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한민국에 나타난 가장 강력한 콘텐트는 '대장금'이 아닌가 싶다. 드라마가 그 중심에 있지만 '대장금' 신드롬을 완성한 건 애니메이션 '장금이의 꿈'이었다.
'대장금'의 애니메이션판인 '장금이의 꿈' 제작 프로젝트가 시작됐을 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투자에 나섰다. 드라마에서 보여주지 못한 부분을 애니메이션으로 새롭게 만들어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희원엔터테인먼트 MBC와 함께 나는 공동투자를 했다.
'대장금'은 역사물이긴 하지만 완전히 창작한 이야기다. 역사적으로 장금이란 인물이 수라간을 거쳐 최고의 의녀가 됐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드라마를 통해 전국민의 뇌리에 장금이란 인물이 각인됐다. 나는 장금이란 인물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역사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사실만 역사라고 국한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2005년 10월 '장금이의 꿈'이 MBC를 통해 전파를 탔다. 명랑생각시 장금이 팔도를 돌며 요리비법을 전수하는 과정을 그리는 것으로 이야기를 압축했다. 여기서 스토리텔링의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드라마에서 나타난 의녀로서 장금이의 모습은 생략했다. 실제로 2007년 제작된 뮤지컬 '대장금'은 드라마의 긴 스토리를 무대에서 다 늘어놓다가 좋은 평을 얻지 못했다. '장금이의 꿈'은 다양한 궁중요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식이 곧 한류가 아니겠는가. 기획단계에서부터 원작의 명성에 짓눌릴 수 있었지만 제작진은 부담을 잘 극복했다.
'장금이의 꿈'이란 제목이 상징하는 바가 크다. 그냥 원작의 제목을 쓰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었지만 애니메이션이 추구하는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새로운 제목을 찾았다. 내가 드라마 '대장금'에서 찾은 것은 장인정신이었다. 주인공이 어려운 상황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모습은 바로 내가 평생 추구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래서 '장금이의 꿈'이란 제목을 달고 어린이도 함께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장금이의 꿈'은 일본·중국·미국·태국·이란·홍콩·터키·베트남·요르단 등 모두 15개국에 수출됐다. 제작 전부터 일본 NHK 편성이 확정돼 있었기 때문에 투자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대장금'과 '장금이의 꿈'은 음식이란 전문 소재를 대중작품으로 꽃피워낸 사례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도 결국 그 영향으로 만들어진 드라마가 아닌가 싶다. 그 전에는 애니메이션에서 무조건 배틀(대결) 형식만 통했다면, '장금이의 꿈'은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음식이나 요리란 소재를 갖고도 흥행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장금이의 꿈'이 있지만 앞으로도 궁중요리를 소재로 한 새로운 애니메이션이 개발될 여지가 크다고 본다. 소재를 확대·해석하는 표현력만 뒷받침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