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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 여제' 김가영 "3쿠션 선수의 길, 이제 시작일 뿐…조금씩 더 성장하고 있다" [IS 인터뷰]

“제 나이에 ‘시작’이라는 말,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당구 여제’ 김가영(41·하나카드)은 자신의 3쿠션 커리어를 ‘시작’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프로당구 남·여 최초의 4회 연속 우승에 최다 우승(11회), 그리고 최다 연승(24연승) 신기록까지. 2019년 프로당구 출범 이후 그야말로 새 역사를 거듭 써 내려가고 있는데도, 3쿠션 선수로는 스스로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최근 경기도 고양시의 개인 연습실에서 만난 김가영은 “3쿠션 선수로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3쿠션을 제대로 친 지 이제 3~4년 정도밖에 안 됐다. 그래서 사실 아직 목표도 없다. 포켓볼은 너무 잘 아는 종목이니까 계획이 그려졌다면, 3쿠션은 아직 청사진을 못 그리겠다. 그저 선수로서 올인할 뿐”이라고 말했다.그러면서 김가영은 “이 나이에 성장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좀 그렇지만, 3쿠션 선수로 조금씩, 또 한 스텝씩 잘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김가영 천하’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의 프로당구 3쿠션 무대에서 눈부신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지만 최정점에 오른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가 써 내려가고 있는 프로당구 3쿠션 대기록들은 그래서 더 대단하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기대감 역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4구 2000점' 목표로 시작된 김가영의 당구 인생실제 30년 가까운 김가영의 당구 인생에 3쿠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일부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운영하던 당구장에서 자연스럽게 당구를 접했다. 처음 접한 건 4구였다. 김가영은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다. 아버지께 매일 1~2시간씩 레슨을 받았다. 400~500점을 치면서 2000점을 목표로 삼았다. 특기 정도로 만들어놓으려 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목표가 바뀌었다”고 했다.당시 한국계 미국인 포켓볼 선수 자넷 리(미국)의 방한이 화제가 되고, TV 광고도 찍는 걸 보면서 자연스레 김가영의 시선이 쏠렸다. 공부보다 당구에 더 흥미를 느끼며 당구 선수의 길을 고심하던 그는 4구로는 먹고살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포켓볼 선수로 전향을 결심했다. 그리고는 포켓볼 선수로 정식 등록해 본격적으로 당구 선수의 길을 걸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김가영은 “사실 당구 재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비교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처음 선수로 등록했을 때 바로 윗 선배도 20대 중반이었다”며 “자넷 리를 보면서 미국에서 프로 하면 되게 좋은가 보다라는 막연한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4구 2000점에서 포켓볼 세계 챔피언으로 목표가 바뀌었다”고 했다.본격적으로 당구 선수의 길을 걸으면서 혹독한 훈련도 받았다. 유도선수 출신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일반 남자 운동부처럼 매일 훈련했다. 오전에는 유산소 운동을 하고 낮에는 수업을 받았다. 오후에 당구 훈련을 하다 훈련이 끝나면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여중생인 김가영에게는 특히나 힘든 시간들이었다.김가영은 “제 인생에서 제일 고통스러웠던 5년이었다. 훈련을 혼자 다 버텨내야 하니까 기댈 곳도 없었다”며 “남자 선수들도 그렇게 안 하는데, 매일 아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뛰거나 사이클을 타야 했다. 꾀를 부리거나 성실하지 않으면 혼도 났다. 당시엔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매일이 괴로웠다”고 돌아봤다.그러면서 김가영은 “다들 10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절대 아니다.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서도 “다만 결과적으로 당시 경험들은 뒤에 있었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발판이자 밑거름이 됐다. 어떤 일을 겪더라도 그때보다는 고통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포켓볼 세계 챔피언에게 찾아온 첫 번째 시련혹독한 훈련 속 김가영은 각종 대회를 휩쓸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대만 국적이던 아시아당구연맹 회장의 권유로 고교 졸업과 동시에 대만 무대로 향했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대만행을 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김가영은 “(처음 제안을 받고) 무조건 가겠다고 했다. 