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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타자 실각이 장외 슈퍼스타들에게 주는 메시지 [IS 이슈]

이승엽(48) 감독이 두산 베어스 지휘봉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각 구단의 지도자 선임 방침에 영향을 미칠 선례로 보인다. 두산은 지난 2일 "이승엽 감독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고, 구단이 이를 수용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승엽 감독은 올 시즌 부진한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팀 분위기 쇄신을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구단은 숙고 끝에 이를 수용했다"라고 했다. 3일부터 조성환 퀄리티컨트롤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는다. 개막 전 5강 진입을 노릴 수 있는 전력으로 평가받았던 두산은 2일 기준으로 23승 3무 32패로 10개 구단 중 9위에 머물렀다. 지난달 31일과 1일 치른 최하위 키움 히어로즈와의 주말 3연전 2·3차전에서 연속으로 '영봉패(스코어 0-1)'를 당하며 재도약 기회를 놓쳤다. 이승엽 감독은 '국민타자'로 통한다. '홈런왕'이라는 타이틀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였다. 지난해 최정이 깨기 전까지 개인 통산 최다 홈런 기록(467개) 보유자이기도 했다. 선동열·최동원·이종범(이상 은퇴)과 함께 KBO리그 레전드 40인 중에서도 '톱4'에 이름을 올렸다. 이승엽 감독은 2017년 은퇴 뒤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대사, 기술위원, 객원 해설위원을 역임했다. 장학 재단을 운영하고, 인기 야구 예능 프로그램(최강야구)에 출연해 활동 범위를 넓히기도 했다. 이승엽 감독은 2022년 10월, 김태형 감독 후임으로 두산 사령탑에 올랐다. 두산은 현장 코치 경험조차 전혀 없었던 그를 선택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선수로 정점을 찍은 야구인에게 거는 기대치가 반영된 것. 2022시즌 정규시즌 9위였던 두산은 2023시즌 5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하지만 두산팬들은 만족하지 못했다. 김태형 감독 시절 7년(2015~2021) 연속 한국시리즈(KS)에 진출하며 구축한 왕조가 계속 무너지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두산은 2024시즌 4위에 올랐다. 한 단계 올라섰지만 이승엽 감독을 향한 여론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특히 불펜 운영을 두고 볼멘소리를 내는 팬이 많았다. 뚜렷한 색깔이 없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다가 두산이 KT 위즈와의 와일드카드 결정 1·2차전 모두 패하며 역대 최초로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4위 팀이 되자, 그를 향한 비난 여론은 극에 달했다. 두산은 올 시즌 초반, 곽빈·홍건희 등 주축 투수들이 부상으로 전력에 합류하지 못한 채 힘겨운 레이스를 펼쳤다. 하지만 감독을 향한 '옹호론'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이승엽 감독과 두산의 동행은 2년 7개월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승엽 감독의 지도력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코치 경력 없이 감독을 맡은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많았다. 리그 역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였기에 특혜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승엽 감독은 결국 반전을 만들지 못했다. '스타는 지도자로 성공하기 어렵다'라는 야구계 속설이 더 힘을 얻은 모양새다. KBO리그 전성기를 이끈 스타플레이어 중 현장 지도자 대신 대외 활동을 선택한 이들이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코치 연봉이 선수 시절과 비교해 너무 낮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이유로 야구 관련 콘텐츠 제작물 출연을 선택하는 것. 방송이나 매체 인터뷰를 통해 지도자로 현장에 복귀하고 싶은 바람을 전한 이들도 있다. 이승엽 감독이 '감독 직행' 선례를 만들었다 보니, 그중에서도 이름값 높은 OB들은 자신이 뛰었던 팀의 차기 감독이 될 것이라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물론 그들이 코치 경력 없이 감독이 되겠다는 의사를 밝히진 않았다. 잠시 그라운드를 떠나 견문을 넓힌 뒤 '정석' 절차를 밟으려는 계획을 세운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승엽 감독의 불명예 퇴진은 향후 두산뿐 아니라 다른 구단 의사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예비 지도자들에게도 전달된 메시지가 있을 것 같다. 선수 시절 아무리 슈퍼스타였더라도, 코치부터 시작해 지도력과 리더십을 증명하는 게 정석이라는 것. 현재 장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 시절 슈퍼스타들은 현장 복귀 시점을 두고 깊은 고민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안희수 기자 anheesoo@edaily.co.kr 2025.06.03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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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의 신(信) 에필로그] 그 짜릿한 포구...레전드 포수의 워너비 투수는 선동열

본지는 6회에 걸쳐 ‘포수의 신(信)’ 시리즈를 연재했다. 프로야구 역사를 대표하는 포수(조범현·김동수·박경완·진갑용·강민호·양의지)들을 차례로 만나 얘기를 나눴다. 포수가 공 배합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들이는지, 투수와 끈끈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어떤 자세를 갖는지, 어떤 고충이 있고 무엇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기는지 두루 전할 수 있었다. 레전드 포수들 사이에도 투수를 리드하는 최우선 가치에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긴밀한 소통과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포수, 선·후배 관계를 떠나 포수가 주도해 이끄는 호흡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수 등. 물론 정답은 없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건 의외로 포구의 중요성이었다. 