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 트로이카 특집인터뷰-3편 안정환]①"가장 큰 상처, '외모 믿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
등록2017.03.03 06:00
K리그 역사는 1998년을 '르네상스'로 기록했다.
1983년 시작된 K리그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황금기. 경기장에는 구름관중이 몰렸고 사상 첫 200만 관중(211만7448명)을 돌파한 영광의 해였다.
르네상스 시작은 'K리그 트로이카' 이동국(38·전북 현대)-고종수(39·수원 삼성 코치)-안정환(41·MBC 해설위원)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2017시즌 K리그 개막을 앞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 시즌이다. 일간스포츠는 올 시즌 개막 특집으로 이들 트로이카와 차례로 만나 1998년 추억을 공유하고, 2017년 희망을 기약했다.
그 마지막 주자는 안정환이다.
"사실 나는 (고)종수와 (이)동국이 혜택을 받았다."
고종수와 이동국이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K리그 흥행을 먼저 이끌었고, 안정환은 마지막 주자로 트로이카에 합류했다.
삼일절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안정환은 "1998년 초반 나는 인기가 없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무명의 선수였다"며 "종수와 동국이가 월드컵에서 활약을 해 주면서 주목을 먼저 받았고, 나는 후발 주자로 함께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후발 주자였지만 파급력은 대단했다. 꽃미남이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그라운드를 질주하자 팬들은 '테리우스'라는 별명을 붙였다. 부산은 안정환으로 뜨거웠다. 1997년 정규 리그 평균 관중 1만1717명이었던 부산은 1998년 2만6995명을 기록했다. K리그 1위였다.
◇ 1998년. 인기만큼 상처도 많았다
- 인기가 어느 정도였나.
"인기가 한 번에 와서 당황스러웠다. 운동장에 그렇게 많은 관중이 올지 몰랐다. 숙소에도 여학생들이 몇백 명씩 찾아왔다. 그래서 숙소를 많이 옮겨 다녀야 했다. 팬레터는 하루에 500통 정도 받았다. 선물이 너무 많이 와서 따로 보관할 곳이 없었다. 구단에서 숙소에 선물 방 하나를 따로 내줬다. 지금으로 치면 아이돌이었다."
- 가장 인기가 많았던 이는.
"1위와 2위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내가 3등이다. 종수와 동국이는 월드컵에서 활약해 더 인기가 많았다. 또 동국이는 실력과 함께 워낙 잘 생겼다. 종수는 꽃미남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실력에서 가장 두드러진 모습을 보여 줬다. 종수 외모는 중요하지 않았다. 당시 왼발잡이가 많이 없었다. 종수의 왼발이 팬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갔다. 새로운 유형의 선수였다."
- 머리카락은 왜 길렀나.
"처음에는 김주성 선배를 좋아해서 따라 길렀다. 이후 숙소 생활을 하다 보니 자를 시간이 없어 그냥 기르게 됐다. 그런데 갑자기 헤어스타일로 주목을 받았고 자르고 싶어도 자르지 못했다. 솔직히 머리카락이 길면 운동하는 데 방해된다. 젖으면 정말 무겁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좋아해 주니 불편했지만 감수했다."
- 머리카락을 많이 뽑혔다.
"머리카락을 정말 많이 잡혔다.(웃음) 여성 팬들이 많이 뽑아 갔다. 동료나 선배가 찾아와 내 머리카락을 요구한 적도 있다. 팬들에게 부탁을 받았다고 했다. 숙소에서 내 머리카락 뽑아 휴지에 싸서 동료들에게 준 기억이 난다."
- 테리우스라는 별명은 마음에 들었나.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좋은 이미지라서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 부산이 관중 1위였다.
"구덕운동장은 항상 꽉 찼던 것 같다. 자리에 앉지 못하자 벤치, 계단에서도 봤다. 운동장에 못 들어오는 팬들은 철조망에 매달려 봤다. 학교 수업을 빠지고 축구장에 온 교복 입은 팬들도 많았다. 그 친구들 공부하는 시간 뺏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 고종수는 MVP, 이동국은 신인상을 받았다.
"당연한 결과다. 두 선수는 월드컵에 기여했던 선수다. 신인상을 내가 받지 못했다고 아쉽지 않았다. 상을 타기 위해서가 아니라 팀을 위해 뛰었다."
- 힘든 점은 없었나.
"감당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다. 낯을 많이 가렸다. 내성적이었다. 사람 눈을 쳐다보고 대화를 하지 못할 정도였다. 인기를 얻고도 눈을 내리깔고 이야기를 하자 건방져졌다는 오해를 받았다. 이런 성격 고치기 위해 상담을 받기도 했다."
- 팀 동료들 눈치도 많이 봤다고.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팀에서 한 명만 유독 인기가 많으면 팀 분위기가 흐트러질 수 있다. 그래서 고통이 많았다. 많이 조심했고 눈치도 많이 봤다.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 가장 큰 상처는.
"외모만 믿고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다. 내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믿어 주지 않았다. 하루에 개인 훈련을 4번씩 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다. 그런데 오직 외모로만 평가를 받았다."