고된 훈련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하나, 그리고 또 하나는 류신메이(대만)라는 선수의 존재였다”며 “유일하게 테크닉에 반했던 선수이자 우상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쯤 만났을 때, 단 한 번의 실수로 역전패를 당했던 적이 있다. 한국에 있으면 1년에 한 번을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몰랐다. 그래서 대만에 가서 다시 붙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갈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언어도 통하지 않는 혹독한 환경 속 김가영은 오롯이 포켓볼로 승부했다. 남다른 승부욕 속 류신메이에게는 설욕도 성공했다. 대만 진출 이후 6개월 만에 처음 류신메이를 이겼고, 1년 정도 지난 뒤엔 승률이 비슷해졌다. 2년 가까이 된 시점엔 오히려 류신메이보다 승률이 더 높은 선수가 됐다. 세계 챔피언의 영예도 안았다. 2004년과 2006년 잇따라 우승해 세계랭킹 1위 자리까지 올랐다. 세계 최초로 포켓볼 그랜드슬램의 역사도 썼다.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도 나섰다. 2006 도하(카타르) 아시안게임에 나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가영은 “아시안게임 전에 한 나라에서 귀화 제의도 받았다. 훨씬 좋은 조건이었는데 한 마디로 잘랐다. 미국에서 시민권을 딸 기회 역시 신청조차 안 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고 했다.그러나 대만에서 김가영은 결국 외국인 선수였다. 김가영의 실력이 급증한 건 곧 대만 당구계의 시기와 질투로 이어졌다. 특히 도하 아시안게임 직후엔 황당한 이유로 대만당구협회로부터 자격정지 징계까지 받았다. 대만과의 경기에서 한국 선수단의 요청으로 잠시 통역을 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김가영은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아시안게임 때 통역이 따로 없었다. 한국과 대만의 경기 도중 한국 남자 선수들이 판정과 관련해 나에게 통역을 요청해 한국 선수들의 입장을 대신 통역해 준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심판 판정은 대만 선수에게 유리하게 나왔다”며 “그런데 그 판정 이후 승부가 뒤집혔다. 경기가 끝난 뒤 대만 당구계의 모든 화살이 돌연 나한테 돌아왔다. 결국 자격정지 2년의 징계를 받았다”고 했다.이어 김가영은 “대만에서 함께 활동했던 선수들이 누구도 나를 돕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현지 기자들도 내가 말한 것과는 다르게 보도했고, 인격모독성 내용까지 담겼다. 대만당구협회장에게 항의했지만, 결국 화살을 나한테 돌려야 자기들이 산다고 했다. 심지어 해외에서 이런 일을 겪고 있는데 대한당구연맹에서도 도와주지 않았다. 양쪽에 다 배신감을 느낀 것”이라고 했다. 자격정지는 6개월 만에 풀리긴 했지만, 마음의 상처는 깊었다. 포켓볼 선수에게 내려진 사실상 사형선고대만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한 뒤 김가영은 미국과 한국 등을 오가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포켓볼 세계 최정상의 자리도 굳게 지켰다. 그러다 지난 2019년, 또 한 번의 시련이 또 찾아왔다. 이번에는 대한당구연맹의 ‘영구 제명’ 징계였다. 당시 새로 출범한 프로당구협회(PBA)의 초청을 받아 3쿠션 대회에 참가했다는 게 중징계의 이유였다.김가영은 “당시 와일드카드를 통해 단 한 번 PBA 3쿠션 대회에 참가했다. 그렇다고 PBA에 정식 가입한 것도 아니어서 서류상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대한당구연맹에서는 ‘영구 제명’ 징계를 내렸다. 음주운전을 해서 사고를 낸 것도, 당구계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그런 중징계를 내려진 것”이라고 했다.당시 새로 출범한 PBA와 대한당구연맹 간 ‘대립’의 본보기 징계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김가영도 “‘PBA로 가면 김가영조차 제명’이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선수들이 PBA로 가지 못하도록 내린 징계였다고 본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몇 번 우승을 했든, 국위선양을 얼마나 했든 본보기로 징계를 내린 것”이라고 했다.특히 당시 PBA 3쿠션 대회에 참가한 것 역시도 그저 포켓볼과 나아가 한국 당구의 발전을 위한 결정이었던 터라, 김가영이 느낄 배신감과 허탈감은 더 컸다.김가영은 “포켓볼을 더 부흥시키고 발전시키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쫓겨난 셈이다. 그때 대회에 참가한 것도 3쿠션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직 ‘당구 선수들을 위해서는 프로가 생겨야 한다’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며 “프로가 생겨야 당구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거고, 그래야 선수들이 갈 수 있는 길이 더 넓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한당구연맹은 아마추어 단체라 (선수들의 생활엔) 큰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이어 김가영은 “그동안 프로당구를 만들겠다는 단체들이 몇 번 있었지만 미심쩍었다. 