포수에겐 일상과도 같은 일, 포일(투수가 던진 공을 빠뜨리는 것)이라도 범하면 쏟아지는 질타를 받을 만큼 쉽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게 포구다. 포수들은 공을 ‘잘’ 받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미트 움직임으로 심판을 현혹하는 프레이밍(catcher framing)이나 도루 저지를 위한 빠른 송구 동작도 일단 공을 정확히 잡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투심 패스트볼(투심) 컷 패스트볼(커터) 등 무브먼트가 있는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 많아지면서, 포수의 고충은 더 늘었다고 한다. 강민호도 “3시즌(2010~2012) 동안 배터리를 이뤘던 라이언 사도스키의 투심 패스트볼은 잡을 때마다 (미트를 착용한) 왼손이 아팠다. 나중엔 엄지 보호대를 낄 정도였다”라고 돌아봤다. 이번 릴레이 인터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기도 했다. 사도스키의 투심 구속은 140㎞/h 중반이었다. 더 안정감 있는 포구를 위해 체형을 바꾸는 노력까지 하는 게 포수였다. 조범현 전 KT 위즈 감독은 코치 시절, 소속 포수들이 하반신 근력과 유연성을 모두 키울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 ‘지옥훈련’을 견딘 게 박경완 LG 트윈스 배터리 코치였다. 박 코치도 후배 포수들의 유연성 강화를 위해 혹독하게 이끌었다. 지도를 받은 김민식(SSG 랜더스)이 “매일 스프링캠프를 치르는 것 같았다”라고 돌아볼 정도였다. 포구는 포수에게 희열을 안기기도 한다. 빼어난 투수의 묵직한 공을 받았을 때 손끝에서 전해지는 짜릿한 느낌이 포수를 신나게 만든다는 얘기다. 김동수 SBS 스포츠 해설위원은 “소속팀에도 좋은 투수들이 많았지만, 한·일 슈퍼게임(1990년대 초반 열린 한·일 프로야구 올스타 정기전)에 나가면 리그 대표 투수들의 공을 받는 것만으로 행복했다”라고 전했다. 강민호도 “국가대표팀에서는 불펜에서 공을 받을 때도 즐거웠다. 특히 다른 소속팀 투수들은 ‘이런 공을 던지니까 내가 (타석에서) 못 쳤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라며 웃어보였다. 레전드 포수들에게 배터리 호흡을 맞춰보지 않은 투수를 전제로 “꼭 받아 보고 싶은 공”을 꼽아달라고 했다. 단연 ‘국보투수’로 불리는 선동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진갑용 KIA 타이거즈 수석코치는 “내가 막 프로 무대에 들어왔을 땐 (선동열) 감독님이 일본 리그에서 뛰고 계셨다. ‘투수’ 선동열이 던지는 공은 못 받아봤다”라고 아쉬움을 전하며 “감독님 주 무기였던 슬라이더를 꼭 직접 받아 보고 싶었다”라고 했다. 강민호도 선동열 전 감독을 꼽았다. 그는 “과거 영상을 보면, 포심 패스트볼(직구)이 밑에서 위로 올라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공이 글러브로 빨려 들어올 때 기분은 받아보지 않은 이들에게 설명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양의지도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선동열 감독님이 던지는 모습을 보며 야구 선수 꿈을 키웠다. 한 번 꼭 받아 보고 싶었다”라고 했다. 1995년 열린 한·일 슈퍼게임에서 선동열 전 감독과 배터리 호흡을 맞췄던 박경완 코치는 “으레 하는 말 같지만, 내가 받아본 공 중 미트에서 전해지는 전율이 가장 강했던 게 선동열 감독님 직구였다. 돌덩이가 꽂히는 것 같았다”라고 했다.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고. 김동수 위원은 ‘무쇠팔’ 고(故) 최동원 전 한화 이글스 투수 코치를 언급했다. 신인 시절이었던 1990년, 당시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최 전 코치에게 홈런을 때려낸 기억을 돌아본 그는 "프로 입문 전부터 좋아했던 최동원 선배님의 전성기 직구와 커브를 받아보지 못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전했다. 조범현 전 KT 위즈 감독은 자신이 공을 받아 보지 않은 투수와의 공을 갈망하지 않았다. 대신 중·고교 시절 가장 좋아했던 '1년 선배' 원민구 전 협성경복중학교 야구부 감독을 떠올렸다. 삼성 에이스 원태인의 아버지로 더 잘 알려진 야구인이다. 조범현 전 감독은 "그 시절에 스스로 연구해서 커터를 던졌던 선배다. 본인은 슬라이더라고 하는데 정말 살짝 휘어들어갔다. 무엇보다 그토록 자신감이 넘치는 투수가 없었다. 포수로서 그런 느낌을 받은 투수는 이후 없었다. 내가 존경하던 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수는 육체노동자다. 4㎏에 가까운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경기 시간 내내 쪼그려 앉아 있는다. 공 배합을 두고 감독의 질타, 투수의 불신을 받기도 한다. 심판과 가장 가까이 있다 보니, 부정확한 볼-스트라이크 판정에도 좀처럼 목소리는 내지 못하는 게 포수다. 심지어 기본 임무인 포구마저 어렵다. 그러면서도 투수의 성장에 기뻐하고, 정답이 없다는 공 배합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한다. 무겁고 묵직한 공을 받고 희열을 느낀다. 인터뷰를 나눈 6명 모두 "포수가 된 걸 후회한 적이 없다"라고 했다.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DNA를 가진 이들. 이런 아이러니가 주는 매력이 포수 탐구를 흥미롭게 만들었다. 안희수 기자 anheesoo@edaily.co.kr 2023.09.0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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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은 어쩔티비(feat.김태균) Z세대에게 '라떼' 한 잔을 권한다

일간스포츠가 2023년 신년 시리즈로 '타격은 어쩔티비(feat.김태균)'를 연재합니다.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 중 하나로 꼽히는 김태균 해설위원이 연구한 야구, 특히 타격에 대한 이론·시각을 공유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타격의 재미, 나아가 야구의 깊이를 독자들이 함께하길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잔소리 듣는 걸 싫어한다. 선수 시절 선배님이나 코치님, 감독님으로부터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훈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일간스포츠에 〈타격은 어쩔티비〉를 연재하는 이유는 ‘대화’하기 위해서다. 그 상대가 프로야구 선수일 수도 있고, 학생 선수일 수도 있겠다. 내 얘기가 사회인 야구 선수에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 야구를 즐기는 팬에게 재미를 선물한다면 그 또한 영광일 것이다. 선수 은퇴 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다시 방망이를 잡을 기회가 있었다. 경기를 앞두고 상대 팀 20대 선수들이 나를 비롯한 은퇴 선수들에게 다가와 “선배님들 팬입니다”라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촬영은 훈훈한 분위기로 시작했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자 공기가 확 달라졌다. 