◇ 2017년. K리그는 위기다
- 왜 르네상스는 오지 않나.
"팬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TV를 틀면 EPL 등 유럽 축구가 나온다. 역사가 깊고 수준 높은 유럽 축구를 더 즐기는 것 같다."
- K리그는 투자를 줄이고 있다.
"K리그는 한 사람으로 바뀌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기업 사정도 따져야 하지만 투자 없이는 발전하기 힘들다. 침체기다. 그런데 걱정만 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J리그를 예로 들자면 지코 등 세계적 인선수들을 불러들였고, 그들이 활약하는 사이 자국 스타 발굴에 힘썼다. 그때 등장한 대표적인 선수가 나카타였다. 지금 중국이 똑같이 하고 있다. K리그도 이런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 스타도 없다.
"1998년에는 구단과 언론이 스타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오기가 생겼다. 잘한다고 기사가 나왔는데 못하면 더 욕을 먹었다. 그래서 최선의 노력을 했다. 스타 선수가 있어야 팬들이 오는 건 당연하다. K리그의 좋은 선수들은 해외로 나간다. 그 빈자리를 새로운 스타로 채워야 하는데 K리그는 그것을 하지 못하고 있다. K리그는 선수보다 유명한 감독이 더 많아 안타깝다."
- 구단 직원도 유럽 연수가 필요하다고.
"내가 유럽에 있을 때 한 다른 팀 직원이 6개월 연수 과정으로 구단 운영, 마케팅 등을 배우러 왔다.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비즈니스까지 배우고 돌아갔다. K리그는 왜 이런 것을 하지 않는가. 선수만 유럽에 보낼 것이 아니라 구단 직원도 보내서 선진 축구를 배워야 한다. 이것도 결국은 투자다."
- U-20 월드컵이 계기가 될 수 있다.
"희망적인 것은 한국에서 열리는 U-20 월드컵이다. 큰 국제 대회다.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러야 한다. 20세 선수들이 주목받을 것이고 K리그에서 뛸 수 있는 친구들이다. 이 대회가 터닝 포인트가 됐으면 좋겠다. 많은 스타가 탄생해 K리그 흥행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트로이카 후배 한 명을 꼽는다면.
"작년까지 권창훈을 정말 좋게 봤는데 유럽으로 갔다. 지금은 이재성이 있다."
◇언젠가 축구 현장으로 돌아올 안정환을 기약하며
- 2012년 은퇴 뒤 현장으로 오지 않고 있다.
"지도자 제의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프로팀 제의도 있었다. 하지만 일단 축구를 잠시 떠나고 싶었다. 축구 선수 생활을 하면서 힘든 부분이 많았다. 몸을 만들고 경기를 뛰기 위해 절제된 관리를 해야 했다.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은퇴 후 무조건 쉬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축구를 떠나 당분간은 편하게 살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다.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생활을 하고 싶었다."
- 방송인으로서 승승장구 하고 있다.
"우연히 방송 해설을 하면서부터 방송을 계속하고 있다. 방송을 하다 보니 나도 몰랐던 모습도 나왔다. 보여주기 식, 웃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방송을 하면서 사람들과 친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축구를 평생 해 와서 축구인 외 만나본 기억이 거의 없다. 축구 외적으로 돌아가는 세상도 몰랐다. 방송을 하면서 이런 부분을 많이 배운 것 같다. 세상을 배우고 있다."
- 축구 현장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팬들이 많다.
"준비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도자 자격증 A급까지 땄다. 하지만 지금은 부족하다. 완벽한 준비를 하고 현장으로 돌아오는 것이 맞다. 지도자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선수 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 청춘 FC의 경험은.
"정말 느낀 것이 많다. 지도자는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선수 때 나도 때로는 몰래 감독 욕을 했다. 하지만 청춘 FC를 하면서 후회했다. 감독으로서 고충이 많다. 선수들이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다. 나도 선수 때는 몰랐던 부분이다."
- 축구인 선배들도 현장으로 오라고 한다고.
"(홍)명보, (최)용수 등 선배님들에게 빨리 현장에 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한국 축구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이것을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내가 오면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될 거라고도 했다. 선배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해야 할 일이 분명 있다. 험난하지만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다."
- 언제쯤 현장으로 복귀할 것 같나.
"아마 내가 계속 방송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꾸준히 준비를 하고 내가 확신이 들 때 가는 게 맞다. 지금 예능에 나오다가 갑자기 지도자를 한다면 비웃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 나만의 지도자 색깔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지도자를 할 거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돌아갈 것이다. 나의 전부를 쏟아 부을 것이다.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 - 미래지만 지도자로서 철학이 있다면.
"전술보다는 사람이다. 물론 전술이 중요하고 훈련 방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 마음을 끌어내는 것이 먼저다. 팀이 성적을 내고 멋진 전술을 구사하기 전에 모든 팀 구성원들이 하나로 마음을 뭉쳐야 한다. 전술도 경기력도 인간으로부터 나온다. 전술은 시대에 따라 바뀌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뭉치지 못하면 팀은 망한다. 히딩크 감독님도 사람의 감정을 컨트롤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심리학 박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