하지만 PBA는 준비 과정이 믿을 만했다. 첫 대회인 만큼 대회 인지도가 있는 내가 참가해 힘을 실어주자는 생각이었다”며 “PBA에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포켓볼 역시 프로를 만들겠다고 했다. 프로가 생겨야 당구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나중에 포켓볼 종목에도 나쁜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그런데도 돌아온 건 ‘영구 제명’이었다. 이 징계로 김가영은 포켓볼 선수로서 국내 대회 참가는 물론 국제 대회 참가의 길까지 모두 막혔다. 평생을 포켓볼만 해온 김가영에겐 사실상 사형선고였다. 김가영의 등록 말소와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할 만큼 이슈가 됐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김가영으로선 자신의 선수 생활의 위기만큼이나 후배 선수 등 포켓볼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더 안타까웠다.그는 “후배 등 포켓볼에 종사하고 계시는 선수분들이나 관계자분들에게는 마음 한편에 미안한 감정이 있다. 내가 배신한 것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면서도 “언젠가는 돌아갈 거다. 포켓볼 선수로 돌아간다거나 대한당구연맹에 가겠다는 게 아니라, 포켓볼을 위해 내가 뭔가 할 일이 있을 때 돌아가겠다는 뜻이다. 포켓볼 쪽에 꾸준히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은퇴 기로에서 결심한 3쿠션 선수의 길대한당구연맹의 영구 제명 징계는 김가영의 인생 계획도 바꿔놨다. 사실 김가영은 포켓볼 선수 이후 지도자의 길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그는 “원래 마흔 살 정도까지만 선수 생활에 집중하고, 40대 초반부터는 지도자를 할 생각이었다. 대학원에 다닐 때 지도교수님께서도 ‘경기력도, 이론도 잘 돼 있는 사람이 체육계에서 인정받는다, 너는 가능하지 않느냐’고 해주셨다. 지도자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도 포켓볼 강국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지도자를 준비하려다 제명 징계를 받은 것”이라고 했다.김가영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였다. 계획보다 더 이른 포켓볼 지도자의 길, 그리고 3쿠션 선수로의 전향이었다. 포켓볼과 3쿠션은 엄연히 다른 종목인 데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 종목으로 전향한다는 것 그야말로 큰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오랜 고민이 필요했던 이유였다.김가영은 “결정하는 데까지 정말 엄청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고민이 많았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뭘 다시 시작한다는 건 상상도 안 해본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될까’ 싶기도 했다. 초보자 때의 기억과 느낌도 없었다. 포켓볼과 3쿠션은 큐 길이나 굵기, 공 크기, 당구대 높이 등 모든 게 다르다. 포켓볼을 칠 땐 최소한 내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게 나를 지탱해 줬다면, 3쿠션은 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서도 “그래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한 번 해보자’라는 결심이 섰다. 생판 모르는 걸 새로 시작하는 거니까 지도자와 병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학원을 그만두고, 3쿠션 선수의 길을 걷기로 했다”고 말했다.3쿠션 전향 첫 시즌 6차 대회부터 첫 우승을 차지하며 화제가 됐다. 다만 두 번째 시즌엔 단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첫 시즌 우승 역시 ‘반짝 우승’으로 비쳤다. 김가영은 “첫 시즌에 왜 우승했는지도 모르고, 사실은 할 실력도 아니었다. (초창기다 보니)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수준이 높지 않았고 운도 좋았다”면서 “두 번째 시즌에 혼란기가 왔다. 처음엔 그냥 열심히나 치자고 했다면, 3쿠션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서 더 어렵게 느껴지고 혼란이 오면서 여러 가지를 바꿨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초반에 운이 좋게 포켓볼 스타일로 성적을 냈다면, 두 번째 시즌이 진짜 내 실력이었던 것”이라고 돌아봤다.그래도 ‘선수로서의 경험’이 많은 게 큰 도움이 됐다. 김가영은 세 번째 시즌부터는 매 시즌 2회씩 정상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3쿠션에 적응을 마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번 시즌엔 무려 4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프로당구 새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24연승을 달성하며 프레데리크 쿠드롱의 기록을 넘어 프로당구 남·여 투어 최다연승 신기록까지 썼다. 평생을 포켓볼을 치다 3쿠션에 전향한 지 5년도 채 안 돼 이뤄낸 눈부신 성과들이었다.