몇 분 전까지 공손했던 선수들이 더그아웃으로 돌아가 이렇게 소리쳤다. “야, 못 쳐. 못 쳐. 그냥 가운데로 던져.” 타석에 서 있던 난 정말 깜짝 놀랐다. 아무리 동료들을 응원하기 위해서라지만, 다 들리도록 대선배에게 야유를 퍼붓다니. 게다가 이건 진짜 승부가 아니라 친선경기인데. Z세대는 ‘라떼’와 다르다후배들이 잘못했다거나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눈치 보지 않고 승부에만,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그들이 인상적이었다.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이들)로 불리는 젊은이들은 ‘라떼’와 확실히 다르다. 선수 시절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예전에는 내가 타석에 서면 투수가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20대 선수들은 전혀 그렇지 않더라.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공을 던졌다. 물론 내가 Z세대 투수들을 상대한 시기는 전성기가 지난 30대 중반이었을 때다. ‘힘 빠진 4번 타자’였기에 젊은 투수들이 자신 있게 덤벼든 측면도 있을 거다. 그래도 요즘 젊은 선수들이 과거와 다른 건 틀림없다. 어디 요즘 세대만 그럴까? 내 또래들도 선배들로부터 “너희는 우리 때와 다르다”는 말을 들었다. 시대에 따라 세대도 변하기 마련이다. 야구도 함께 변한다. 그러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하는 잔소리는 거북하다. 물론 선배들의 경험은 정말 소중한 자산이다. 내 야구도 코치님과 감독님의 가르침 위에서 만들어졌다. 나아가 야구의 고전과도 같은 『타격의 과학(The Science of Hitting, 테드 윌리엄스)』 이나 『3할의 예술(The Art of Hitting .300, 찰리 로)』 같은 이론서도 내 타격의 뿌리가 됐다. 선배들의 지식과 지혜를 배우고 그들을 뛰어넘는 게 후배들의 몫이다. 그걸 해낸 이들이 지금 그라운드의 주인공이다. 때로는 더디고, 어쩌면 틀린 것 같아도 야구는 발전하고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활동한 시대가 다른 선수들을 비교하는 것에 난 동의하지 않는다. 선수들의 신체 조건은 계속 좋아지고 있고, 인프라도 개선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있으며, 어마어마한 빅데이터가 쌓이고 있다. 심지어 같은 선수라도 20대의 타격과 30대의 타격이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아니, 달라야 한다. 타자는 매년 나이를 먹는다. 프로에서 살아남는다면 끊임없이 새로운 투수와 상대한다. 그러니 시대와 따라 변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물론 내 말의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최근 “투수들의 기량이 떨어졌다. 볼넷이 늘어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래도 야구는, 발전 중이다 볼넷 증가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진 않다. 예전 경기 영상을 보라. 최동원 선배, 선동열 선배 같은 위대한 투수는 구위뿐 아니라 커맨드도 뛰어났다. 그러나 그런 톱티어를 제외한 1980~90년대 투수들의 제구는 지금 선수들보다 낫다고 볼 수 없다. 내가 프로에 데뷔한 2001년만 해도 투수들은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또는 체인지업)만 던졌다. 투 피치(two-pitch)로도 타자를 충분히 상대했다. 패스트볼 스피드도 시속 140㎞만 넘으면 거뜬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투 피치만으로 타자를 당해낼 수 없다. 메이저리그(MLB)에서 뛰었던 투수들이 한국 무대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국내 선수 중에도 시속 150㎞ 안팎의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흔해졌다. 패스트볼도 포심만 던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투심 패스트볼이나 컷 패스트볼도 던질 줄 알아야 살아남는다. 두세 가지 이상의 변화구를 갖춘 투수들이 대부분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투수들은 대부분의 공을 바깥쪽(아웃사이드 피칭)으로 던졌다. 몸쪽(인사이드 피치)으로 던지면 타자를 맞히거나 장타를 허용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는 투수가 아웃사이드 피칭만 잘해도 충분했다. 가끔 하나씩만 안쪽으로 공을 던져도 타자의 스윙 밸런스를 흔들 수 있었다. 투수들의 기량만 발전하는 건 아니다. 타자들의 파워와 기술도 꾸준히 향상됐다. 아무리 빠른 공을 던져도 타자가 그걸 두려워하지 않으면 얻어맞는다. 그래서 투수들이 타자 몸쪽으로 더 많은 공을 던지는 것이다. 투수에게는 아웃사이드 피치보다 인사이드 피치가 더 어렵다. 몸쪽 제구는 아주 특별한 능력이다. 그러나 요즘 투수들은 커맨드가 정확하지 않아도 몸쪽으로 빠른 공을 던진다. 그래야 타자와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때문이다. 투수들이 불펜에서 공을 던지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요즘 젊은 투수들은 선배들보다 더 빠른 공을 던진다. 불펜에서는 제구도 나쁘지 않다. 다만 실전 승부에서 여러 종류의 변화구를 던지고, 더 많은 공을 몸쪽으로 던지기 때문에 4사구가 많은 것이다. 나는 2020년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벗었다. 은퇴하기 몇 년 전부터 만만한 투수가 없다는 걸 느꼈다. 내가 나이든 탓도 있지만, 투수들이 발전한 이유도 분명 있었다. ‘라떼’ 얘기는 그래서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지금 선수들은 20년 전, 10년 전과 다른 야구를 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예전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푸는 것이다. 선배로서 경험과 지혜를 전해주는 건 좋지만 거기까지여야 한다. 후배들이 선배의 어깨에 올라타서 더 멀리 보길 바란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옳다는 독선과 나처럼 하라는 오만은 후배에게 장애물이다. 그들이 각자 해법을 찾도록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타격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KBS 해설위원, 정리=김식 기자 2023.01.0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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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풀지 못한 우승의 한, 이대호의 간절한 당부

