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어울림 ①] ‘의기소침했던 우리 아이, 축구 덕에 달라졌어요’
‘3월 16일’은 인천 석남서초등학교에 다니는 신재민(10·가명)군이 손꼽아 기다린 날이다. 오전 10시 20분. 2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승용차를 타고 교문 밖으로 나섰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포스코파워 신석체육공원 풋살구장. 최진태 인천유나이티드 유소년팀 감독과 이강선 코치가 재민이를 반갑게 맞는다. 겨우내 기다렸던 체육시간이다. 재민이와 함께 온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간다. ◇ 공 들고 훌라후프 통과하기도 쉽지 않은 아이들. 이날은 석남서초등학교 특수학급(발달·지적·학습장애) 어린이들의 1학기 첫 체육수업이 열린 날이다. 재민이는 지적장애 3급(지능지수와 사회성숙지수가 50 이상 70 이하인 사람으로 교육을 통한 사회적, 직업적 재활이 가능하다)이다. 특수학급 아이들 7명은 한 달에 한 번 이곳에서 따로 체육 수업을 받는다. 지난해에 시작해 올해로 2년째다. 수업이 시작된다. 보조교사와 함께 훌라후프를 통과하고 고깔을 뛰어 넘는다. 유치원 아이들도 곧잘 따라하는 간단한 동작이다. 특수학급 어린이들에게는 쉽지만은 않다. 장애등급에 따라 아이들의 수준은 천차만별. 6학년 박은수(가명)양은 모든 동작을 어려움 없이 해낸다. 이날 처음 참석한 김병석(가명)군은 금세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이다. 병석이처럼 발달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은 낯선 것, 특히 뛰는 것을 싫어한다. 이 코치가 가까이 다가가 달랜다. 잠시 후 눈치를 보며 친구들의 동작을 흉내낸다. 30분쯤 수업이 진행되자 어색함은 사라졌다. 제법 쌀쌀한 날씨였는데도 아이들은 3대 3 미니게임까지 훌륭히 소화해냈다. ◇ 안전 문제 때문에 체육 시간 소외, 장애 아동들에게는 악순환. 그동안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체육 시간 종종 소외됐다. 안전 문제 때문이다. 장애 아동이 또래 아이들과 뛰다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대부분 피하기 급급하다. 철봉, 뜀틀 넘기. 장애 아동들은 체육 시간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만히 두면 사고는 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수준에 맞는 체육 수업을 진행할 전문가와 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하다. 석남서초등학교 특수반 담임을 맡고 있는 정재영 선생님은 지난해까지 이 문제로 고민이 깊었다. 국어나 수학은 맞춤형 수업을 진행할 수 있지만 체육 수업은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체육 수업에 소외된 아이들은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 인천 유소년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특수학급 수업에 인용 지난해 3월 정 선생님은 인천 유나이티드(이하 인천)의 유소년 축구 클리닉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인천을 연고로 한 시민축구단 인천은 2007년부터 유치원생들을 대상으로 무료 축구클리닉(연간 41개 유치원, 원당 10회)을 실시하고 있다. 이진택 인천 운영팀장은 “인천은 시민구단이다. 시민의 사랑이 없다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돌려드릴 방안을 찾다가 유소년 무료 축구 클리닉을 생각해냈다”고 말했다. 인천에는 최 감독을 비롯한 20명의 유소년 지도자들이 있다. 인천 지역 유치원 등을 직접 찾아가 아이들과 땀을 흘린다. 석남서초등학교와 붙어있는 석남유치원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정 선생님은 유소년 클리닉을 보고 '저 정도면 우리 아이들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에 특수학급에도 같은 수업을 해달라고 부탁했다.인천은 회의를 열었다. 지금까지 프로 스포츠단에서 지역의 장애아동을 위해 축구 클리닉을 열었던 적은 없었다. 머리를 모아 하나 둘 우려되는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넓은 학교 운동장 대신 풋살 구장을 수업장소로 결정했다. 골대에는 보호덮개를 달았다. 여러 종목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축구 한 종목을 지속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이들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교육 프로그램은 4~6세 수준으로 맞췄다. ◇ 달라진 아이들 - 발달장애 어린이 자폐 성향 눈에 띄게 줄어. 첫 수업은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기대를 안고 수업을 보러 왔던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만 안고 돌아갔다. 하지만 수업이 반복되며 아이들은 변하기 시작했다. 의기소침했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발달장애 아이들의 경우 자폐 성향이 줄었다. 정 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은 자기 중심적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편이다. 체육 수업 이후 규칙과 약속을 지키는 법, 친구들과 협동, 경쟁하는 법을 몸으로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졸업한 한 아이는 미술시간 가장 즐거웠던 기억을 그려보라는 선생님의 말에 축구 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동안 억눌린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또래 여자 아이들을 괴롭히던 한 지적장애 어린이는 축구 클리닉이 시작된 뒤 말썽이 부쩍 줄었다. 입소문이 나며 통합교육을 하는 다른 초등학교에서도 인천에 축구 클리닉을 부탁했다. 올해는 석남서초, 가좌초 등 3개교로 대상이 늘었다. 최 감독과 이 코치는 요즘 독일 등 선진국의 특수 교육 프로그램을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들의 작은 변화가 있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는 이들. 최 감독은 “아이들이 뛰어 놀다가 다칠 것을 두려워하다가는 병을 키울 수 있다. 아직은 장애 아동을 위한 운동기구, 프로그램이 부족하다.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천=이정찬 기자 [jaycee@joongang.co.kr]
2011.03.20 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