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초의 미장센] 스마트폰만 비추는 4분, 휴대폰이 곧 내가 된다
2시간 남짓한 시간 안에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하는 영화 속에서, 장면이 차지하는 시간은 곧 연출자의 ‘관심사’다. 무심코 지나가는 한 장면도 수많은 컷들 중 고르고 골라 선택된 것이다. 그 만큼 스크린의 시간은 철저히 선택적이면서, 또 정치적으로 배치된다.그런 의미에서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도입부는 상당히 인상 깊다. 김태준 감독의 데뷔작인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인트로 장면은 무려 4분이나 이어진다. 그것도 주구장창 스마트폰만 비추면서다.
영화는 누군가의 스마트폰이 오전 7시 알람으로 울리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후 빠른 템포로 일상을 보내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포커싱은 늘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의 주인은 친구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면서도, 대화는 곧 메신저 위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날 먹은 식사는 사진이 되어 SNS에 업로드되고, 밥값은 은행 어플의 푸시 알림이 되어 스마트폰으로 날아든다.그렇게 해가 뜨고 잠이 드는 순간까지, 영화는 4분이라는 시간을 쓰면서 ‘스마트폰에 일상의 모든 것이 담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트로가 끝나갈 때 쯤이면 관객은 ‘스마트폰은 곧 나’라는 것을 각인한 상태가 된다. 이 도입부를 통해 쉽게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일상의 소재를 관객에 강하게 인식시키는 밑작업을 한 셈이다. 스마트폰의 존재감이 부각되면서 영화에 대한 관객의 몰입감과 공감대는 그 만큼 높아진 상태가 된다. 그리고 ‘또 다른 나’가 된 스마트폰은 점차 일상을 빼앗아가는 ‘빌런’으로 자리 잡아간다.넷플릭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평범한 회사원이 자신의 모든 개인 정보가 담긴 스마트폰을 분실한 뒤 일상 전체를 위협받기 시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김태준 감독은 지난 15일 제작보고회에서 “일상을 24시간 함께하는 스마트폰은 나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존재”라며 “일상적인 스마트폰의 모습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스마트폰을 보기만 해도 공포와 서스펜스가 느껴지기를 바랐다”고 밝혔다.
김태준 감독의 의도대로, 극이 진행될수록 스마트폰은 주인공 나미(천우희)의 도플갱어가 되어 그의 사생활을 엿보는 ‘또다른 자아’처럼 그려진다. 김태준 감독은 스마트폰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사용하는 카메라가 아닌 실제 스마트폰, VR카메라, 초광각렌즈 등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김태준 감독은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소통, 원격 모임 같은 것들이 많아지면서 실제 인간 사이의 소통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 않나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러한 시대상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맞닿아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 그런 사소한 일은 어떤 공포로 이어질 수 있을까. 17일 넷플릭스 공개. 김혜선 기자 hyeseon@edaily.co.kr
2023.02.18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