이대호(40)는 그라운드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롯데 자이언츠 우승'을 염원하고 당부했다. 이대호는 지난 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전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날 은퇴식에서 이대호가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가 바로 '우승'이다. 부산과 롯데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국가대표 4번 타자로 활약한 그였지만 "내 야구 인생은 50점"이라고 낮게 봤다. 그 이유를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이 팀(롯데)에 우승을 안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대호는 9일 기준으로 올 시즌 142경기에 출전해 타율 0.331(4위) 119안타(4위) 23홈런(공동 5위) 101타점(4위)을 기록했다. 많은 후배가 "더 뛰어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다. 전성기였던 2010년에는 타격 7개 부문 1위를 휩쓸기도 했다. 타격왕 3회, 홈런왕과 타점왕은 각각 두 차례씩 거머쥐었다. 통산 성적은 1971경기 타율 0.309 374홈런 1425타점. 한국 야구를 대표한 이대호도 혼자 힘으로 달성하기 어려웠던 것이 바로 우승이다. 국가대표와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에서 우승을 맛봤지만, 2001년 입단한 롯데에선 17시즌을 뛰는 동안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일본에서 우승했을 때 기분이 좋았다. 당시 '롯데가 우승했으면 더 많이 울고, 부산 팬이 더 많이 좋아할 거 같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이대호는 미국 메이저리그(시애틀 매리너스)를 1년 경험하고, 2017년 4년 총 150억원에 계약하며 롯데 복귀를 선택했다. 그해 정규시즌 3위로 포스트시즌 무대를 경험한 뒤 5년 연속 가을 야구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대호는 "우승하고 싶어서 한국에 돌아왔는데 후배들한테 짐을 맡기고 떠나는 게 미안하다. 롯데 팬에게 우승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걸 못 이뤄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죄짓고 떠나는 기분이라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했다. 이대호는 선수들에게 책임감을 당부했다. 그는 "고(故) 최동원 선배의 정신력을 깨닫는다면 이른 시일 내에 우승할 것으로 본다. (최동원 선배의)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1984년) 우승도 못 했을 것이다. 후배들에게 항상 희생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구단의 적극적인 지원도 요청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프랜차이즈 스타 손아섭이 4년 총 64억원의 FA 계약으로 경남 라이벌 NC 다이노스로 떠나자, 이대호는 "다른 팀은 전력 보강을 하는데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우리는 오히려 선수가 빠져나갔다"라고 아쉬워했다. 삼성 라이온즈로 FA 이적한 강민호와 함께 롯데를 떠난 두 후배들를 이날 특히 안타까워했다. 마침 이날 은퇴식에는 구단주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참석했다. 신 회장은 이대호에게 등 번호 10번이 새겨진 영구결번 기념 반지 한 쌍을 선물했고, 이대호는 자신이 쓰던 1루수 미트로 답례했다. 이대호는 신 회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표한 은퇴사에서 "앞으로 더 과감하게 지원해주시고, 특히 성장하는 후배 선수가 팀을 떠나지 않고 잘 성장하게 보살펴달라"고 말했다. 또한 "(롯데) 그룹에서도 힘을 써서 롯데 팬이 염원하는 우승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롯데가 투자에 인색한 건 아니었다. 2019년과 2020년 총연봉 1위였다. 하지만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탈락했다. 투자 대비 효과가 떨어지자, 성민규 단장 부임 후 혹독한 '연봉 다이어트'를 실시했다. 올해 총연봉은 59억원으로 3년 전보다 40억원 이상 감소했다. 주축 선수의 이적으로 선수단 총연봉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롯데는 이대호가 떠난 내년 시즌을 대비해 이번 겨울 FA 시장에 뛰어들 계획이다. 이형석 기자 2022.10.10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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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부산]"치킨&맥주 들고 올께요"...팬으로 관중석 이동한 이대호 '아듀'

"조선의 4번 타자는 이제 관중석으로 이동합니다." 부친 기일에 공교롭게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은퇴식을 치렀다. 이대호(40)는 슬펐고, 또 기뻤다. 이대호는 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전에서 현역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1회 말 적시 2루타로 녹슬지 않은 타격감을 뽐냈고, 7회는 고교 시절 주로 나섰던 마운드에 다시 올라 아웃카운트 1개를 잡고 홀드를 올렸다. 롯데팬, 야구팬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했다. 경기 뒤 열린 은퇴식에서 이대호는 동료와 팬을 향한 진심 어린 마음을 전했다. 이대호는 지난 21년을 돌아보는 오프닝 영상이 흘러나올 때부터 눈시울이 불거졌다. 이어 동료·지인·스포츠로 인연을 맺은 이들의 영상 편지가 이어졌다. 추신수(SSG 랜더스) 오승환(삼성 라이온즈) 정근우·최준석·이우민(이상 은퇴) 등 1982년생 동갑내기 친구의 메시지에 이어, 강민호(삼성) 황재균(KT 위즈) 손아섭(NC 다이노스) 등 오랜 시간 롯데 소속으로 함께 뛴 전 팀 메이트도 속내를 전했다. 영상 메시지를 보낸 이들의 면면은 점점 화려해졌다. 메에저리그(MLB)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으로 뛰었던 2016년 인연이 닿은 스캇 서비스 감독, MLB 대표 스타 플레이어 로빈 카노(은퇴)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구도 키미야스 감독, 오카다 다카히로, 마쓰다 노부히로 등 시애틀보다 더 긴 시간 뛰었던 일본 리그 전 소속팀(오릭스 버펄로스·소프크뱅크 호크스) 동료들도 빠지지 않았다. 2008년부터 롯데의 제2의 전성기를 끌고 밀었던 카림 가르시아와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도 등장했다. 다른 9개 구단은 은퇴 투어를 통해 이대호를 상징하고 그의 은퇴를 기념하는 뜻깊은 선물을 보냈다. 소속팀 롯데의 선물도 특별했다. 신동빈 구단주가 직접 그라운드에 나섰고, 이대호의 야구 인생을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는 영구결번(10번) 기념 커플 반지를 선사했다. 