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현대의 답답하던 공격력이 화끈하게 물꼬를 텄다. 전북은 20일 일본 도쿄도 조후시의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조별 리그 E조 5차전 FC 도쿄와 경기서 3-0 완승을 거뒀다.
올 시즌 전북이 한 경기서 3골을 터뜨린 건 지난 16일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 6라운드 성남 FC전(3-2 승) 이후 두 번째다. 두 경기 연속 3골을 몰아치며 '닥공(닥치고 공격)'의 부활을 알린 전북은 이날 승리로 일본 원정 징크스를 깬 데다 조 1위 자리를 탈환하는 기쁨까지 누렸다. 조별 리그 최종전인 장쑤 쑤닝(중국)전에서 지지만 않으면 조 1위로 16강 진출이 가능하다.
이날 전북은 고무열, 로페즈(이상 26) 등 새로 팀에 합류한 선수들이 제 자리를 찾아 가는 모습을 보이며 안정된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보경(27)의 활약이 있었다. 김보경은 전반 35분 선제 결승골을 터뜨리며 전북 공격의 포문을 열었고, 후반 15분 터진 이재성(24)의 추가골에 도움까지 기록하며 1골1도움으로 펄펄 날았다. 지난 성남 FC전에서 기록한 K리그 데뷔골에 이어 두 경기 연속골이다. 김보경의 축포에 고무된 전북은 그가 골을 넣은 두 경기서 연달아 3골을 터뜨리며 연승을 달렸다. 올 시즌 전북이 치른 11경기 중 3골 이상이 터진 경기는 김보경이 골을 넣은 성남전과 도쿄전뿐이다.
◇결실 맺은 최강희의 짝사랑과 기다림
사실 김보경은 최강희(57) 감독이 그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렸던 전북의 '마지막 퍼즐'이다. 거물급 선수들을 줄줄이 영입했던 지난 겨울 이적시장, 최 감독의 시선은 꾸준히 김보경을 주시하고 있었다. 일본 J리그 감바 오사카 입단으로 마음을 굳혔던 김보경을 직접 설득해 전북 유니폼을 입혔을 정도다. 그러나 상황은 기대만큼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았다.
최 감독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김보경은 시즌 초반 부상을 당해 한 달 가량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다. 이미 이재성이 군사훈련 여파로 정상적인 몸상태가 아닌 상황에서 김보경마저 빠지자 전북의 중원은 급격히 약해졌다. 설상가상으로 허리가 흔들리면서 팀 전체의 조직력도 도마에 올랐다.
묵직한 공격수들을 대거 영입하고도 경기당 1~2골에 그치는 화력은 '닥공'답지 못했다. 개막 직전 상하이 선화(중국)로 이적한 김기희(27)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 수비도 문제였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영입한 파탈루(30)가 아직 적응 중인데다 최적의 센터백 조합을 찾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사방에서 불안과 우려의 시선이 쏟아졌고 최 감독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최 감독은 "4월이 지나고 5월은 돼야 정상적인 경기력이 나올 것"이라며 인내심을 보였다.
최 감독의 말 뒤에는 김보경에 대한 기다림이 숨어 있었다.
김보경은 최전방의 김신욱(28), 2선 공격 자원인 이종호(24)와 로페즈, 고무열(이상 26) 등 새로 전북 유니폼을 입은 공격진과 기존 선수들을 하나로 엮어줄 비장의 카드였다. 빨리 돌아올수록 반가운 선수지만 최 감독은 재촉하지 않았다. 김보경은 지난 3월말 부상에서 복귀했지만 최 감독은 그를 곧바로 경기에 투입하는 대신 100%의 몸상태를 만들게끔 기다려줬다.
그리고 김보경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신을 묵묵히 기다려준 최 감독의 기대에 2경기 연속골이라는 최고의 활약으로 보답했다.
◇김보경, 전북의 램파드·파브레가스될까
정교한 테크닉과 볼 간수 능력, 그리고 넓은 시야와 결정력까지 갖춘 김보경의 플레이는 도쿄전 90분 내내 빛났다. 압권은 역시 선제골 장면이다. 로페즈가 보낸 스루패스를 왼발로 받아 다시 슈팅으로 연결하는 모습에서 기술과 센스를 아낌없이 드러냈다. 김보경이 살아나자 파트너 이재성도 안정감을 되찾은 건 전북에 있어 기분 좋은 보너스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김보경이 부상에서 돌아오면서 김보경-이재성-장윤호(20)로 이어지는 미드필더진이 공격 전개에 가장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김보경에 대해서는 "잘하면 첼시 시절 프랭크 램파드(38·뉴욕시티)나 아스날 시절 세스크 파브레가스(29·첼시) 같은 역할을 해 줄 것"이라고 높은 기대를 보였다.
한 해설위원의 칭찬에는 이유가 있다. 한 해설위원은 "김보경은 빌드업 때 도움을 주고 이동국이 수비수를 끌고 나오면 그 공간에서 자기가 골도 넣을 수 있는 선수다. 빌드업할 때는 메수트 외질(28·아스날) 같고 골 넣는 모습은 램파드 스타일이다. 빌드업은 물론이고 스코어러로서의 장점도 갖춘 선수"라고 그를 램파드에 빗댄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이동국이 앞에 설 때 뒤에서 득점을 보조할 수 있는 자원이다. 그런 면에서는 이재성보다 낫다"며 "성남전과 도쿄전에서 김보경이 보여 준 침투 뒤 연계 플레이는 전북에 있어 최고의 공격 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김보경의 복귀는 전북에 있어 더할 나위 없는 플러스 요소다. 주전 경쟁이 가장 치열한 팀 중 하나가 전북이라지만, 현재로서는 김보경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이 없다. 최 감독이 김보경에 대한 짝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