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전국남녀스프린트 빙상선수권대회. 여자 1000m 1차 레이스(1분20초13)에서 무명의 여고생 선수가 밴쿠버겨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상화를 제치는 파란이 일어났다.
주인공은 당시 16세의 국가대표 후보였던 김현영(사진·17·서현고). 김현영은 다음 날 2차 레이스에서 이상화에 1위 자리를 다시 내줬고 대회 종합에서도 이상화에 이어 2위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혜성 같이 등장한 김현영의 존재감은 빙상계를 놀래키고 있다.
김현영은 올해 4월부터 ‘후보’딱지를 떼고 정식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국가대표 스피드스케이팅팀의 막내로 태릉에 입소해 현재는 하계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김현영에게 2018 평창겨울올림픽 유치의 소감을 묻자 “‘평창까지 이제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기대도 되지만 동시에 못 하면 어쩌나하는 부담감도 있다.
지금부터 차근히 쌓아나가 꼭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밝혔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 마냥 들떠 있을 수 있는 나이였지만 김현영의 말에선 책임감과 무게가 느껴졌다.
김현영이 스케이트화를 처음 신은 건 초등학교 6학년 때.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출신인 이모부 오희완씨의 손에 이끌려 얼음을 지치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 검도, 발레 등 안 해 본 운동이 없었지만 스케이트를 제일 좋아했다.
김현영은 “처음부터 선수할 생각은 없었는데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새 선수가 돼 있었다”며 “밴쿠버겨울올림픽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금메달이 쏟아지니까 사람들 관심이 폭발적이더라. 언니 오빠들이 정말 부러웠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러나 막상 기회가 왔을 때 김현영은 주춤했다.
올해 초 잠시 국가대표 마크를 달고 네덜란드 헤렌벤에서 열린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 참가했지만 성적은 저조했다. 대회 이후 태극마크도 반납했다. 김현영은 “그런 큰 대회에 나간 게 처음이라 준비가 잘 안 돼 있었다” 고 말했다.
절치부심한 김현영은 다시 도약했다. 지난 4월 국가대표선발전에서 단거리 부문 3위를 차지해 당당히 태릉에 입성한 것.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 훈련을 받자 김현영의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김현영은 “국가대표 언니 오빠들을 보니 ‘확실히 다르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누가 시키기 않아도 몸 관리 등 자기관리가 정말 철저했다”고 전했다.
그런 선배들을 보며 자신도 점점 단단해져 갔다. 김현영은 “예전엔 몸이 좀 안 좋으면 ‘꼭 해야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아프다'고 말하고 훈련이 빠진 적도 많은데 지금은 다르다. 훈련에 절대 빠지지 않으려 한다”며 다부지게 말했다.
대표팀 선배 이상화와의 관계에 대해선 “처음엔 언니가 나를 견제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했는데 언니는 전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아직은 라이벌이 아니라 내가 많이 배우는 입장이다”라며 겸손해 했다.
그래도 메달에 대한 욕심만큼은 숨기지 않았다. 올해 목표는 "500m 기록을 39초 대에 안착시키는 것”이라고 밝힌 김현영은 “아직 큰 대회에서 입상한 적이 없다. 세계 대회에 나가 메달을 딴 다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일 거 같다. 꼭 (메달을)갖고 싶다”라며 10대 다운 패기를 드러냈다.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팀 윤의중 감독도 김현영의 가능성을 높이 샀다.
윤 감독은 “아직은 체력이나 순발력 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면서도 “지금부터 꾸준히 훈련한다면 국제 대회 입상이 가능하다. 특히 평창겨울올림픽이 열리는 2018년엔 김현영이 기술적으로도 완숙기에 접어들 시기이기 때문에 금메달을 노려볼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