타격 7관왕·타격 자세·롯데에서 보낸 시간·등 번호 많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대호도 화답으로 자신이 쓰던 글러브를 신 구단주에게 선물했다. 이대호는 결국 울었다. 첫 은퇴 투어가 시작된 지난 7월 올스타전처럼 아내와 자녀들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신동빈 구단주가 직접 전한 기념 선물 증정식이 끝난 뒤 가족들의 영상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딸 예서 양은 "그동안 응원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너무 고생하셨고, 사랑해요"라고 했다. 아들 예승 군은 "앞으로 캐치볼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자"며 애교 섞인 바람을 전했다. 아내 신혜정씨는 남편의 '제2의 인생'을 응원했다. 그는 "무조건 같은 편이 되어서 함께 걸어가겠다. 기대된다. 그동안 고생했다"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전했다. 이내 다시 잡힌 전광판 속 이대호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대호는 그동안 사랑과 응원, 채찍질과 가르침을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날(8일)은 그가 3살 때 하늘로 떠난 부친의 기일이라고 한다. 이대호는 "감회가 남다르고 또 슬프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더그아웃에서 보는 사직구장 관중석 응원 광경만큼 아름다운 장면이 없었고, 타석에서 들리는 함성만큼 아름다운 소리가 없었다"며 "20년 넘게 그 장면과 함성을 보고 들을 수 있게 만들어 준 롯데팬에 감사하다. 나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대호는 이날 경기 전 열린 공식 인터뷰에서 "내 야구 인생은 50점이다. 롯데팬에 우승을 안겨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은퇴사를 통해서도 "절대적인 믿음 속에 20년을 보냈지만, 팬들과 제가 함께 꿈꾸던 우승을 이루지 못했다. 돌아보면 너무 아쉬운 순간, 안타까운 일들도 많았지만, 팀을 이끌어가야 할 내가 가장 부족했다. 후배들이 흔들릴 때 잡아주지 못하고, 흥분할 때 진정시키지 못했다. 모두 기대하는 순간 (타석에서) 해결하지 못한 일도 떠올라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기회가 주어지고, 경험이 쌓인다면, 나보다 더 활약할 수 있는 젊은 후배들이 있다. 팬분들이 변치 않는 믿음과 응원을 보내주신다면, 내가 그랬듯이, 남아 있는 선수들도 성장할 것이다. 그들이 용기를 갖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롯데의 세 번째 우승이 곧 다가올 것이다"는 바람 섞인 당부를 남겼다. 동료애도 드러냈다. 자신이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추신수, 함께 고생한 동기 이우민과 최준석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강민호·정훈·손아섭·전준우 등 롯데에서 한솥밥을 먹은 후배들도 언급했다. 故 최동원을 향해서는 "푸른 유니폼의 자부심을 알려주셨다"며, 박정태에겐 "악바리 근성과 끈기를 일깨워줬고, 우용득·강병철·양상문 전 롯데 감독들에겐 '조선의 4번 타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로이스터·조원우·허문회 감독의 이름도 잊지 않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가족을 향해 고마운 마음과 다짐도 전했다. 부산에 살면서도 지역 대표 관광지인 해운대조차 데려가지 못했다며, 딸·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독박' 육아에 고생한 아내를 향해서도 이 자리를 빌려 속내를 전했다. 이대호는 부친을 일찍 여의고,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성장했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그가 야구 선수 길을 걷는 데 가장 큰 힘을 준 건 할머니였다. 이대호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며 "걱정을 많이 끼쳤던 제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받으며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는 선수가 됐다. 오늘 가장 많이 생각나고, 보고 싶습니다"라고 하늘에 있는 할머니를 향해 외쳤다. 야구 예능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대호를 향한 러브콜도 쏟아지고 있다. 그는 영원한 야구인이며, 지도자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래도 당분간 그라운드 밖에 있을 것 같다. 이대호는 "이제는 배트 대신 맥주와 치킨을 들고 (딸과 아들) 예서와 예승이와 야구장에 오겠다. 롯데 '선수' 이대호에서 롯데 '팬' 이대호가 되겠다. '조선의 4번 타자'로 불러주셨던 이대호가 이제 관중석으로 이동합니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팬들을 향한 마지막 인사를 마쳤다. 이후 이대호의 영구결번식(10번)이 진행됐다. 최동원(11번)에 이어 구단 역사상 두 번째다. 그라운드에 도열한 동료, 지도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그는 그라운드 카퍼레이드를 끝으로 완전히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모든 행사가 끝난 뒤에도 그를 향한 시그니처 응원 '대~호'는 계속 울려퍼졌다. 부산=안희수 기자 2022.10.0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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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인터뷰]이대호 "내 야구인생 50점, 도망가는 것 같아서 미안해"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40·롯데 자이언츠)가 지난 21년을 돌아봤다. 이대호의 은퇴식이 10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다. '부산 야구' 대표 아이콘인 그는 2001시즌 데뷔, 롯데의 두 번째 전성기(2008~2011시즌)를 이끌었고, 일본 무대에 진출해 소속팀 소프트뱅크의 우승을 이끌었다. 한국 나이로 서른다섯 살이었던 2016년엔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MLB) 무대를 누볐다. 2017시즌 친정팀 롯데에 복귀, 5년 만에 롯데의 포스트시즌(PS) 진출을 이끌었다. 이대호는 한국 야구 대표 아이콘이다. 남긴 기록, 상징성, 스타성을 모두 보여줬다. 그런 그도 KBO리그에선 '무관의 제왕'으로 남았다. 이대호는 선수로 나서는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시종일관 "미안하다"고 했다. 다음은 이대호와의 일문일답. - 은퇴식 당일이다. 실감이 나는가. "이미 (올스타전 이후) 은퇴 투어를 하면서 팬들의 사랑을 짙게 느꼈고, '선수 생활이 끝날 때가 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오지 않을 줄 알았던 10월 8일(은퇴식)이 빨리 온 것 같다." - 새벽부터 사직구장 앞은 인산인해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감사했다. 