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네, 당연히 연기지만, 이게 참 저한텐 씁쓸한 부분인데, 지금 시간이…. (왜?) 학교엘 가봐야 돼서. (몇 시까지?) 5시까지요. 신촌까지…. (시간, 되겠죠?) 네, 씁쓸한 것 중 하나가, 제 안에 그게 들어왔어요. 슬픈 뭔가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이게 쉽게쉽게 커져요. 그게 좀 안타까운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라든가…. 모르겠어요,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도, 초등학교 때부터 일러스트 작가이기도 했었으니까. 책도 몇 권 나왔거든요. (아, 진짜?) 만화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이어서, 브라질에 잠깐 살았을 때도 친구들을 다 그림으로 꼬드겼거든요. 꼬드겼다기보다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어요.
책상에 가면, 애들이 연습장을 한 장씩 찢어서 쌓아놔요. 그려달라고. 걔들은 ‘졸라맨’ 같은 거 그리는 수준이었는데 저는 눈에 막 별 있고 머리 막 휘날리고…. (느낌 아니까~!) 그런 만화 그림 그려준다는 말에 애들이 막 미쳐했거든요. 파일에다 예쁜 편지지를 모으는 게 그 나라 유행이었는데, 그게 자기 재산인 거예요. 서로 보여주고 한 장씩 바꾸기도 하고. 그런 거 모은 애들이 보기에 제 그림은 거의 희한한 수집증을 불러일으키는 거예요. 그러니까 줄을 섰죠.
그때 제가 느낀 건, 아빠가 제 그림을 보고 “지연아, 다 좋은데 왜 자꾸 눈물을 그리냐. 너 그렇게 된다. 하지 마, 눈물 넣지 마.” 제 그림엔 거의 다 눈물이 있었어요. 그래서 “아빠, 눈물 있는 여자가 제일 예쁜데” 이랬어요. 왜 그랬냐. 결론은 별 거 없어요. 눈물은 반짝거리고, 눈물이 있으면 눈이 번지잖아요. 그럼 눈동자가 커지겠죠? 그럼 별이 더 빛나겠죠? 그 미학적인 차원에서 예쁘다는 거였는데 아빤 속상했던 거죠. 저는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그런 걸 갖고 있었나 봐요.
슬픔에 대한 미학? 그런 게 들어가 있던 찰나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래서 제 나름대로는 슬픔이란 게 들어온 거겠죠. 그래서 연기를 할 때도 그 감정이 금방 올라와요, 저는. 하지만 안 될 때는 미쳐요. 안 될 때도 있으니까. 그럴 땐 당혹스러워서 미치는데…. 근데 알에서 깨서 코미디 연기를 하니까 딴 세상인 거예요. 제 성격도 바뀌고 사람들도 저를 좋아하고, 뭐랄까, 연기의 각도 이만~큼 넓어지고. 그러면서 귀신 연기나 눈물 연기는 제가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커요. 물론 너무 잘했을 땐 관객도 느끼겠지만, 제가 먼저 느껴요. 그렇지 않아요?
제가 막 눈물을 흘리고 나면 정화가 되고, “으아아아아~!” 비명을 지르고 나면 이미 저는 스트레스를 푸는 거예요. 그렇게 정화되는 건 되게 좋았어요. 그래서 제가 그런 연기를 좋아했는데, 코미디 연기는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그걸 해냈을 때는 상대방이 먼저 더 좋아해주는 것 같아요. 거기서 전율이 쫙 오는데, 그걸 현장에서 느낄 순 없잖아요, 영화는 미리 찍고 선보이는 거니까. 근데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한 방에…. <도전 1,000곡> 은 저한테 또 하나의 ‘뭐’예요. 몇 년 전에도 <도전 1,000곡> 을 했는데, 노래를 못해서 바로 떨어뜨리더라고요? 근데 다시 또 <도전 1,000곡> 을 한다 그래서 ‘어차피 개망신에다가, 금방 떨어질 걸 왜…?’ 이러면서도 그냥 했어요.
