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내셔널리그(5부리그)의 서튼 유나이티드와 링컨 시티가 주인공이다. 두 팀은 나란히 2016~2017시즌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5라운드(16강전)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영국 런던에 인접한 인구 4만 명의 소도시 서튼은 여느 영국 지역처럼 축구 열기가 뜨거운 곳이다. 하지만 유럽 축구의 중심인 런던과 맞닿아 있다보니 축구로 주목을 받을 일이 없었다. 런던에는 첼시, 아스널, 토트넘 등 프리미어리그(1부리그) 빅클럽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서튼팬들이 모처럼 어깨에 힘 줄 일이 생겼다. 올 시즌 FA컵에 나선 서튼이 강호들을 차례로 쓰러뜨리고 있다. 지난 12월 4일(한국시간) 대회 2라운드 첼턴햄 타운(4부리그)을 2-1로 잡은 서튼은 지난 달 17일 3라운드 AFC 윔블던(3부리그)을 상대로 재경기 끝에 3-1 승리(8일·1차전 0-0무)를 거뒀다. 서튼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난 1월 29일 벌어진 4라운드(32강전)에서 리즈 유나이티드(2부리그)를 1-0으로 잡았다.
무서운 기세로 전진하는 서튼은 이번 대회 최대 고비를 맞았다. 잉글랜드축구협회가 지난 달 31일 발표한 FA컵 16강전 대진에 따르면 서튼은 오는 18일 홈 구장인 겐더 그린 레인에서 아스널과 맞대결을 펼친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2위에 올라있는 아스널은 FA컵 최다우승(통산 12회·공동 1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자랑하는 강호다.
영국 현지 언론은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을 집중 조명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5부리그 팀 서튼과 빅클럽 아스널의 대결은 FA컵 16강전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서튼 사령탑 폴 도스웰 감독은 아스널과 만나게 된 것에 대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도스웰 감독은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3라운드 윔블던전을 앞두고 선수들과 '결승에 오른 거나 다름없다'고 격려했다"면서 "4라운드 리즈전을 준비하면서 '유럽축구선수권(유로) 결승에 오른 거나 마찬가지'라고 기뻐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그랬던 우리가 아스널과 맞붙게 되니 이건 '월드컵 결승전'과 비교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5리그 팀 링컨도 동화를 써내려가고 있다. 지난 12월 6일 올드햄 어슬래틱(3부리그)을 난타전 끝에 3-2로 잡은 링컨은 지난 달 18일 재경기 끝에 입스위치 타운(2부리그)을 1-0(8일·1차전 2-2무)으로 제압했다. 링컨은 지난 달 29일 브라이튼 호브 앨비언(2부리그)마저 3-1로 꺾고 16강을 확정했다. 서튼과 비교하면 링컨의 상황은 조금 낫다. 링컨은 16강전에서 번리(1부리그)를 만난다. 프리미어리그 12위에 그치고 있는 번리는 아스널보다 한 수 아래다.
나란히 1부리그 팀을 만난 서튼과 링컨이 낙담하기에는 이르다. FA컵과 같은 단기전에서는 종종 '마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부 리그 팀은 정예멤버를 꾸리면서 사력을 다하지만 정규리그를 비롯해 각종 대회를 병행하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1부리그 팀은 컵대회 등에는 팀의 2진급 선수를 내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달 29일 펼쳐진 토트넘과 위컴 원더러스(4부리그)의 32강전만 해도 그렇다. 1.5군을 내보낸 토트넘은 경기 내내 끌려가다 2골을 쏟아낸 손흥민(25)의 활약에 힘입어 간신히 역전승을 거뒀다.
FA컵 16강 대진이 발표되자 영국 축구팬들은 5리그 팀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영국 일간지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한 축구팬은 "아스널이 서튼에 패하는 장면을 꼭 보고 말테다"라는 댓글을 남겼고, 또 다른 팬은 "약팀이라고 우습게 봤다가는 큰 코 다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