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초반 투수들의 볼넷이 프로야구 경기력 저하를 부추기고 있다. 볼넷이 야구 열기에 찬물을 끼얹을까 우려된다.
지난달 30일 시즌 개막 후 9개 구단 투수들은 볼넷을 남발하고 있다. 4일까지 열린 20경기에서 총 174개의 볼넷이 나왔다. 경기당 8.70개. 고의 4구와 몸에 맞은 공까지 더한 사사구 수치는 평균 10.80개까지 올라간다. 2012시즌과 비교하면 볼넷은 6.95개에서 2개, 사사구는 3개 가까이 늘었다.
경기력 저하 요소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볼넷이 가장 치명적이라는 평가다. 볼넷 증가는 경기의 흥미를 반감시키고 관중이나 동료들의 맥이 탁 풀리게 한다. 집중력을 떨어뜨려 수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수비 시간이 길어졌을 때 실책도 자주 나온다.
◇"프로가 아니라 동네야구"
지난 3일 넥센과 LG의 목동 경기는 볼넷 전쟁의 결정판이었다. 넥센 투수들의 볼넷 남발에 LG는 전광판 사사구 박스에 10개를 뜻하는 A를 새겼다. LG 투수들도 볼넷 7개를 허용했다. 양팀 투수의 집단 제구력 난조로 경기는 4시간을 훌쩍 넘겨 밤 10시42분에야 종료됐다. 최종 스코어 14-8(LG 승)만 보면 '화끈했겠다'고 할 수 있지만 타자가 잘 쳤다기보다 투수가 못 던진 이유가 더 컸다.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 넥센 팬은 "동네야구의 전형을 보여줬다"고 했고, 다른 팬은 "이건 프로 경기가 아니다. 선수단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몇몇 LG 팬들조차 "이겼는데 기쁘지 않다"고 했다. 승장 김기태 LG 감독이 "팬들이 추운 날씨에 경기 보시느라 고생 많으셨다"고 위로의 말을 전했을 정도로 내용이 안 좋았다.
볼넷 남발은 두 팀만의 얘기가 아니다. 롯데와 KIA를 뺀 나머지 6개 구단이 지난해와 비교해 볼넷이 늘었다. 한화가 5경기에서 32개를 허용해 최다를 기록 중이고 그 다음이 30개의 넥센이다. 넥센은 지난해 같은 기간 11볼넷을 줬는데 3배 가까이 늘었다. 한화의 볼넷 증가폭도 2배가 넘는다. 개막 후 연패도 무더기 볼넷이 크게 작용했다.
◇재미 없으면 팬들도 등 돌린다
김응용 한화 감독은 볼넷 남발의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젊은 선수들의 자신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게 다 실력이 부족하다는 뜻 아니겠는가." 투수의 실력은 곧 경기력과 직결된다. 투수가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지지 못하면 팽팽한 투수전도, 화끈한 타격전도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경기가 쌓이면 결국 프로야구의 수준은 내려간다.
볼넷 증가에 따른 경기력 저하를 논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최상덕 넥센 투수코치는 "시즌 초반이라 투수들의 실전 감각이 떨어져 있어 이런 경기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한 심판원도 "이제 팀당 4경기씩 했다.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섣부른 판단을 경계했다.
프로야구는 지난 시즌 초반과 비교해 관중이 줄었다. 볼넷 남발은 이런 흐름을 지속화하는 촉매가 될 수 있다. 3일 넥센-LG전을 두고 한 야구 팬은 "정말 민망하다. 저런 경기를 본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