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최근 은퇴를 선언했다. 이 소식을 듣고 김호(67) 전 수원 삼성 감독이 한 말이다. 퍼거슨 감독은 27년 동안 38개의 우승컵을 맨유에 안겼다. 그리고 지난 주말 마지막 홈경기에서 성대한 은퇴 세리머니를 했다. 김호 전 감독이 부러운 것은 퍼거슨 감독의 업적이 아니다. 그 역시 창단팀 수원을 이끌고 1996년부터 2003년까지 13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감독을 믿고 기다려주는 풍토를 부러워한 것이다. 김호 전 감독은 "한국에서는 갑(甲)인 구단이 을(乙)인 감독을 소모품으로 생각한다. 존중 없이는 한국의 퍼거슨은 나올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에선 8년 동안 지휘봉을 잡은 김호 전 감독도 축복 받은 편이다. 장수 기록으로는 '라이벌' 김정남 전 울산 현대 감독(8년 4개월 9일)에 이어 역대 2위에 해당한다. K리그 감독의 평균 재임기간은 767일, 약 25개월로 2년을 조금 넘는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따르면 K리그 출범 이후 30년 동안 102명의 감독이 144번의 감독 계약(대행 계약 포함)을 했다. 1년을 못 채운 경우가 60번(약 41%), 2년 안에 그만둔 경우는 85번(59%)이나 된다. 일선 감독들은 "팀을 철학에 맞게 바꾸는데 3년은 걸린다"고 말한다. 그러나 3년 이상 계약이 이어진 경우는 31차례에 그친다. 색깔을 입히기도 전에 계약이 종료되거나 경질된 감독이 절반을 훌쩍 넘긴 것이다.
김호 전 감독은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슈퍼 갑' 구단의 횡포에 비정규 계약직인 감독은 휘둘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K리그를 끌고 가야할 리딩 구단들의 감독 나이가 어려졌다. 재정이 열악하다는 핑계로 경험 없고 구단 말을 잘 듣는 감독을 쓰기 때문이다"고 꼬집었다. 한 축구 관계자는 "일부 구단은 갑의 지위를 이용해 월권을 행사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선수 선발과 기용은 감독의 권한이지만, 올시즌까지도 프런트에서 뽑아온 선수를 쓰라는 압력을 넣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고 뚝심 있게 기다려주지도 아니다. 강등제가 도입된 지난해 16개 프로팀 감독 중 10명이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교체됐다. 올시즌에도 대구의 당성증 감독이 경질됐다. 한 시민구단 감독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당 감독님도 생각하던 축구가 있을텐데 색깔을 내기도 전에 그만두게 되셨다"며 "나도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른다"고 말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