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민효린(30)은 순백의 원피스에 까맣고 긴 머리칼·동그란 눈동자에 두 손 고이 모아 마이크를 잡고 '스타즈(Stars)'를 불렀다. 이후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항상 도도하고 시크한 모습이었다. 남자들이 말 한 번 걸지 못 할 정도로 차가운 인상이었다.
그랬던 민효린이 변했다. 올초 방송을 시작한 KBS 2TV '언니들의 슬램덩크' 속 차가운 미녀는 없었다. 예쁜 얼굴은 여전하지만 미처 몰랐던 까랑까랑한 목소리와 애교 섞인 행동은 의외였다.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꿈을 이룰 시기를 놓쳐버린 6명의 여자 연예인들이 꿈에 투자하는 계모임 '꿈계'를 통해 서로 돌아가며 꿈을 이룰 수 있게 돕는 과정을 보여준다. 라미란·김숙·홍진경·민효린·제시·티파니가 한 명씩 돌아가며 꿈을 실천한다. 민효린은 두 번째 꿈계주로 나섰고 걸그룹 데뷔를 희망했다. 민효린 소속사 수장인 박진영이 프로듀서로 나서며 결성한 걸그룹은 언니쓰. 박진영이 만든 '셧 업(Shut Up)'이 탄생했고 녹음부터 안무까지 완벽히 짰다. 급기야 지난 1일 '뮤직뱅크' 무대까지 올랐다.
반응은 꽤나 성공적이었고 14일 기준 네이버 TV 캐스트 조회수 370만뷰를 돌파했다. 여느 걸그룹 컴백 무대가 100만뷰를 밑도는 걸 감안하면 '초대박'이다.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첫 진입 2위, 3시간만 1위를 기록했고 '쇼미더머니'·태연 등 대형 가수들의 활약이 돋보였지만 언니쓰는 음원차트 1위에 일주일여 머물며 선전하고 있다. 또한 지난 8일 '뮤직뱅크' K차트서도 6위로 진입했다.
"2007년 솔로로 데뷔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꿈을 실현하고 싶었는데 막상 무대에 오르니 꿈꾸는 기분이었어요. 또 제가 활동하고 마감하더 시기에 소녀시대가 데뷔했거든요. 전국민이 사랑하는 소녀시대 티파니와 한 무대에 선 것도 신기하고요."
걸그룹 데뷔란 꿈을 이뤘지만, 연기에도 욕심은 적지 않다. "10년 동안 예쁜 척 많이 했잖아요. 이젠 원래 성격에 어울리는 배역을 맡아보고 싶어요. 말 많고 쾌활하고 푼수같아도 민효린스러운 역할이요."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빅뱅 태양과 공개 연애 2년째다. 남자친구의 해외 콘서트를 관람하는 모습까지 화제가 될 정도로 둘의 연애는 스케일이 크다. "해외 스케줄이 아니면 자주 만나요. 데이트는 그냥 소소해요. 입맛이 비슷해서 맛있는거 먹으러 다녀요. 딱 그 정도요"라며 웃는다.
언니쓰의 성공적인 데뷔 후 만난 민효린은 그 흥분이 사그라들지 않아 보였다. 원래 하이톤 목소리에 두 옥타브는 더 넘나들며 언니쓰의 두 달과 '말 많은' 민효린의 10년 활동을 들려줬다. 시원하게 비운 맥주잔만큼 솔직하다.
[민효린 취중토크①]에서 이어집니다.
-동영상 조회수 350만을 넘었어요.
"솔직히 350만이라는 수치가 피부에 잘 안 와닿는데 누가 그러더라고요. 6명이 출연한 영화가 전국 관객 350만을 동원한 거라고요. 그렇게 말하니 엄청난 스코어죠.
-영상도 자주 보겠죠.
"음원과 마찬가지로 계속 돌려보고 있어요. 350만뷰 중 제가 본 조회수도 상당할걸요.(웃음) 그렇게 자꾸 보다보니 아쉬운 점도 눈에 더 들어오고요."
-올해 데뷔한 걸그룹 최고 성적이에요.
"푸하하. 진짜 생각해보니 그렇게 되네요. 여자 신인 중 음원 최고 성적이잖아요. 활동 더 해서 골든디스크 신인상이라도 노려볼까봐요.(웃음)"
-1위 공약 지켜야죠.
"그러니깐요. 명동이나 강남역에서 공연 하겠다고 했는데… 다른 멤버들은 지금 외면하는 분위기에요. 혼자라도 해야하나요."
-사실 일회성으로 끝내기엔 좀 아쉬워요.
"안 그래도 '유희열의 스케치북' '열린음악회' 등에서 연락왔다고 들었어요. 아직 정해진 건 없고요. 농담이겠지만 개인적으로 Mnet 쪽에서도 연락이 왔어요."
-멤버들 의견이 중요할 거 같아요.
"'박수칠 때 떠나야한다'고 생각해요. 프로그램이 언니쓰만 하는게 세 번째 꿈계주 프로젝트도 시작해야하니깐요. 중간중간 취지가 좋은 축제나 행사에 특별히 출연하는 건 생각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욕심나는 무대가 있나요.
