생각하고 잘 준비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어 "월드컵에서 쉬운 팀은 없다. 오히려 강팀과 예선을 치르면서 팀을 잘 만들어두면 토너먼트에서 더 덕을 볼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이날 조추첨자로 나선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은 본지 인터뷰에서 "청소년 수준은 세계 선진국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아 한국도 도전해 볼만 하다. 변수도 많은 청소년 수준은 선수 잠재력의 대결이고 폭발하면 어디까지 갈지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는 이번 대회 예선에서 이름값에 비해 고전하는 모습이었다. 아르헨티나는 이번 대회 남미예선에서는 4위로 통과할 만큼 부진했고 잉글랜드 역시 이번 대회 유럽 예선에서 3위로 휘청했다. 기니도 아프리카 예선 3위로 어렵게 한국행 티켓을 따냈다. 신 감독은 남은 기간 철저한 준비를 강조했다.
그는 "기니는 한 번도 맞대결해 보지 않은 팀이라서 월드컵 개막 이전에 아프리카 팀과 평가전을 통해 적응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월드컵 개막 전에 1~2차례 평가전을 갖고 싶다"고 계획을 전했다. 또 "자신감을 갖고 하겠다. 선장인 내가 자신감을 가져야 선수들도 자신감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상대팀 사령탑들도 양보없는 입심대결을 펼쳤다. 클라우디오 우베다 아르헨티나 감독은 "어려운 조에 속했다"면서도 "대회 목표는 우승"이라고 자신했다. 우베다 감독은 한국에 대해서는 "정보가 많지 않다. 지금부터 차차 준비하겠다"고 했다.
애런 댕크스 잉글랜드 감독도 물러서지 않았다. 댕크스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도전을 즐긴다. 강팀과 한 조에 묶였지만 최대한 좋은 선수들로 팀을 구성해서 돌아오겠다"며 웃었다. 한국에 대해 묻는 질문에는 "한국 선수들은 정신적으로 강한 것은 물론 기술적으로도 강한 팀"이라고 평가했다. 디알루 만디우 기니 감독은 "상대팀이 모두 강한 팀들이지만 기니도 나름대로 강팀들과 싸워서 월드컵 진출권을 따냈다"고 맞받아쳤다.
한국은 U-20 월드컵이 막을 올리는 오는 5월 20일 오후 8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기니와 개막전을 펼치고, 같은 달 2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아르헨티나와 2차전, 같은 달 2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잉글랜드와 최종 3차전을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