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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283. ‘토지’의 마을, 악양
우리나라에서 가장 완연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동네는 어디일까. 아마도 경남 하동군 악양면이 아닌가 한다. 젊은 시절 지리산 이곳저곳으로 만행을 떠날 때 ‘악양’은 내가 사랑하는 동네 중 하나였다.
봄날, 악양의 아름다움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다. 악양면 평사리에는 고 박경리 선생의 '토지' 속 최참판댁의 모델인 조씨 고가(古家)가 있다. 아마도 대한민국 땅에 작은 왕조를 건설한다면 이곳 악양이야말로 최적의 땅이다. 악양의 앞으로는 아름다운 남해 바다가 보석처럼 펼쳐져있고 그 뒤로는 지리산이 든든한 병풍을 해주고 있으며, 광활한 들판에는 수만 석의 곡식들이 자라고 있고, 그 사이로는 구불구불 섬진강이 흐른다.
그러나 악양에도 슬픈 역사는 있다. 6.25 동란 당시 빨치산의 주무대가 바로 이곳 악양이었다. 낮에는 지리산에 숨어있던 빨치산들이 밤에는 보급투쟁을 위해 목숨을 걸고 악양으로 내려왔다. 빨치산들의 생각에도 악양은 보급투쟁하기 좋은 동네였다. 들이 넓어 곡식도 풍부했지만 사통발달이라 물자도 구하기 쉬웠다. 게다가 만약 토벌대에 들키더라도 도주로가 많아 어쨌든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20년 가까이 지낸 지인 C씨는 유달리 공산주의 사상을 싫어했다. 군 출신인 그는 북한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빨리 통일해야 한다’며 열변을 토했다. 얼마 전에도 나와 비슷한 이유로 설전이 오갔다.
한참 흥분한 그도 머쓱했는지 “저는 왜 공산주의의 ‘공’자만 나오면 이렇게 흥분하는 걸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를 진정시키며 조용히 말했다. “혹시 경남 하동에 ‘악양’이란 마을을 압니까?” 그러자 그는 손뼉을 치며 “법사님, 그 동네는 제가 전국팔도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봄만 되면 으레 악양을 찾았다. 특히 지리산 형제봉에 올라 악양을 내려다보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고. 내가 ‘이번 봄에는 악양의 모처에 꼭 다녀오라’고 말하자 그는 그 길로 악양으로 내려갔다.
서울로 돌아온 그는 내게 물었다. “참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형제봉으로 오르는 길에 법사님께서 일러준 장소에 갔더니 웬 무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덤 앞에 서니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전생에 악양에 묻힌 겁니까?”
살다보면 분명 처음 간 장소인데, 처음이 아닌 것 같고 어디선 본 것 같은 장소가 있다. 그에겐 하동의 악양이 바로 그런 장소였다. 사람은 죽으면 망각의 강을 지난다. 하지만 망각의 강도 완전히 지우지 못하는 기억이 있다. 봄이 왔다. 올 봄엔 자신의 전생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