"아무래도 '유희열의 스케치북'이죠. 마침 유희열 선배님이 피처링해줬고 '슬램덩크' 다음 방송이잖아요. 언니쓰가 나가면 시너지가 생기지 않을까요."
-녹음 중 짜증 못 내더니 유희열 씨 목소리에 바로 반응하던데요.
"연기할 때랑은 또 달라서 짜증이 잘 안 나고 있었는데 유희열 선배님 목소리 듣자마자 저 밑에서부터 확 올라오더라고요. 아마 선배님 없었음 녹음 못 했을 거에요.(웃음)"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땐 어땠나요.
"너무 마음에 드는데 다른 사람들은 정말 좋아할까 생각이 들다가도 정식 음원 발매 전 기사 댓글에 '배터리가 다 됐어' 가사를 막 적더라고요. 모두가 좋아하겠누가 생각이 들었죠. 딱 진영 오빠 스타일이잖아요."
-'셧 업' 컨셉트와 누가 제일 잘 맞나요.
"웃긴 대답이 아니라 진짜 (홍)진경 언니요. 정말 노력도 많이 했고 컨셉트를 제대로 이해하고 소화한 사람은 언니에요."
-누가 중심이 돼 던가요.
"아무래도 걸그룹 경력이 10여년에 가까운 티파니죠. 최고 걸그룹이잖아요. 너무 정확해요 안무 하나 하는 게 다르고 포인트 잡아내는 곳도 기가 막히죠."
-걸그룹이니 식단 조절도 했겠어요.
"으하하 전혀 아니에요. 오히려 더 먹었어요. 다들 평균 연령이 높잖아요. '밥심'으로 움직여야한대서 잘 먹었어요. 새벽에 연습 한창 하고 있으면 매니저들이 정말 단 음료 아이스초코같은 당 보충 음료를 가져다줬어요."
-첫인상은 누가 제일 무서웠나요.
"무섭다기보단 아무래도 미란언니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죠. 배우 선배고 뭔가 카리스마 넘쳐 보이잖아요. 오히려 편안하게 잘해줘요. 언니들이 잘해주지 않았다면 힘들었을텐데 저희가 놀게 자리를 만들어줬어요."
-원래 친분이 있던 사람이 있나요.
"전혀 없어요. 티파니는 그냥 지나가면서 한 번 보는 정도였고 아는 사람을 통해도 잘 모르더라고요."
-서로간 성격은 어떤가요.
"정말 달라도 달라도 너무 달라요. 이렇게 까지 다를 수 있을까 싶어요. 촬영하면 서로 얘기하느라 정신 없어요. 한 명이 나서서 통일돼 얘기한 적이 손으로 꼽을 정도에요."
-싸우기도 하겠어요.
"그렇다고 싸우진 않아요. 그런데 아슬아슬함은 있어요. 모르는 여자들 6명이 모였는데 딱딱 맞진 않겠죠. 그럼에도 서로 협조하고 배려하면서 양보해요. 또 첫만남보다 많이 끈끈해진게 느껴져요."
-음원 수익금을 기부해요.
"오히려 기부이다 보니 대중도 한 번더 듣지 않을까요. 진영 오빠도 이렇게 잘 될 줄 몰랐겠죠.(웃음)"
-본업인 연기자로서 갈증도 있을 거 같아요.
"'슬램덩크'서도 언급했는데 원래 성격과 지금껏 맡은 역할이 너무 달랐어요. 물론 배우니깐 연기를 하며 맞춰 나가는게 직업이 맞잖아요. 이제는 좀 '민효린스러운'걸 해보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죠.
"10여년간 '척'했어요. 도도한 척·말 없는 척 그런 이미지요. '슬램덩크'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절대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그래서 캐릭터 소화에 대한 딜레마가 심했어요."
-이제 이미지 변신이 필요한 시점이네요.
"수다스럽고 발랄한 역할을 하고 싶어요. 항상 분위기로 캐릭터를 설명해야해 힘들었어요. 개인적인 압박도 있었어요. '써니'를 끝내놓고 차기작에 대한 고민이 너무 컸어요. 즐길 줄도 알아야하는데 하나가 끝나기도 전에 다음을 걱정하니 얼마나 불안해하며 살았겠어요. 지금은 달라졌어요. 내일을 모르기에 현재를 즐기고 싶어요."
-'슬램덩크' 후 의외라는 반응이 많겠어요.
"어딜가도 '의외'라고 하니깐 '내가 그 정도였나' 싶었어요. '슬램덩크'를 하면서 이미지 메이킹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10년간 예쁜 척 했으니깐 이젠 '날 것'을 보여주려고요. 수다쟁이·푼수 다 좋아요."
-그동안 예능 섭외가 많았나요.
"제 의외성을 알아본 PD님들이 예능 섭외 러브콜을 많이 했는데 그때는 자신 없었어요. 당시에는 '자신없음 하지말자'였는데 지금은 '잘 하지 않아도 돼'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댓글에 '슬퍼 보인다' '우울해보인다'는게 보이는데 우울하지 않다는걸 말로만 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밝은 모습으로 보여드리려고요."
[민효린 취중토크③]로 이어집니다.
김진석 기자 superjs@joongang.co.kr 사진=김진경 기자 장소=악바리 야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