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시즌을 4위로 통과한 두산이 올 가을 기적을 일구고 있다. 12년째 우승에 목말랐던 선수들의 단합과 항상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코칭스태프의 안목이 만들어낸 예고된 '미러클'이다. 두산은 지난 2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KS 4차전에서 2-1로 승리하며 우승에 1승만을 남겼다. 두산은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2연패 뒤 3연승을 달렸고, 플레이오프에서도 LG를 3승1패로 꺾고 5년 만의 KS 진출에 성공했다. 야구 전문가들은 3주간 휴식해 체력적 우위에 있는 정규시즌 1위 삼성의 우승을 예측했다. 그러나 두산은 예상을 뒤엎고 3승1패로 앞서나갔다.
혼연일체, 하나로 뭉친다
박용만(58) 두산그룹 회장은 29일 서울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가 끝난 뒤 "두산이 5년 만에 KS에 진출했다. 만약 우승한다면 12년 만이다. 9회 말까지 지켜보면 두산의 컬러인 '끈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했다.
박 회장의 말처럼 두산 선수단은 이번 가을 내내 특유의 끈기와 단합을 자랑했다. 홍성흔·오재원·이원석 등 주전 야수들이 부상으로 빠진 지난 KS 4차전에서는 허경민·김재호·오재일 등 1.5군 선수들이 전면에 나서 팀 승리를 이끌었다. 다친 선수들은 벤치에 앉아 열심히 파이팅을 외쳤다. 오재원은 4차전 승리가 확정되자 제일 먼저 그라운드로 뛰쳐 나가 동료들을 반겼다.
두산은 2001년 마지막 우승 후 12년 동안 만년 우승 후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두산의 한 선수는 "우리 선수들은 늘 우승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있다. 주전과 비주전을 떠나 올해만큼은 꼭 우승컵을 갖겠다는 분위기가 팀 전반에 형성돼 있다. 경기에서 지고 있어도 왠지 이길 것 같다"고 했다. 김진욱(53) 두산 감독은 이를 '혼연일체'라고 표현했다. 그는 "선수들이 이기고자 하는 집중력과 책임감이 강하다. 두산 캐치프레이즈처럼 다들 '혼연일체'가 됐다"고 말했다.
'플랜B'를 생각하는 선견지명
두산 코칭스태프는 내야수가 줄부상에 시달려도 동요하지 않았다. 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왔기 때문이다. 황병일(53) 두산 수석코치는 "우리 팀은 늘 플랜B를 갖고 있다. 스프링 캠프 때부터 내야수와 외야수가 서로 위치를 바꿔가며 펑고 수비 훈련을 했다. 분위기 전환 효과와 함께 이번 KS처럼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훈련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종욱과 정수빈은 외야수이지만, 수준급 내야 수비가 가능하다.
선수들은 멀티 플레이어를 자처한다. 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부상 공백을 메울 자신이 있다. 좌익수인 김현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1루, 3루, 포수, 투수까지 봤다. 이번 KS에서 빈자리가 생기면 내가 채울 준비가 됐다"고 했다. 3차전 선발로 나서 52개를 던졌던 유희관은 "4차전에 계투로 나가도 잘 던질 자신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원년 '베어스' 팬인 정운찬(66) 전 국무총리는 "지금까지 정규시즌 4위 팀이 우승을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것이 스포츠의 묘미다"라고 했다. 만년 우승 후보 두산이 프로야구 절대 강자 삼성을 꺾는 순간을 기다리는 팬이 많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