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열릴 예정이던 LG와 두산의 잠실라이벌전이 우천 순연으로 결정되자 박종훈 LG 감독과 김광수 두산 감독대행은 부슬비 내리는 그라운드에서 한참 얘기를 나눈 뒤 헤어졌다. 여유로운 박 감독의 얼굴과 진지한 김 대행의 표정이 대비됐다. 나란히 5,6위를 달리며 4위 롯데를 추격하고 있는 동병상련의 처지지만 이틀 연속 경기를 저지한 비를 바라보는 심정은 상반됐다.
비가 고마운 LGLG에게는 하루가 멀다하고 내렸던 올해 비 중에서도 이번 이틀간의 비가 가장 반갑다. 끓어오르던 팬심을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LG는 이번 두산과 맞대결을 앞두고 폭풍전야와 같은 분위기였다. 후반기들어 무기력한 경기를 하면서 5위로 떨어져 9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 꿈이 다시 수포로 돌아갈 상황에 처하자 팬들이 폭발 진전까지 갔다.
잠실구장 앞에서 지난 8일 10여 명의 팬들이 선수들의 분전과 감독 청문회를 요구했고 14일 롯데전 패배 후에는 시위 군중이 수 백명으로 늘었다. 급기야 박종훈 감독이 16일 구단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런 와중에 라이벌 두산과 맞대결은 여간 부담이 아니었다. 시즌 전적 5승5패. 3연전 선발투수는 김성현, 김광삼, 주키치로 김선우, 니퍼트, 김승회가 나설 두산에 한참 밀렸다. 팬들은 '두산과 3연전에서 밀리면 단체 행동에 나서자'며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비 때문에 일단 두 경기를 피해간 셈이다. 게다가 4~5선발급인 김성현, 김광삼을 건너뛰어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는 주키치 카드로 맞설 수 있게 됐다. 23일 박현준이 복귀하기까지 한 경기라도 피해가는 게 상책. 주말 삼성전을 대비해 힘을 아끼는 효과도 봤다.
비가 너무한 두산우천 순연 결정과 동시에 두산 관계자는 혀를 찼다. "이러다 신기록 세우겠네." 벌써 24번째 우천순연. 넥센과 함께 가장 많은 경기를 비때문에 뒤로 미뤘다. KIA보다는 16경기나 덜 했다. 이제 한 시즌 최다 우천 순연 기록(2006년 롯데 28경기)에 4경기 차로 다가섰다. 요즘같은 날씨면 기록 경신은 시간문제다.
시즌 중반까지는 일단 급한 비는 피해가는 게 낫다며 연이은 우천 순연을 환영했다. 그러나 이제는 도를 넘어섰다. 이러다가는 9월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경기를 해야 할 판이다. 그래도 10월까지 넘어가는 게 불가피하다. 더블헤더를 해야할 수도 있다.
두산은 아직 4위를 포기하지 않았다. 롯데와 7.5경기차를 좁혀야 하는데 이런 빡빡한 일정은 전혀 유리할 게 없다. 니퍼트, 김선우 외에는 확실한 선발투수가 없는 두산으로서는 더욱 그렇다. 일단 이번 LG와 3연전에서 선발진의 우위를 통해 위닝시리즈로 추격의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던 계획부터 틀어졌다.
김동환 기자 [hwan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