김가영은 “선수 경험이 많았던 게 컸던 거 같다. 3쿠션에 대한 경험은 적어도, 승부사나 경기인으로서의 경험은 남녀 통틀어도 손가락 안에 들 거다. 곧 있으면 선수 생활만 30년 차가 되는데, 그 경험을 완전히 무시는 못 하는 거 같다. 공의 원리에 대한 이해도나 공을 다루는 건 아무래도 습득하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이어 “4회 연속 우승 등 이번 시즌 성적이 좋은 이유는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3쿠션에 올인한다고 했을 때나 지금이나 훈련량이나 루틴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수정하거나 뒤집어엎은 것도 없다. 조금씩 루틴을 수정하고 조절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처음 3쿠션을 시작할 때와 똑같다”며 “그저 한 스텝씩 잘 성장해 나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웃어 보였다. “오랫동안 잘하면 된다”…김가영이 따라 걷는 레전드의 길지도자까지 준비하며 청사진을 그려가던 포켓볼과 달리, 김가영은 아직 3쿠션 선수로서 목표나 향후 미래를 그리지는 못했다. 김가영은 “포켓볼은 너무 잘 아는 종목이니까 전체적인 계획이 그려지는데, 3쿠션은 아직 안 그려진다. 사실 몇 살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포켓볼과 달리 3쿠션은 선수 생명이 길다. 앞으로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계속 올인할 뿐”이라고 했다.그래서 더더욱 체력 등 자기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오프시즌 때는 당구 훈련보다 체력을 기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김가영은 “오프시즌 때는 한 시즌을 잘 치르기 위해 체력 훈련에 신경을 쓴다. 당구 연습보다 운동을 더 많이 할 정도다. 그때 몸을 만들어놓고, 시즌이 시작되면 몸을 유지하는 정도로만 운동을 한다. 오프시즌 때는 필라테스와 웨이트를 많이 한다”고 했다.여기에 틈틈이 정신적인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취미 생활도 잊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프리다이빙’에 빠졌다. 김가영은 “동호회는 처음 가입해 봤다. 경기 때 다이버 분들이 응원 피켓을 들고 경기장에 와주신다. 사회 생활하면서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지 싶을 정도로 좋은 분들을 만났다. 서로 윈윈(Win-Win)하고 있다. 당구장 평생 안 가보신 분들이 이제는 당구룰을 꿰고 계신다. 반대로 당구 선수들은 저 때문에 프리다이빙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고 말했다.이어 “프리다이빙에 당구에 도움이 되는지 결론은 못 냈다. 다만 확실히 느끼는 건 있다. 열이 받거나 하던 게 잘 될 때, 긴장될 때 숨이 가빠지지 않나. 당구칠 때 역시도 호흡이 가빠지거나 흥분하면 안 된다. 호흡을 가라앉히는 게 좋은데, 프리다이빙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다. 기분 탓일 수도 있다”며 “취미 생활을 할 땐 갈 때부터 기분이 좋다. 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당구를 치거나 훈련할 땐 ‘늘 잘해야 돼, 실수하면 안 돼’ 이런 마음이라면, 취미를 할 때는 ‘재미있게 놀자, 못해도 된다’는 마음으로 간다. 스트레스도 풀리고, 다칠 일도 없다. 나쁠 게 없는 거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하면 자기 관리는 끝”이라고 웃어 보였다.이처럼 김가영이 당구 실력뿐만 아니라 체력 등 자기 관리에 더욱 집중하는 이유가 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못했지만, 결국은 오랫동안 꾸준히 잘하고 싶다는 마음가짐에서다. 여기에는 김가영이 유독 마음속에 담고 있는 레전드의 조언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 포켓볼 레전드 앨리슨 피셔(영국)가 김가영에게 직접 건넸던 조언이다.김가영은 “예전에 피셔에게 ‘나도 당신처럼 레전드가 되고 싶다’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오랫동안 잘하면 된다, 잠깐 잘하면 그건 반짝 스타’라고 답해줬다. 그게 되게 기억에 많이 남았고, 지금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오랫동안 잘하는 게 결코 쉽지가 않다. 다행히도 선수 생활을 하는 28년 동안 우승을 못한 해는 1~2년 정도밖에 안 된다. 그건 운이 아니라 제 노력의 결과였다. ‘오랫동안 잘하면 된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노력하고 있는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구 여제' 김가영이 걸어가고 있는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고양=김명석 기자 2024.11.2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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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김가영인지 보여주겠다”던 자신감, 최다 우승으로 증명한 '당구 여제'

