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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오승환] "오승환은 시즌을 12월 24일에 시작했어요"

"오승환의 시즌은 12월 24일에 시작했어요."오승환의 신인 시절부터 쭉 지켜본 김태한 코치(현 KT 위즈 수석코치)는 그에 대해 한 마디로 이렇게 정리했다. 새 시즌 시작 한참 전인, 그것도 해(연도)도 바뀌지 않은 겨울에 오승환은 괌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크리스마스의 달콤한 휴일도 땀으로 보내며 새 시즌을 준비했다. 김태한 코치는 "요즘 선수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면 못할 것이다. 그만큼 오승환은 성실했고 강했다"라고 말했다. 오승환은 30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리는 은퇴식을 통해 21년 현역 생활에 작별을 고한다. 2005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데뷔한 오승환은 2013년까지 KBO리그를 평정한 뒤, 일본프로야구(NPB)와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도 '끝판대장'의 명성을 날리고 한국에 돌아와 5시즌을 더 뛰었다. KBO리그 15시즌 동안 오승환이 기록한 성적은 737경기 44승 33패 19홀드 427세이브 평균자책점 2.32다. 2005년 데뷔해부터 마무리 역할을 맡았다. 그해 6월까지는 마무리 투수 앞에서 필승조 역할을 했지만, 선동열 당시 삼성 감독의 결단에 7월부터 본격적으로 마무리 본업에 나섰다. 그해 오승환은 61경기에 출전해 99이닝을 소화, 10승 1패 11홀드 16세이브 평균자책점 1.18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기고 그해 신인왕까지 올랐다. 아무리 대졸(단국대) 투수, 어느 정도 몸이 완성된 선수라고 해도 입단 해부터 이렇게 두각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타고난 걸까. 이에 오승환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땐 워낙 운동량이 많았다. 대학 시절에도 운동량이 많았는데, 그때보다 더 많이 했다. 원래 삼성이 운동량이 많은 팀으로 유명했고, 일본인 트레이닝 코치까지 오셔서 엄청나게 체계적이었다. 덕분에 체력이 붙었다"라고 설명했다. 노력의 결실이었던 것이다. 김태한 코치도 "오승환의 능력은 타고난 걸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역 시절 삼성과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에서 뛰다 2005년 전력분석원으로 삼성에 재입단한 그는 오승환을 신인 시절부터 쭉 봐온 인물이다. 김 코치는 "입단 때부터 루틴이 꾸준하고 철저했던 선수였다"라며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오승환의 활약은 타고난 능력으로 절대 될 수 없는 기록이다. 그만큼 엄청난 노력이 뒷받침됐다"라고 전했다. 김 코치가 오승환을 가장 강렬하게 기억한 시간이 있다. 김 코치는 "오승환은 매년 12월 24일에 괌으로 출국해 개인 훈련을 했다. 시즌 준비를 연초도 아닌 연말부터 했다"라며 "야구 외적의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훈련을 해왔다. 알게 모르게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거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요즘 후배들에게도 이런 모습을 강조하고 싶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오승환은 대단했다"라고 전했다. 더 놀라운 건, 20년이 지난 지금도 개인 훈련 루틴을 고수해 온다는 점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디테일과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큰 틀에서의 루틴은 꾸준히 지켜오고 있다는 게 김태한 코치의 설명이다. 김 코치는 "경기 전후로 준비하고 훈련하는 건 남들 다 하는 거다. 마음가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승환이 다른 게 있다면, 안 보이는 곳에서 철저하게 준비하고 더 많이 노력했다는 거다"라며 그의 땀을 높게 평가했다. 윤승재 기자 2025.09.30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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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오승환] 56년 신문으로 돌아본 오승환의 21년 "저도 정말 오래 뛰었네요"

