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제52회 백상예술대상 전 만난 이준익 감독은 "상은 새 얼굴을 발굴하는 데 의미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동주'가 단 한 부문의 상을 받을 수 있다면, 박정민이 신인상을 받으면 좋겠다고 첨언했다. 그렇게 말한 이준익은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대상을 받았고, 그의 바람대로 박정민은 영화부문 남자 신인 연기상을 수상했다. 10년 전 이준기의 가능성을 미리 알아보고 '왕의 남자'에 캐스팅한 이준익은 '동주'를 통해 박정민이란 진주를 진흙 속에서 끄집어냈다.
백상예술대상 후 한 달 여 만에 박정민(29)을 만났다. 박정민은 "신인상 받은 후 달라진 건 없어요. 알아보는 사람도 여전히 거의 없어요"라면서 웃지만, 더 바빠진 건 분명했다. tvN 사전제작 드라마 '안투라지 코리아'와 정우성·조인성과 함께한 영화 '더킹' 촬영을 병행하느라 인터뷰 시간을 잡는 게 쉽지 않았다. 바쁜 스케줄 탓인지 여름 감기로 고생 중이기도 했다. 하지만 신인상 수상 당시를 떠올리고, 준비 중인 작품 얘기를 할 땐 감기 중인 걸 잊을 정도로 눈빛이 반짝거렸다.
박정민과의 2시간 여 인터뷰를 통해 연기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뜨거운지 확인했다. 연예계에 동명이인도 많고 아직은 인지도도 낮은 편이지만, '동주'를 뛰어넘는 연기와 작품으로 충무로를 이끌 배우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취중토크 공식 질문입니다. 주량은 어떻게 되나요. "소주는 못 마시는데 사케나 위스크, 양주는 한 병까지 마셔요. 맥주는 그냥 계속 마실 수 있고요."
-자주 만나는 술 친구는 누구인가요. "술 자리에서 배성우·김의성·류현경 선배, 고아성 등 영화 '오피스' 멤버들을 자주 만나요. 배성우 형이랑은 술 자리 뿐만 아니라 그냥 평일에 시간 날 때마다 만나서 커피마셔요. 거의 맨날 만나죠.(웃음) 사석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이에요. 하하하. 영화 '파수꾼' 멤버들도 자주 보고, 학교 친구들도 자주 보죠."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 연기상을 수상했어요. 예상했나요. "백상예술대상 후보가 됐다고 연락을 받고 '아 내가 받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근데 후보(고경표·박보검·박서준·태인호)가 공개됐을 땐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저를 제외한 모든 배우들이 다 받을 만한 분들이더라고요." -'동주' 촬영 때 까마귀 떼를 봤다고 시작한 수상 소감이 인상적이었어요. "작년 설날에 윤동주 선생님과 송몽규 선생님 묘소를 찾아간 적 있었는데 그때 30여마리의 까마귀떼가 내 머리위를 돌며 10여분간 울어서 망했다 싶어서 좌절에 빠졌는데 이준익 감독님이 길조라고 했거든요. 만약 상을 받으면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다가 그걸 얘기하고 고마운 분들을 얘기하면 되겠다라고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막상 수상자로 제 이름이 호명되니깐 너무 정신이 없더라고요. 정말 놀랐거든요. 그때 영상을 나중에 다시 봤는데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감독님이 옆에 앉아서 저한테 축하한다면서 뭐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제대로 듣지도 않고 쌩 지나가더라고요.(웃음)"
-5년 만에 신인상을 받아서 부끄럽다는 말도 했죠. "제가 혜성처럼 등장해 단박에 주연을 한 케이스는 아니잖아요. 5년 동안 크게 성과도 없었고, 내가 이 상을 받아도 되나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래서 나온 말이었던 것 같아요. 예전에 '파수꾼'을 같이 한 이제훈 형이 그 작품으로 대종상에서 상을 받을 때 저는 집에서 런닝셔츠 입고 닭발을 먹으면서 TV로 시청하고 있었거든요. 제훈이 형이 턱시도를 입고 상을 받는데 너무 좋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형과 비교되는 내 행색을 보니 초라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제훈이 형을 보면서 부러웠어요. 전 그 이후로 언론사에서 뽑는 라이징 스타에도 한 번도 이름을 올려본 적이 없었거든요. 정말 이렇게 되기까지 '동주'의 힘이 컸다고 생각해요." -시상식장에 부모님이 오셨다고 들었어요. "엄마가 많이 우셨대요. 하도 우니깐 옆에 앉아있던 송중기 씨 중국 팬이 휴지를 다 건네더래요.(웃음) 웃긴 에피소드도 있어요. 제가 이렇게 큰 시상식에 초대받은 게 처음이거든요. 그래서 부모님이 들뜨고, 레드카펫에서 다른 연예인 구경하는 게 신기하셨나봐요. 제가 레드카펫을 다 하고 나서도 계속 팬들과 섞여서 다른 연예인들 사진을 찍는 모습이 어떤 매체 카메라에 포착됐더라고요. 시상식 끝나자마자 엄마랑 아버지가 이준익 감독님께 찾아가서 고맙다고 인사하셨어요. 그 모습을 보는데 울컥하더라고요."
-신인상으로 호명됐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뭔가요. "백상 무대가 엄청 크고 길더라고요. 무대까지 가는 길(런웨이)이 너무 길어서 아무런 생각도 안 들고 그저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본다는 게 창피하고 민망했어요. (천)우희가 작년에 백상에서 신인상을 받아서 올해 시상을 했는데 평소 친한 우희가 상을 줘서 더 좋았어요. 무대까지는 우희만 보고 갔던 것 같아요."
-축하 인사는 많이 받았나요. "정말 많이요. 그 날 하루에 문자만 100통 정도 받은 것 같아요. 충주 고향 친구들과 '동주'팀 형·누나들이 생방송을 다 보고 있었나봐요. 상 받자마자 문자가 엄청 오더라고요. 고향 친구들은 '저XX 수상 소감, 어버버거린다'라고 단체 문자채팅방에서 얘기를 주고 받더라고요. 그게 남자들끼리의 축하 인사죠.(웃음)"
-같은 소속사인 배우 황정민은 뭐라고 하던가요. "축하한다고 잘했다고, 기분 엄청 좋다고 연락왔어요. 정민이 형도 그렇고 소속사 식구들이 다 좋아했어요. 그날 소고기를 같이 먹었죠.(웃음) 이번에 받은 상 덕분에 그동안 같이 마음 고생한 가족과 제 주변 사람들이 뭔가 같이 보상을 받은 것 같아 좋더라고요. 상을 받았다고 갑자기 인지도가 올라가거나 영화 주인공을 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지난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는 것 만으로도 정말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