“왜 김가영인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프로당구 새 시즌 개막을 앞둔 지난 6월이었다. 김가영(41·하나카드)은 “20년 넘게 왜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확인시켜 드릴 것”이라며 ‘당구 여제’다운 새 시즌 각오를 밝혔다. 그 자신감은 ‘새 역사’로 결실을 맺었다. 프로당구 남·여 통틀어 가장 많이 정상에 오른 선수로 우뚝 섰다.김가영은 지난 17일 고양 킨텍스의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크라운해태 LPBA 챔피언십 한가위 결승전에서 3시간에 걸친 혈투 끝에 한지은(23·에스와이)을 4-3으로 꺾고 정상에 섰다. 지난달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에스와이 바자르 하노이 오픈에 이어 이번 시즌 두 대회 연속 우승이자, 프로당구 개인 통산 9번째 우승이다.프로당구 새 역사를 썼다. 그동안 최다 우승 기록은 ‘전설’ 프레데리크 쿠드롱(벨기에)의 8회였다. 그러나 김가영이 지난달 우승으로 쿠드롱과 어깨를 나란히 하더니, 한 대회 만에 쿠드롱을 넘어 최다 우승 선수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누적 상금도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4억원을 돌파(4억 2180만원)했다. 1996년 당구에 입문한 뒤 세계 최초로 여자 포켓볼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등 포켓볼 세계 챔피언에 올랐던 김가영은 2019년 프로당구 출범과 함께 3쿠션 선수로 변신했다. 첫 시즌 6차 대회 만에 첫 우승을 차지한 그는 두 번째 시즌에는 무관에 그쳤지만, 적응을 완전히 마친 뒤에는 3쿠션에서도 명실상부한 ‘최강자’ 입지를 다져갔다. 매 시즌 젊은 선수들의 유입, 새로운 강자들의 탄생으로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도 ‘당구여제’는 흔들리지 않았다. 2021~22시즌 처음으로 한 시즌 2회 우승을 달성하더니, 이번 시즌까지 4시즌 연속으로 한 시즌 2회 이상 우승 기록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프로당구 새 역사가 걸린 이날 결승전 결말도 결국은 ‘역시 김가영’이었다. 정상까지 오르는 여정이 만만치는 않았다. 상대는 지난 시즌 데뷔해 무서운 상승세를 타던 한지은이었다. 개막을 앞두고 김가영이 콕 집어 경계 대상으로 꼽았던 선수이기도 했다. 실제 한지은은 이날 과감한 샷으로 김가영을 궁지에 내몰았다. 6세트 한때 챔피언 포인트를 앞두기도 했다. 그러나 김가영은 흔들리지 않았다. 한지은이 기회를 놓치자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운명의 7세트에서도 3-7까지 밀렸으나, 한지은이 3이닝 연속 공타로 돌아선 틈을 놓치지 않고 승부를 뒤집었다. 마지막 남은 1점을 향한 샷을 친 뒤, 김가영은 우승을 직감한 듯 두 눈을 감은 채 큐대를 높이 들고 우승의 순간을 즐겼다.김가영은 경기 후 “누구도 쓰지 못한 기록을 달성해 기분이 정말 좋다. 사실 3쿠션으로 전향하면서 앞서 나가는 선수가 될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모든 면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기 위해, 현역 선수로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명석 기자 2024.09.19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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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여제'가 '당구여신' 이겼다, 포켓볼 아닌 스리쿠션에서

“저도 한 ‘독함’하는데, 가영 언니는 독해요, 독해. 어제 집 근처 당구장에서 연습하는데, 언니가 왔더라고요.”(차유람)“얘가 집에 안가서 새벽까지 했다니깐요. 애기 둘 키우면서도 정신력 하나는 끝내줘요.”(김가영) 포켓볼이 아닌 스리쿠션으로 맞붙은 ‘당구 여제’ 김가영(37·신한금융투자)과 ‘당구 여신’ 차유람(33·웰컴저축은행)이 서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둘은 2000년~10년대 포켓볼 월드클래스였다. 김가영은 세계선수권을 3차례, 차유람은 실내무도아시안게임을 2차례 제패했다. 지난해 프로당구 시대가 열리자 둘 다 스리쿠션으로 종목을 바꿨다. 전향 후 처음으로 일대일 승부를 펼쳤다. 8일 서울 그랜드워커힐에서 열린 PBA(프로당구)-LPBA 투어 SK렌터카 챔피언십 16강에서다. 3전2승제 세트제로, 1·2세트는 11점, 3세트는 9점을 먼저 따면 이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김가영이 세트스코어 2-1로 역전승을 거뒀다. 차유람이 1세트 7-4에서 연속 4득점하며 기선제압했다. 김가영이 2세트 5-9에서 연속 6득점하며 승부의 균형을 맞췄다. 김가영은 3세트 시작과 함께 다시 6점을 몰아쳤다. 차유람이 6-7까지 따라붙었지만, 김가영이 9-6으로 힘겹게 마무리했다. 둘의 마지막 맞대결은 2014년 10월 국내 포켓볼 10볼 결승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예선 같은조(4인1조 서바이벌)였지만, 일대일 진검승부는 5년 8개월만이었다. 둘 다 “포켓볼은 하도 많이 붙어봐서 마지막이 언젠지 기억도 안난다”고 했다. 둘은 회전을 거의 주지 않고 앞돌리기를 구사했고, 보조브릿지를 쓰기도 했다. 포켓볼 선수 시절의 장점도 잘살렸다. 코로나19 탓에 대회는 무관중 경기에 마스크를 쓴채 진행됐지만, 둘의 눈빛은 여전히 매서웠다. 경기 후 차유람이 “공을 다루는 기술은 여자선수 중 톱”이라고 하자, 김가영은 “연습 때 준비한걸 100% 발휘하는 선수”라고 화답했다. 차유람이 “초등학교 6학년 때 포켓볼을 시작했을 때, 언니는 국내랭킹 1위였다”고 하자, 김가영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것 같잖아. 난 중3 때부터 랭킹 1위였다”고 손사래쳤다. 둘은 10대와 20대 때 끊임없이 비교당했다. 