'끝판대장' 오승환(43·삼성 라이온즈)이 21년 간의 프로 생활을 마치고 30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리는 은퇴식을 통해 유니폼을 벗는다. 올해 창간 56주년을 맞은 본지는 최근 오승환과 만나 옛날 기사를 읽으며 지난 21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2004년 9월 17일: 단국대 6년 만에 추계리그 우승, 오승환 최우수선수상본지에 오승환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 건 2004년 9월 17일이었다. 오승환이 몸담고 있던 단국대가 6년 만에 추계리그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과 함께, 오승환이 대회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오승환은 "처음으로 내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된 대회였다"라며 "(팔꿈치 수술 이후) 4학년 때부터 조금씩 던지면서 삼성까지 오게 됐다. 1·2학년 땐 정말 힘들게 재활 훈련을 했는데, 고생 끝에 우승도 했고, 최우수선수상(MVP)도 받아서 의미가 뜻깊었다"라고 돌아봤다. 오승환은 고등학교 시절 허리 부상, 대학교 시절 팔꿈치 수술 시련을 모두 이겨내고 최고의 투수 반열에 올랐다. ▶2005년 10월 22일: 한국시리즈(KS) MVP 오승환 "팬들의 가슴에 스트라이크 던지고 싶다."2005년 데뷔 해, 오승환은 그해 한국시리즈(KS)에서 팀의 우승을 매조짓는 세이브를 기록했다. KS 최우수선수(MVP)도 그의 몫이었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팬들의 가슴에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싶다"라며 "팬들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선수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당시를 돌아본 오승환은 "은퇴를 선언한 지금 돌아보면, 팬들의 가슴에 더 많은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싶었는데 아쉽다"며 "팬분들께서 좋게 봐주신 덕분에 많은 별명도 생기고 삼성 투수 최초로 영구 결번(21번)도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항상 감사드린다"라고 전했다. ▶2005년 11월 1일: 신인왕 오승환, 10년 만에 신인왕 배출그해 오승환은 신인상을 받았다. 삼성 선수로는 1995년 이동수 이후 10년 만의 신인왕이었다. 당시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앞으로 10년, 15년 동안 흐트러짐 없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한 그는 21년 동안 마운드를 지키며 최고 마무리 자리에 올랐다. 오승환은 "삼성이라는 좋은 팀에 와서 이기는 경기도 많이 했고, 시즌 중반에 마무리까지 맡으면서 신인왕도 타고 KS MVP도 했다. 이런 팀에서 뛸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사실 데뷔해부터 마무리 보직을 맡을 거란 상상을 하지 않았다는 그는 "단지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던져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선동열 감독님께서 좋게 봐주신 덕분이다"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2006년 11월 18일: 강행군 오승환 무쇠 체력 비결2006년 오승환은 47세이브를 기록하며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다. 지난해 KS(10월)와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11월)부터 올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프로야구 일정(3~10월)-KS(10월)-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11월)-도하 아시안게임(12월)이라는 강행군을 모두 펼치면서도 굳건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그는 태연했다. 오승환은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오면서 먹는 것도 달라지고 훈련도 체계적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체력이 붙은 것 같다"라며 "그리고 그땐 워낙 운동량이 많았다. 원래 삼성이 운동량이 많은 걸로 유명했다. 이런 훈련을 통해 몸이 단련되고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8년 9월 24일: 3년 연속 40세이브 도전, 오승환 기록에 ML도 놀란다2008년 오승환은 '세계 신기록'에 도전했다. 3년 연속 40세이브 기록이었다. 하지만 그해 39세이브로 시즌을 마치면서 도전에 실패했다. 그러나 오승환은 "하나도 안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기록에 워낙 둔했다"라고 말한 그는 "일본의 이와세 히토키가 보유하고 있던 단일 시즌 아시아 최다 세이브 기록(종전 46개)에 다가설 때(2006년) 처음으로 '기록을 깨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일본 야구가 역사가 긴데, 마무리 투수 기록은 내가 깨고 싶다고 생각했다"라며 "아시아 통산 최다 세이브 기록도 이와세(종전 407개)가 갖고 있어서 욕심이 있었다"라고 전했다. 