아직 경기를 남겨두고 있어서, 출근길에 만난 팬들에게 더 많이 사인을 해드리지 못해 아쉬웠다. (아직) 야구선수다. 그라운드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겠다." - 마지막 경기에서 해내고 싶은 기록이 있나. "전혀 없다. 올 시즌을 앞두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나름대로 (정규시즌에) 그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저 '우승을 하고 싶어서 KBO리그로 돌아왔다'고 말했는데, 이를 이루지 못하고 그저 후배들에게 짐을 떠안기고 도망가는 것 같아 죄송하다. 앞으로도 통화나 사적인 만남을 통해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해줄 것이다" - 내일 계획은. "은퇴 투어를 소화하며 잠을 많이 못 잤다. 은퇴사를 준비하면서는 눈물이 나서 더 그랬다. 오늘 새벽엔 딸이 몸이 안 좋아서 돌봐야 했다. 일요일(9일)과 공휴일인 월요일(10일)은 그저 쉬려고 한다." - 은퇴 유니폼은 마음에 드는가. "원래 빨강색을 좋아한다. 디자인도 잘 나온 것 같다. 마음에 든다." - 경기장 훈련을 소화하며, 은퇴를 실감한 사연이 있나. "준비한 은퇴다. 후배들에게도 해줄 수 있는 말을 모두 해줬다." - 야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성적이 안 좋았던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귀국한 날이다. 비난을 크게 받았다. 성적이 좋았을 때 받는 응원도 당연히 감사하고 기억에 남지만,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결과가 따라주지 않았을 때는 허무감이 생긴다. 그렇다고 야구팬께 이런 고충을 알아달라고 할 수도 없다. 국제대회에서 잘 못 하고 싶은 선수는 없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새기는 건 영광이지만, 그만큼 부담도 크다.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위로를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그러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7일 기준으로 리그 타격 4위(0.332)다. 여전히 최고의 기량을 갖췄다는 평가다. "마지막 시즌을 준비하면서 노력했다. 운도 좋았다. 기회도 많이 왔다." - 눈물을 보일까 봐, 사직구장에는 당분간 방문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 20년 넘는 시간 동안 오간 곳이다.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 후배들은 응원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사직구장)에 오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유니폼을 입어야 할 것 같고, 방망이를 돌려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길 게 분명하다." - 故 최동원에 이어 롯데 소속 두 번째로 영구결번식을 치른다. "최동원 선배님의 모습을 보며 야구를 했다. 후배들도 그가 보여준 정신력을 잃지 않길 바란다." - 한·미·일 무대를 모두 밟았다. 이대호의 야구 인생은 항상 도전이었다. "사실 미국 무대에서 더 뛸 수 있었다. 그러나 힘이 남아 있을 때 롯데의 우승에 기여하고 싶었다. (이를 이루지 못해) 죄를 짓고 떠나는 것 같다." - 야구 인생에 점수를 준다면. "50점이다. 개인 성적은 괜찮은 것 같다. 편견과 많이 싸웠는데, 잘해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이 팀(롯데)에 우승을 안기지 못했다. 50점은 그런 이유다." - 최근 불펜에서 투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은퇴식에 특별 이벤트가 있나. "21년째 (투수로는) 준비를 하고 있다." 부산=안희수 기자 2022.10.0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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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박정태·니퍼트·배영수, 프로야구 40주년 올스타 추가 발표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리그를 대표한 추가 레전드 4명을 발표했다. KBO는 '전문가 투표(80%)와 팬 투표(20%)를 합산한 결과, 선정위원회에서 추천한 177명의 후보 가운데 이상훈이 27위, 박정태가 32위, 니퍼트가 33위, 배영수가 35위에 자리했다. 네 선수는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불릴 수 있는 선수들'이라고 1일 밝혔다. 이상훈은 현역 시절 척추분리증과 혈행장애를 극복하고 통산 71승 40패 1홀드 98세이브 평균자책점 2.56을 기록했다. KBO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단일 시즌 선발 20승(1995)과 30세이브(1997·2003)를 모두 달성했다. 이상훈은 전문가 투표에서 156명 중 102명(52.31점)에게 표를 받았고, 팬 투표에서는 109만2432표 중 23만7253표(4.34점)를 얻어 총 점수 56.65점을 획득, 40명의 레전드 중 27위에 올랐다. 현역 시절 '악바리' '탱크'로 불렸던 박정태는 롯데 자이언츠 원클럽맨이다. 1993년 2루 슬라이딩 과정에서 왼발목이 골절, 다섯 차례 수술을 받으며 선수 생활의 위기를 맞기도했지만 복귀해 1999년 롯데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 통산 성적은 타율 0.296 85홈런 639타점이다. 박정태는 전문가 투표에서 79표(40.51점), 팬 투표에서 36만2259표(6.63점)를 받아 총 점수 47.14점으로 32위에 이름을 올렸다. 더스틴 니퍼트는 KBO리그 역대 외국인 최다승(102승) 기록 보유자다. 두산 베어스에서 7년, KT 위즈에서 1년을 뛰었다. 2015시즌 중 어깨충돌증후군으로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재기에 성공하며 '코리안 드림'을 만들어냈다. 2016시즌에는 역대 외국인 투수 최다 승 타이기록인 22승으로 두산의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끌며 정규시즌 MVP와 골든글러브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니퍼트는 전문가 투표에서 79표(40.51점), 팬 투표에서 32만4123표(5.93점)를 받아 총 점수 46.45점으로 33번째 레전드로 선정됐다. '푸른 피의 에이스' 배영수의 선수 생활은 그 누구보다도 드라마틱 했다. 강속구를 던지는 정통파 투수로 두 시즌 연속 삼성 라이온즈의 우승(2005·2006)을 이끌었지만,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고 선수 생활에 위기를 겪었다. 2009시즌 성적이 1승 12패 평균자책점 7.26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강인한 의지와 노력으로 기교파 투수로 변신, 삼성의 4년 연속 우승(2011~2014)에 일조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통산 성적은 138승 122패 7홀드 3세이브 평균자책점 4.46. 