여자선수로서 당구 뿐만 아니라 외모까지. 30대에 접어들어 스리쿠션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일까. 차유람은 “자극제 그 자체, 따라잡고 싶은 존재다. 솔직이 없었다면 편했을거다. 하지만 김가영이 없었다면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안했을 것”이라고 했다. 김가영은 “독기를 품고 바짝 추격하는 추격자다. 쫓기는 사람은 불안하다. 못 생겼으면 좋겠는데 예쁘기까지하다. 외모 비교를 당하면 ‘당구로는 이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차유람이 있어 처음 열등감도 느껴봤고, 지지 않으려고 용을 썼던 것 같다”고 했다. 김가영은 지난해 12월 LPBA 6차대회 정상에 올랐지만, 차유람의 최고성적은 8강. 지난해 1회전에서 줄줄이 탈락했던 차유람은 실력이 급성장했다. 맞대결 평균 에버리지에서 차유람(0.839)이 김가영(0.750)을 앞섰다. 차유람은 “완전히 새로운걸 하려다보니 과부화가 걸렸었다. 15년간 쳤던 포켓 타법을 장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언니와 결승에서 만나고 싶은데, 다음 대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가영은 “차유람이 빠르게 발전했다. 빨리 높은 곳에서 볼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박린 기자 rpark72joongang.co.kr 2020.07.0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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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볼 이어 스리쿠션도…2관왕 직진하는 김가영

6개월째 재방송만 시청하던 당구 팬에게는 희소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딛고 당구가 재개된다. 다음 달 6~10일 그랜드워커힐 서울에서 PBA-LPBA투어 개막전 ‘SK렌터카 챔피언십’이 열린다. 지난해 출범한 프로당구(PBA) 투어는 올해 1월까지 7차례 대회를 치렀다. 코로나19 여파로 4월 파이널 대회가 취소됐다. 두 번째인 2020~21시즌은 두 달 연기된 끝에 다음 달 개막한다. 내년 3월까지 7개 대회를 무관중으로 치른다. 2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개막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김가영(37)을 만났다. 그는 ‘포켓볼 여제’를 넘어 ‘스리쿠션 여제’를 꿈꾼다. 포켓볼 국제대회에서 30차례 이상 우승했던 그는, 지난해 6월 프로당구 시대가 열리자 스리쿠션을 병행했다. 6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LPBA(여자부) 6차 대회를 제패했다. 그는 “세계적으로도 포켓볼과 스리쿠션을 둘 다 우승한 선수는 거의 없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코로나19 속에서도 김가영은 큐를 놓지 않았다. 김재근 프로가 운영하는 인천의 당구장을 찾아 훈련했다. 그는 “사람이 몰리는 저녁 시간은 피했다. 낮에 가거나,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훈련했다. 하루에 14시간 훈련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6개월간 대회가 없었지만, 부족한 실력을 채울 기회라고 생각했다. 테크닉, 난구 해결이 나아졌다”고 소개했다. 8월부터는 PBA 팀 리그도 열린다. SK렌터카 등 6팀이 참가한다. 팀당 남자 4명, 여자 1명이다. 남녀단식과 혼합복식으로 진행한다. 김가영은 신정주 등과 신한금융투자 팀을 이뤘다. 그는 “개인전 잘하는 선수끼리 나온다고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서로 보완하면 된다”고 했다. 올해 PBA(남자부) 우승 상금은 1억원으로 지난해와 같다. LPBA는 2000만원으로 지난해보다 500만원 증액됐다. 김가영은 “여자의 경우 실력 부족 논란이 있다. 나부터 노력하겠다. 그래도 여자부 시청률이 올라가고 있다. 지난 시즌에는 포켓볼 선수가 스리쿠션을 얼마나 잘 칠 수 있는지 보여드렸다면, 올 시즌에는 스리쿠션 선수로서 김가영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다른 선수들이 날 라이벌로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2020.06.2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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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쿠션 전성시대…‘포켓 마녀’ 김가영도 도전

요즘 케이블 TV에서 스포츠 쪽 채널을 돌리다 보면 한 채널 건너 당구 중계다. 세계 최초 24시간 당구 전문채널인 빌리어즈TV를 비롯해 6개 채널에서 당구를 중계한다. 9월 22일 대한당구연맹이 주최한 서울 서바이벌 3쿠션 마스터즈는 시청률 1.201%를 기록했다. 케이블에선 어마어마한 시청률이다. 6월 프로당구 시대를 연 프로당구협회(PBA) 주최 PBA·LPBA 챔피언십도 인기다. 2차 대회 결승전 시청률이 0.828%였다. 당구 TV 평균 시청률(2018년 기준)은 0.3%. 프로야구(0.83%), 프로배구(0.83%)엔 뒤지지만, 프로농구(0.2%), 프로축구(0.11%)에 앞선다. 당구, 특히 스리쿠션 인기가 치솟으면서 또 한 명의 스타가 도전장을 던졌다. ‘포켓 여제’ 김가영(36·브라보앤뉴)이다. 한국에선 당구 종목 중 캐롬의 스리쿠션이 가장 인기다. 스리쿠션은 큐로 수구(手球)를 쳐 제1 적구(的球)와 제2 적구를 맞히는 동안 당구대 모서리인 쿠션에 세 번 이상 닿아야 하는 게임이다. 