그렇게 가서 뭘 불렀더라? <잘못된 만남> 을 통해 기타를 배웠던 인연이 돼서, 그 선생님이 노량진 학원가 유명한 강사진을 밴드로 만들었는데, 펑크 났다고, 보컬 한번 해보겠느냐고 제안이 왔어요. 두 달을 그렇게, 록이라는 걸 해본 거예요. 그걸 들고 <도전 1,000곡> 엘 간 거예요. 이젠 잘하든 못하든 소리 지르면서 노래하는 애가 된 거예요. 거기서 사람들이 본 제 이미지가 있잖아요. 여리여리하고 여성스럽고 새침데기 같은 애가 딱 있는데, 갑자기 남자들이 부르는 록을 확 해버리니까 사람들 그 자리에서 막…. 저쪽에 앉아 계시던 아저씨 아줌마가 뒤로 넘어간 거예요. 웃다가. 거기서 제가 퓽~! 갔어요. 정말 노래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게, 왜 노래를 잘하면 사람들이 마약까지 하면서…. 그걸 제가 알아버린 거예요. 휙 간 게 있거든요. 연기할 때도 못 느꼈던 걸! <도전 1,000곡> 무대에서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뒤집어지니까 제가 어떻게든 짜내면서 슬픈 연기도 조금씩 나오니까 이럴 땐 이렇게 해야지 하고 마음먹었고….
운 건 연기인데 저는 쉽게 끌어올렸던 거죠. (느껴버린 거네?) 네, 저는 그냥 나와요. 제 친구들이 저 때문에 미친다고 웃을 때가 뭔가 하면, 같이 코미디를 보고 막~ 뒤집어져서 웃다가, 너무 웃는 게 괴로워서 배가 아플 때가 있잖아요? 그럼 아파서 울어요. 에헤헤헤헤! 애들이 거기서 뒤집어져요. 깔깔대고 웃다가 창자가 꼬여서 엉엉 울어요. 그러고 나서 웃어요. 그럼 미친년이잖아요. (그런 친구가 한 200명 중에 한 명쯤은 있죠!) 노래방 가도 슬픈 노래를 하면 애들이 뒤집어져요. 너무 짠하대요. 슬프고 불쌍해 보이는데 웃겨 죽겠다고. 그런 감을 잡고 <도전 1,000곡> 을 했던 거죠. 그게 터지니까 너무 행복했죠. 그 이후로 또 코미디에 꽂혀가지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좋은 거예요.
눈물 연기와 코믹 연기에 대해 이토록 장광설을 늘어놓은 배우는 난생 처음이었다. 답 하나로 A4용지 한 장을 너끈히 넘겼다! ( <남자1호 기네스북> 에 올릴까? 학계에 제보할까?) 더 얘기했다가는 최지연이 학교 가는 것은커녕 내가 집에 못 갈 수도 있겠다고, 좀 과장하면, 그런 위기감까지 들었다. 슬슬 수습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그래서였다. 남자1호>
Q 영화 출연을 한다면 어떤 감독이 불러줬으면 좋겠고, 영화 연출을 한다면 어떤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어요?
A 일단 연출. 제가 호러를 한다면, 심은경 씨는 귀엽고 연기를 잘하니까 당연히 좋아하지만, 제가 항상 좋아했던 배우가 있어요. 서우 씨. 미칠 것 같아요. (왜요? 서우, 되게 비호감 캐릭터로 많이들….)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너무 사랑스러워요. 그 친구는 뭐랄까, 한 가지 색깔이 아니에요. 상처받은 고양이 같아요. (우하하하!) 비에 젖은, 상처받은 고양이. 그래서 한없이 안아주고 싶고 보호해주고 싶은데, 이게 강아지랑은 또 다르잖아요. 상처받은, 비에 젖은 고양이 같아서 그런 도도함을 유지하면서도 너무 귀여워서 항상 동생 같아요.
체구도 약간 아담하고 연기도 잘하고. 또 그 친구는 표독스러운 걸 해도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고. 이 친구를 귀신으로 쓰겠다는 게 아니라, 서우 씨랑 호러를 하고 싶은데 뭐, 할까는 모르겠지만, 제가 써서 제가 원하는 대로 잘 완성돼서 누구한테 주겠냐 하면 아마 (그렇다면 서우?) 네! 지금 써놓은 시놉시스가 있는데 호러로는 안 갔거든요. 그걸 호러로 돌려서 쓰는 과정에, 분명히 서우 씨를 생각하면서 쓸 것 같아요. 연출에 관해서는 그렇고, 제가 배우로서는, 배우로서 인터뷰한다고 “배우가 더 좋아요” 하는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