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당성증 감독 “전국 돌아다닌 스카우터 시절, 아이 가족그림에 아빠가 없어…”
14년 전, 프로팀 스카우트로 한창 전국을 누비던 때였다. 하루는 와이프가 아이 유치원을 다녀온 뒤 표정이 굳었다. 유치원을 찾아온 어머니께 선생님은 조용히 그림 한 장을 내밀었다. 아이가 그린 가족 그림엔 아버지가 없었다. 당성증(47) 대구FC 감독은 8일 일간스포츠와 전화 통화에서 스카우트 시절 얘기를 꺼냈다. 당 감독은 “지금은 웃을 수 있지만 당시엔 많이 힘들었다. 난 빵점 남편, 빵점 아빠였다"고 털어놨다. 당 감독은 “처음 스카우트가 되었을 때 1년 365일 중 열흘 정도 집에 들어갔다. 경기를 많이 보려는 욕심에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그렇게 됐다”며 멋쩍어 했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 내공을 쌓아 온 그는 축구계와 구단에 믿음을 심어줬고 마침내 사령탑에 올랐다. 당 감독은 "인내할 줄 아는 것이 내 장점"이라고 했다. 2012년 대구가 화끈한 삼바 축구였다면, 2013년 대구는 은근히 끓어오르는 숭늉같은 매력을 선보인다.- 시무식에서 선수들의 발을 씻겨 줬다고 들었다. “우리는 발을 업(業)으로 삼는 이들이다. 선수들의 발을 씻겨주며 목표를 함께 공유하고, 팀워크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 내 뜻이 통했다면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한 발 더 뛰지 않을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선수들을 이해시키며 끌어나가려 한다. 강압적인 방식은 당장은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생명이 짧다.”- 당 감독님을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다. 선수 시절엔 어땠나.“어렸을 땐 잘 나가는 선수였다. 주니어 대표팀에선 주장도 했고, 청소년 대표팀에도 들어갔다. 그런데 그땐 철이 없었다. 축구 잘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훈련을 게을리 했다. 절실함이 없었다. 정신 차리고 제대로 하려고 보니 부상이 왔다. 연습경기 하다 오른쪽 발목을 크게 다쳤다. 상무에서 뛰다 LG에서 잠깐 선수생활을 했는데, 부상 때문에 경기를 많이 못나갔다. 자존심도 상하고 해서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 때가 29세였다.” 당 감독의 프로 기록은 1경기 출전, 그것도 교체 출전이 전부다. - 코치 생활이 길었다. 감독님을 모시랴, 선수들을 챙기랴 프로팀 코치는 쉽지 않은 자리인데.“울산에서 16년, 대구에서 3년을 코칭스태프로 지냈다. 모신 사령탑만도 고재욱, 김정남, 김호곤, 이영진, 모아시르 감독님 등 총 5명이다. 울산에선 스카우터도 4-5년을 했고, 유소년 팀 감독도 맡았다. 그 시간이 쉬웠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한 번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이영진 감독님의 투혼에 가까웠던 정신력이나 모아시르 감독님의 인격적인 면 등 감독님 한 분 한 분의 특징이 기억에 남는다. 그게 모두 내 자양분이 됐다.”- 스카우터를 오래 했으니 선수 보는 눈이 남다르겠다.“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땐 지금처럼 초중고 리그의 체계가 잡히지 않았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회가 열렸고, 그 경기를 다 보겠다는 마음으로 다녔다. 그러다 보니 1년 365일 중 집에 들어간 날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때 부인이 그러더라. 유치원 선생님이 불러 갔더니 아이가 그린 가족 그림을 보여주더라고. 그 그림에 아버지가 없었다고 한다. 가족들에게 많이 미안했다. 그런데 난 그땐 열심히 일하는 게 가족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또 선수 시절 열심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철 없던 옛날 생각해서 지도자 생활만큼은 악바리처럼 하려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나.“이천수, 유상철, 최성국 등 다양한 선수들을 발굴해 울산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금 부산에 있는 김창수다. 학교 다닐 땐 무명 선수와 다름없었지만, 선수로서 태도가 정말 훌륭했다. 난 축구 외적인 행동이나 자세를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다. 생활 태도가 축구와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어떤 대구를 만들고 싶나.“대구가 15위(2010년), 12위(2011년) 그리고 지난해 10위를 했다. 그 이상은 해야하지 않을까. 멋있게, 잘 하고 싶다. 그러나 몇 위를 하겠다고 선언하거나, 겉으로 호들갑을 떨고 싶진 않다. 인내할 줄 아는 게 내 장점이다. 은근하게 끓어오르는 대구를 지켜봐 달라."손애성 기자 iveria@joongang.co.kr사진=대구FC 제공
2013.01.09 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