김가영의 종전 주 종목은 포켓볼과 비슷한 9볼과 10볼로, 공을 순서대로 6개의 포켓에 넣는 게임이다. 포켓볼 하면 차유람(32)도 있지만, 김가영은 ‘월드클래스’다. 세계선수권 우승만 세 차례(2004, 06, 12년)고, 국제대회 정상에는 30회 이상 올랐다. 아버지가 당구장을 운영했던 김가영은 19세였던 2001년 포켓 강국 대만으로 건너갔다. 스트로크 때 독기 어린 표정을 지어 ‘소마녀’, ‘리틀 데빌걸’로 불렸다. 23일 서울 강동구 ‘김가영 포켓볼 아카데미’에서 만난 그는 “대만에 머물던 20대 초반, 48시간 연속 훈련하다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간 적도 있다. 그땐 ‘소마녀’로 불렸는데, 이젠 나이가 있어 ‘대마녀’가 됐다”며 웃었다. 차유람과 끊임없이 외모를 비교당했던 그는 “과거 악플로 상처를 받아 거울을 보기 싫었던 적도 있다”면서도 “운동선수는 트로피 개수로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6월부터 스리쿠션을 병행하는 김가영은 “국내 포켓대회 우승 상금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수준(200만원 이하)이다. 반면 스리쿠션은 관중도 많고 프로 대우(우승상금 1500만원)를 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초청 선수 자격으로 프로당구 LPBA에 네 차례 출전했다. 4강에 한 번, 8강에 두 번 올랐고, 지난달에는 16강에서 탈락했다. 그는 “태어나서 이렇게 연이어 져본 적이 없다.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에 들던 포켓에선 인터벌도 짧고 파워풀 하게 쳤는데, 스리쿠션에선 고민하고 흔들리고 아주 찌질해졌다”며 웃었다. 두 종목의 차이에 대해 김가영은 “포켓은 적구를 (포켓에) 넣는데, 스리쿠션은 수구를 내 맘대로 움직여야 한다. 어릴 때 사구를 700점 친 적도 있지만,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게 당구다. 그래서 사람들이 즐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 당구 중계를 많이 보는 이유는 뭘까. 그는 “UFC(종합격투기)는 보긴 봐도 직접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당구는 칠순인 아버지도 치신다”며 “할머니가 뜨개질하면서도 볼 수 있는 편안한 종목이 당구”라고 덧붙였다. 한국 남성들은 어릴 때 배운 사구를 성인이 돼서도 부담 없이 즐긴다. 당구장 이용료가 10분에 1500원, 4명이 두 시간을 쳐도 2만원 정도다. 국내 당구장이 2만2655개다. 전 세계 스타벅스 매장 수(2만8000여개)와 맞먹는다. 하루 당구장 이용 인구가 160만명이고, 동호인도 19만명에 이른다. 2017년 12월부터 당구장 내 금연법 시행으로 청소년 및 여성 이용자도 늘었다. “난 원래 쎈 캐릭터”라던 김가영의 표정이 인터뷰 중간에 잠시 굳어졌다. 6월 대한당구연맹으로부터 선수등록 말소 처분을 받은 얘기를 할 때다. 대한당구연맹과 프로당구협회가 선수 수급을 놓고 대립각을 세운 일이 있다. 연맹은 미승인 대회인 프로당구에 초청 선수로 출전한 김가영의 선수 등록을 말소했다. 연맹이 주관하는 국내 대회는 물론, 세계캐롬연맹이 주관하는 스리쿠션 월드컵과 세계선수권에도 출전할 수 없게 됐다. 여전히 말소 상태다. 팬들은 김가영, 차유람, 그리고 ‘당구 캄보디아 댁’ 스롱피아비(29)가 스리쿠션으로 맞붙으면 어떤 승부가 펼쳐질지 궁금해 한다. 차유람은 프로당구 LPBA 2차 대회 64강에서 탈락, 3·4차 대회 출전을 포기했다. 스리쿠션 세계 2위 피아비는 대한당구연맹 소속이라, 김가영과 만나지 못한다. 김가영은 “3월 프랑스 파리 이벤트 행사 때 피아비가 스리쿠션 치는 걸 봤다. 잘 치더라. 대단한 선수다. 맞붙으면 재밌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2019.10.25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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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유람 “세계 섹시 스포츠스타 10위? 부담스럽다”

얼짱, 섹시, 미녀…. 여자 당구 스타 차유람(25) 앞에 자주 붙는 수식어다. 차유람은 이제 그런 단어가 지겹다. 그는 “전혀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외모를 관심 대상으로 삼는다면 인터뷰를 하고 싶지도 않겠다고 했다. 설득끝에 차유람을 만났다. 그는 패딩 점퍼에 안경을 쓰고 나타났다. 그는 "나는 당구 선수이자 한체대 11학번 학생이다. 연예인이 될 거면 애초부터 당구채를 잡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이도 20대 중반이라 연예계에 낄 틈도 없다"며 웃었다. ◇방송인 차유람 "이제 방송은 NO!"-지난해 방송 출연이 잦았다. "SBS 강심장과 스타킹에 딱 두 번 나갔다. 재방송도 자주 되다 보니 연예계 활동을 계속한 걸로 비추어진 것 같다. 방송 출연에는 나만의 원칙도 있다."-원칙이 뭔가."당구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는 방송만 출연한다. 나를 연예인으로 생각하는 프로그램이라면 나가지 않았다. 강심장과 스타킹도 모두 당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조건으로 출연했다."-방송을 해보니 잘 맞는 것 같나."아니다. 강심장은 녹화를 10시간이나 했다. 너무 힘들었다. 본 방송에는 5분도 채 안 나오더라. 녹화 내내 표정 관리도 힘들었다. 연예인 분들이 '진정한 프로'라고 느껴졌다. 방송은 나하고 맞지 않은 것 같다. 2012년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방송을 하지 않을 계획이다."-'연예계 진출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종종 나오는데."