배영수는 전문가 투표에서 79표(40.51점), 팬 투표에서 23만2804표(4.26점)를 받아 총 점수 44.77점으로 35위에 자리했다. 레전드로 선정된 선수들의 시상은 레전드들의 전 소속 구단 홈 경기에서 진행된다. 배영수에 대한 시상은 친정팀인 삼성과 마지막 소속팀이었던 두산이 맞붙는 오는 3일 잠실 경기에서 있을 예정이다. 박정태의 시상은 5일 NC 다이노스와 롯데의 사직 경기. 니퍼트에 대한 시상은 니퍼트의 마지막 소속팀인 KT와 친정팀 두산이 맞붙는 23일 잠실 경기에서 이루어진다. 이상훈에 대한 시상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맞이한 KBO는 40주년 레전드 40인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선동열·최동원·이종범·이승엽이 톱4를 차지했고 지난달 25일 발표에선 박철순(11위) 이만수(12위) 백인천(24위) 김성한(25위)도 선정의 기쁨을 누렸다. 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2.08.01 14:21
e스포츠(게임)

‘레전드 최동원’ 이렇게 부활했다

컴투스가 'KBO 레전드' 고 최동원을 메타 휴먼 기술로 재현한 과정을 공개했다. 컴투스는 지난 4월 신작 ‘컴투스프로야구V22(컴프야V22)’ 출시와 함께 게임의 대표 얼굴로 KBO 레전드인 최동원를 내세운 바 있다. 게임의 앱 아이콘 이미지를 장식함은 물론 메타 휴먼 제작 기술과 3D랜더링 기법을 활용한 홍보 영상을 통해 고인의 현역 시절 모습을 만나볼 수 있게 했다. 컴투스는 이번에 홍보 영상의 메이킹필름을 공개했다. 홍보 제작 과정과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담았으며, 지난 16일 진행된 ‘2022 KBO 리그 올스타전’에서 리그 40주년 레전드 톱4 중 한 명으로 선정된 최동원의 시구 장면에서도 활용됐다. 해당 영상은 약 4분 분량으로 KBO의 40주년과 ‘컴프야V22’의 탄생을 기념해 레전드 최동원을 소환한다는 메시지로 시작한다. 이후 최동원의 생전 방송 활동과 인터뷰, 개인 소장 자료를 통해 음성 데이터를 추출해 목소리 복원 AI가 분석하는 과정이 공개됐다. 또 최동원만의 투구폼 구현을 위해 고인의 신체 구조와 비슷한 야구 선수 출신 지원자를 선발해 두 달여 시간에 걸쳐 진행된 투구 폼 훈련 과정이 소개됐다. 회사 측은 “104편의 영상 및 1800여 개의 사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리콘 얼굴 틀을 만들고, 6시간에 걸친 분장으로 1984년 전성기 최동원의 모습으로 구현했다”고 말했다. 권오용 기자 bandy@edaily.co.kr 2022.07.1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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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 없었다, 프로야구 4대 천왕

'국보 투수' 선동열(59), '무쇠팔' 故 최동원, '바람의 아들' 이종범(52) 그리고 '국민 타자' 이승엽(46). 야구인과 야구팬이 직접 선정한 프로야구 4대 천왕 결과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지난 1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2 올스타전에서 리그 출범 40주년을 기념해 선정한 '레전드 40인' 중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은 네 명을 공개했다. 전문가(156명)와 야구팬(109만2432명)의 투표 결과를 각 80%와 20% 비율로 반영한 결과, 선동열이 총점 91.05점을 받아 프로야구 40년 역사 '최고의 아이콘'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영원한 라이벌' 최동원은 89.99점으로 2위, 이종범이 87.31점으로 뒤를 이었다. 이승엽은 86.55점을 받아 4위에 올랐다. 야구계에는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라는 말이 있다. 세 선수를 모두 지도한 김응용 감독이 남긴 평가로 알려졌다. 여기에 '전설은 최동원'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선동열은 그야말로 최고의 투수였다. 데뷔 2년 차였던 1986시즌, 24승(6패) 평균자책점 0.99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기며 페넌트레이스 MVP(최우수선수)를 수상했다. 통산 8번이나 평균자책점 1위에 올랐고, 정규시즌 MVP도 3번이나 차지했다. 이승엽은 2003시즌, 56홈런을 기록하며 역대 단일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웠다. 최다 홈런왕(5회)과 개인 통산 최다 홈런(467개) 기록도 갖고 있다. 이종범은 공격·수비·주루 모두 뛰어났다. 1994시즌엔 타율 0.393 84도루를 기록하며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시리즈(KS) MVP만 2회 거머쥐며 해태 왕조의 전성기 연장을 이끈 주역이다. 최동원은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였다. 1984년 롯데 자이언츠 에이스로 보여준 투혼은 아직도 회자된다. 정규시즌엔 51경기에 등판, 무려 284와 3분의 2이닝을 소화하며 27승(13패) 6세이브 223탈삼진을 기록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KS에서는 5경기에 등판, 홀로 4승을 거두며 롯데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전무후무한 기록. 그는 2011년 대장암 투병 끝에 하늘의 별이 됐다. 그를 가슴에 새긴 야구팬은 더 많아졌다. '라이벌' 선동열은 "최동원 선배는 나에게 우상 같은 존재였다. 특히 그 연투 능력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었다며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최동원은 전문가 투표에서 전원에게 득표, 155표를 얻은 선동열보다 1표 더 받았다. 개인 통산 기록이나 수상 이력, 우승 경험은 선동열이 앞선다. 그러나 전문가 중 딱 1명은 최동원이 남긴 기록 이상의 가치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이종범과 이승엽은 팬 투표 결과로 순위가 갈렸다. 전문가 점수에선 나란히 76.41점(149표)을 얻었지만, 팬 투표에서 59만 5149표(10점 90점)를 얻은 이종범이 55만 3741표(10.14점)를 얻은 이승엽을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 공·수 기여도가 높았던 이종범이 팬심(心)을 사로잡았다. 아들인 이정후(키움 히어로즈)가 리그 최고 타자로 발돋움하며 이종범의 선수 시절을 향한 관심이 높아진 점도 투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선동열과 이승엽, 이종범은 레전드(LEGENDS)라는 문구와 현역 시절 등 번호가 가슴에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올스타전을 찾은 만원 관중 앞에 섰다. 최동원의 자리를 대신한 아들 기호씨는 "아버지를 기억해주고 추억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겨 박수를 받았다. 이들의 시구 퍼포먼스도 특별했다. 