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에타'의 김기덕 감독을 바라보는 국내 각계의 시선이 확 달라졌다. 그동안 김기덕 감독은 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영화감독'으로 불렸던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이단아라는 수식어와 함께 홀대를 받았던게 사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주요부문 상을 휩쓸며 예술성을 인정받고도 모국에서는 여전히 '불편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데,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피에타'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후부터는 상황이 변했다. 국내 각 영화시상식에서 주요부문 수상후보에 오르는가하면 문화계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부터 초대를 받는 등 '황금사자상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대종상 6개 부문 후보, 영평상 3개 부문 수상
현재 '피에타'는 한국영화평론가협회가 주최하는 영평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을 포함해 감독상과 여우주연상 수상까지 확정된 상태다. 주요 3개 부문을 휩쓸어 눈길을 끌었다. 다음달 7일 열리는 시상식에서 김기덕 감독과 조민수에게 상이 수여될 예정이다.
30일 열리는 대종상에는 무려 6개부문 후보에 올랐다.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및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등 주요 부문 전체에 이름을 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 국내 영화상 시상식에서 이 정도로 많은 부문에 오른 예가 없다는 점을 감안할때 확연히 달라진 입지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 국내 유명 영화상 시상식에서 주요부문 상을 받은건 2003년 청룡영화제가 유일하다. 당시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최고상인 작품상을 수상했다. 김감독이 데뷔한 이후 처음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이 영화의 제작사 이승재 대표도 예상치못했던 일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무대에 올라 "열심히 좋은 작품 만들다보니 이런 일도 다 생긴다"면서 감개무량해했다.
이후 '사마리아'(04)가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을, '빈집'(04)이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했지만 국내에서는 해외에서 거둬들인 성과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해외에서만 통하는 감독'이라는 벽만 더 단단해질 뿐이었다. 2009년 '비몽'으로 영평상 감독상을 받는 등 간간히 주목받은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건 처음이다.
▶충무로 영화인들과의 벽도 무너져, 대중도 친숙하게 다가와
충무로 영화인들과 김기덕 감독 사이에 존재하던 '보이지않는 벽'도 허물어졌다. 앞서 충무로 영화인들에게 있어 김기덕은 '다른 존재'로 인식됐다. 일반적인 영화제작 방식의 틀을 깬 것 뿐 아니라 타협없이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독불장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김기덕 감독 스스로도 '자본의 논리'에 희생당하고 있다는 피해의식 때문인지 충무로에 섞이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충무로 영화인들이 김기덕 감독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다. 김기덕 감독을 불편하고 어색하게 여기던 이들이 '오랫동안 알았던 사이'처럼 편하게 인사를 건넨다는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내려갔을때도 많은 영화인들이 김기덕 감독을 반갑게 맞이하며 함께 어울리고 싶어했다. 김기덕 감독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잘 나타나지 않던 상업영화 시사회에도 자주 모습을 보이며 충무로 관계자들과 자연스럽게 교류를 하고 있다.
대중의 인식 역시 달라졌다. 20대부터 50대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시민들이 김기덕 감독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다가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볼수 없었던 광경이다.
각계에서 밀려오는 '초대'를 거절하는 것도 '일'이 됐다. 대학 및 기업과 협회 등지에서 특강 및 만남을 제의하는 일이 많아 애를 먹고 있다. 상대가 기분 상하지 않게 정중하게 거절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는 후문이다.
김기덕 감독의 한 측근은 "황금사자상 수상이 국내에서 김감독의 위치를 재정립시켜주는 계기가 된 건 확실하다.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던 이들도 김감독의 예술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서 "차기작에 투자제안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 때문에 항상 하던 것처럼 힘이 닿는 한 직접 제작하겠다는게 김감독의 뜻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