너무 늦은 거 아닌가. 벌써 한국 나이로 26세다. 다들 아직까지도 10대 당구 소녀로 기억하신다(웃음).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는 게 꿈이었다. 연예계에서는 최고가 될 수 없다. 키도 작고 나이도 많다. 당구로 세계 최고가 되겠다."-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스타 10위에 올랐다. "나도 봤다. 어이가 없더라. 내가 그런 곳에 들어가다니…. 친구들한테 축하 문자를 받았는데 오히려 화를 냈다. 믿지 않으시겠지만 전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부담스럽기만 하다."차유람은 지난해 12월 미국 스포츠 전문블로그 블리처 리포트가 선정한 '섹시 스포츠 스타 25인'에서 10위를 차지했다. 블리처 리포트는 당시 "차유람의 홈페이지에는 그녀의 아름다운 사진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매우 경이롭다"고 평가했다. ◇공부하는 차유람 "제 학점은요…"차유람은 그동안 학업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2001년 당구 선수가 되기 위해 율전중학교 2학년을 끝으로 학업을 중단한 게 학교를 다닌 마지막 기억이다. 하지만 올해 신입생이 된 뒤로 새로운 관심사가 생겼다. 철학과 역사에 푹 빠졌다. -11학번으로 학교를 꽤 열심히 다닌 것 같다."태어나서 처음 공부를 해본 것 같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부끄럽지만 초등학교 때는 테니스 선수로 활동하느라 방학숙제를 아예 하지 않았다. 이제야 공부하는 재미를 안 것 같다."-어떤 과목이 제일 흥미롭나."철학과 역사다. 학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는지에 대해 책에 나와있더라. 신기했다. 수업 시간에 질문하고 싶었지만 동기들에게 욕먹을까봐 참았다. 하하. 일단 좋은 학점으로 졸업하는 게 1차 목표다."-학점을 공개할 수 있나."1학기는 3.17이고, 2학기는 2점대 후반이다. 높지는 않지만 만족은 한다. 구체적인 점수를 살짝 공개하자면 '육상'은 A+ 학점이다. '철학'과 '한국사'의 학점은 각각 B+과 B다. 하지만 컴퓨터 과목은 C학점이다. 컴맹이라는 게 학점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컴퓨터 공부 좀 해야겠다."-11학번 동기생과 나이 차이가 꽤 나겠다."내가 제일 나이가 많더라. 평균 다섯 살 차이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는데 동기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더라. 동생들에게 밥을 사주면서 공부를 배우고 숙제도 했다."◇당구선수 차유람 "심리적 부분 보완 중"-대학에서 당구도 하나."학교 남동생들이 '누나, 당구장 가요'라고 종종 말한다. 절대 안 간다. 학교에서까지 당구를 하고 싶지 않다. 훈련으로서만 당구를 하겠다."-심리적인 부분이 단점이라고 들었다. "당구도 이제는 공부를 해야한다. 무작정 훈련만 한다고 대회 성적이 좋아지지 않더라. 심리적인 부분을 다스리고 있는 중이다."-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결정의 속도'가 중요하다. 대회 때마다 공을 칠 코스를 결정하지 못해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이론적으로 잘 정리가 돼 있으면 결정도 빨라질 것이라고 본다."-한동안 당구채를 아예 놓고 생활했다고 들었다."과거에는 당구가 잘 안되면 무작정 연습을 했다. 지금은 다르다. 조금씩 훈련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집중력이 떨어지자 한 달간 당구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차유람은 1월 초부터 3주간 중국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중국 현지에서 도움을 주는 코치진과 당구장에서 하루 종일 훈련만 했다. 3월 암웨이배 당구대회에 출전하고, 9월에는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에 도전한다. 그는 "2012년에는 세계 최고 당구 선수가 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차유람의 선택?SUV vs 세단SUV - 눈길에 안전하다고 들었다. 한 번 타보고 싶다.(차유람은 지난해 '큐브'를 첫 차로 선택했다.)후드 티 vs 블라우스후드 티 - 편한 옷이 더 좋다. 블라우스는 행사가 아닌 이상 입지 않는다. 힙합 vs 발라드발라드 - 가수 이적을 좋아한다. 미용실에서 우연히 봤는데 평범하면서도 묘한 매력이 있더라.장동건 vs 원빈원빈 - 두 분 모두 잘생겼다. 하지만 원빈씨가 조금 더 매력적. 아이폰 vs 갤럭시아이폰 - 지금 쓰고 있다. 아이폰 화질이 마음에 든다.당구요정 vs 당구얼짱둘 다 싫다 - 당구여제가 되고 싶은 게 꿈이다.긴 머리 vs 단발머리긴 머리 - 남자들이 긴 머리에 대한 환상이 있을 것 같다. 환상을 깨면 안 된다. 하하.구두 vs 운동화구두 - 구두 보면 구매 욕구가 생긴다. 그렇다고 굽이 10cm 이상인 '킬힐'은 신지 않는다.◇차유람은▶생년월일 = 1987년 7월 23일 ▶출생 = 전라남도 완도 ▶체격 = 1m62㎝·47㎏·왼손잡이 ▶학력 = 율전중(2학년 중퇴), 검정고시 거쳐 한국체육대 입학(2011년) ▶경력 = 2005년 한국 여자 3쿠션대회 1위, 2006년·2010년 아시안게임 포켓볼 대표, 2010년 세계 여자 9볼 오픈 우승 ▶가족 = 차성익(57세)·고소영(48세)의 2녀 중 막내 김환 기자 hwan2@joongang.co.kr 2012.01.2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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