각 구단 대표 팬이 홈구장에서 시구하는 모습이 전광판을 통해 릴레이로 상영됐고, 그래픽으로 구현된 최동원의 투구 모습이 영상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후 잠실구장 마운드에 선 선동열이 마치 그 공을 받은 듯한 포즈를 취한 뒤 시구에 나섰다. 유격수 자리에 나선 이종범이 포수 김태군에게 공을 받은 뒤 1루를 지키던 이승엽에게 송구하는 퍼포먼스까지 보여줬다. 이번 올스타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잇는 자리였다. 이대호(롯데), 박병호(KT 위즈) 등 현역 최고 스타들이 레전드 4인에게 직접 꽃다발을 전달했다. 올스타전 본 경기에선 황대인(KIA 타이거즈), 정은원(한화 이글스) 등 젊은 선수들이 스타성을 뽐냈다. 이정후는 미국 무대 진출 의지를 드러내며, 아버지 이종범을 넘어서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선동열은 KBO리그 양현종(KIA)부터 안우진(키움)까지 KBO리그 대표 에이스 계보를 잇고 있는 투수들을 칭찬하고 격려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덕분에 올해 올스타전이 더욱 품격을 갖출 수 있었다. 안희수 기자 2022.07.18 06:00
야구

[프로야구 40주년 올스타⑫] '송골매' 송진우

이변은 없었다. '송골매' 송진우(56)가 프로야구 40주년 올스타 선발 투수로 선정됐다. 송진우는 20대부터 50대까지 세대별 야구인 10명씩 총 40명이 참여한 일간스포츠 투표에서 22표(야구인 1명이 선발 투수 5명씩 투표)를 받았다. 선발 투수 중에선 '국보' 선동열(40표·만장일치) '무쇠팔' 최동원(37표)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6표)에 이어 네 번째 최다 득표자였다. 치열한 경쟁을 뚫어내고 선발 한 자리를 차지했다. 세광고를 거쳐 동국대를 졸업한 송진우는 1988년 실업야구팀 세일통상에 입단했다. 그해 열린 서울올림픽 출전을 위해 프로행을 1년 미뤘다. 당시 올림픽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선수들이 뛸 수 있었다. 그는 1989년 고향팀 한화 이글스 전신 빙그레에 입단, 본격적으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동국대 감독 시절 송진우를 스카우트한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은 과거 "한마디로 센스가 있는 투수였다"고 회상했다. 첫 경기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송진우는 1989년 4월 12일 대전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9이닝 7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KBO리그 데뷔전 완봉승은 1983년 장호연(당시 OB 베어스) 1985년 박동수(당시 롯데)에 이어 역대 세 번째였다. 그해 8월 OB전에선 시즌 두 번째 완봉승을 따내기도 했다. 첫 시즌 성적은 9승 10패 9세이브 평균자책점 2.81. 탈삼진(97개)과 세이브, 평균자책점에서 모두 리그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송진우는 1992년 리그를 평정했다. 48경기에 등판해 사상 첫 다승(19승)과 세이브(17세이브) 1위를 모두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데뷔 4년 차 만에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우뚝 섰다. 꾸준함을 이어가던 그는 1997년 9월 리그 첫 '왼손 투수 100승'이라는 훈장을 달았다. 1999년에는 구대성, 정민철과 함께 한화의 황금 트로이카를 구축, 첫 한국시리즈(KS) 우승을 맛봤다. KS 2차전에 선발 등판한 송진우는 7과 3분의 1이닝 3실점 쾌투로 승리 투수가 됐다. 1차전에 승리했던 한화는 시리즈 분수령이던 2차전까지 승리, 최종 4승 1패로 창단 14년 만에 첫 우승을 이뤘다. 송진우의 기록 도장 깨기는 끝이 없었다. 2000년 5월 18일 무등 해태 타이거즈전에서 32세 3개월 2일의 나이로 리그 역대 10번째 노히트노런을 해냈다. 아직도 깨지지 않는 리그 최고령 노히트노런 기록이 그의 몫이다. 2002년에는 무려 220이닝을 소화하며 데뷔 첫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했다. 당시 그의 나이가 서른여섯 살이었다. 잠시 부진해 "송진우의 시대가 끝났다"는 평가가 나왔던 시기도 있었지만 화려하게 재기했다. 늘 푸른 소나무처럼 한결같았던 송진우는 2003년 170승, 2004년 180승, 2005년 190승까지 전인미답의 고지를 하나씩 정복해나갔다. 그리고 2006년 8월 29일 KIA전에서 대망의 200승을 달성했다. 프로 데뷔 18시즌, 580경기 만에 따낸 값진 훈장이었다. 프로 마지막 시즌이던 2009년에는 전무후무한 3000이닝까지 돌파, '200승-100세이브-2000탈삼진-3000이닝'이라는 만화 같은 성적을 완성했다. 한화는 그의 등 번호 21번을 영구결번으로 처리했다. 송진우는 선수 권익 보호와 권리 행사에도 앞장섰다. 2000년에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창립을 주도, 초대 회장을 맡아 '회장님'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구단의 반대가 강했던 만큼 모두가 꺼리는 자리였지만 선뜻 맡아 목소리를 냈다. 2009년 1월에는 양준혁, 전준호 등과 의기투합해 성구회(星球會)를 결성, 초대 회장에 올랐다. 성구회는 통산 200승, 2000안타, 300세이브를 기록한 대선수만 가입할 수 있는 모임이다. 은퇴 후 코치와 해설위원을 거쳤고 독립야구단 스코어본 하이에나들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김종국 KIA 감독은 "송진우 선배는 KBO리그 역대 최다승 투수다. (40주년 올스타를 선정할 때)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서용빈 KT 위즈 2군 감독은 "송진우 선배는 제구력과 경기 운영, 견제와 수비, 변화구 구사 능력 모두 뛰어났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혜성(키움 히어로즈)은 "류현진과 송진우 선배는 한국 최고의 왼손 투수"라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송진우는 철저한 자기 관리로 롱런했다. 데뷔 초창기에는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는 전천후로 뛰었다. 선수 생활 말미에는 중간 계투로 활약하기도 했다. 김경기 스포티비 해설위원은 "송진우는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았던 선수다. 만약 선발로만 뛰었다면 더 좋은 성적을 냈을 거다. 마당발처럼 뛰는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고 평가했다. 최태원 삼성 코치는 "처음에는 직구와 슬라이더 비중이 큰 구속형 투수였지만 나중에 완급 조절 통해 전성기 구위를 보여줬다"고 돌아봤다. 양상문 스포티비 해설위원은 "송진우가 남긴 통산 최다승 기록은 정말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프로야구 역사에 남긴 발자취는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2022.01.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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