해당 기록은 2006년 47세이브, 2024년 408번째 세이브로 모두 오승환이 갈아치웠다. ▶2011년 2월 21일: 다시 보는 '오승환표 돌직구'2009년과 2010년은 오승환에게 시련의 한 해였다. 2009년 7월 어깨 인대 부상으로 도중 낙마했고, 2010년엔 6월 팔꿈치 수술로 도중 하차했다. 하지만 오승환은 절치부심으로 이겨냈다. 당시 기사에서 그는 시즌 전 전지훈련에서 "예전에는 최고 마무리로 불렸을지 모르지만 지난 2년 동안 (타자들에게) 만만한 투수가 됐다"라며 "구속, 구위, 제구 모두 만족스럽다. 자신감을 찾아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해 그는 47세이브로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이에 오승환은 "그때 무너졌으면 난 선수 생활을 오래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불펜 투수가 4~5년을 꾸준하게 한 선수가 별로 없었다. 그걸 깨고 싶었고, 정말 열심히 운동했다"라고 돌아봤다. 그는 "'오승환은 끝났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보란듯이 부활을 증명하고 싶었다"라며 부활의 원동력을 설명했다. ▶2011년 10월 3일: 47세이브 오승환, 4관왕 윤석민 추월?2011년 47세이브를 올린 그는 MVP 후보에도 올랐다. 하지만 경쟁자들이 쟁쟁했다. 선발 투수로서 4관왕(평균자책점. 다승, 탈삼진, 승률)을 확정한 윤석민(당시 KIA 타이거즈)과 팀 동료이자 타격 3관왕(홈런, 타점, 장타율)인 최형우가 경쟁자였다. 결국 윤석민이 MVP를 수상했고, 오승환은 득표 2위에 머물렀다. 오승환이 MVP를 수상했다면 그는 1999년 구대성(당시 한화 이글스)에 이은 두 번째 불펜 투수 출신 MVP가 될 수 있었다. 당시를 돌아본 오승환은 "아쉬운 건 없었다. 앞으로 후배들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라면서도 "사실 지금 상황(등판 트렌드)에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예전에는 4연투가 일반적이고 등판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지 않나. 몸 생각을 많이 한다. 한 시즌 50세이브도 마찬가지다. 기록을 세우긴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2013년 10월 29일: 기막힌 오승환, 연투에도 쌩생한 돌직구전성기 시절인 2012년과 2013년은 '돌부처' 표정 만큼이나 체격과 체력 모두 '돌덩이'와 같았던 시절이다. 2012년엔 불펜에서 공 8개만 던지고 등판한다는 기사가 있었고, 2013년 KS에선 2차전 4이닝 53구 뒤 이틀 뒤인 3차전에도 등판해 세이브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었다. 당시 코야마 진 삼성 트레이닝 코치는 "선천적으로 뛰어나고 후천적으로 다듬은 몸"이라며 오승환의 몸을 극찬했다. 오승환은 "내가 워낙 워밍업이 빨리 되는 스타일이다"라고 웃으면서 루틴에 대해선 "등판 예정 날엔 보강 훈련을 필수로 했다. 경기 후에 꼼꼼히 하면서 몸을 만들었다"라고 돌아봤다. 이후 미국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해서야 다른 외국 선수들이 하는 것을 보고 웨이트 훈련에 더 열을 올렸다고. 2013년 KS에 대해선 "그땐 공을 던지면서 힘들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우승이 눈앞이라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라고 돌아봤다. ▶2013년 12월 5일: 한신 오승환의 첫 출발 "국민이 응원한다는 말, 울컥했습니다"▶2016년 1월 13일: 세인트루이스 3년 총액 1100만 달러 계약, 불펜 보스 오승환오승환은 2014년부터 해외 생활을 시작했다. 2년간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에서 뛰었고, 이후 2016년부턴 미국 MLB에서 활약하며 4시즌을 소화했다. 일본에서도 '돌부처' 끝판대장 이미지를 이어갔고, 미국에서도 42개의 세이브를 올리며 맹활약했다. 오승환은 당시의 해외 경험이 큰 자양분이 됐다며, 후배들에게도 해외 진출을 적극 권유했다. 그는 "해외 경험을 통해 스스로 더 발전할 수 있고, 팬분들에게도 '다양한 리그에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릴 수 있다. 한국야구의 질도 덩달아 더 높아질 거라고 생각한다"라며 도전을 바랐다. ▶2019년 8월 12일: 오, 돌아왔어? 올해 세 번째 2만 관중에 유니폼 매진까지▶2025년 8월 8일: 굿바이 끝판대장오승환은 2019년 8월 삼성과 계약을 맺고 한국 무대에 돌아왔다. 해외 원정도박 출전 정지 징계를 마치고 돌아온 2021년엔 44개의 세이브를 올리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조금씩 구위가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후배들에게 마무리 투수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2025년엔 시범경기 도중 모친상 아픔을 겪었고, 이후 잔부상이 겹치며 2025년 8월 은퇴를 선언했다. 2020년 컴백 당시를 돌아본 오승환은 "많은 팬이 잊지 않고 응원해 주신다는 생각에 정말 감사했다. 와서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고 돌아봤다. 이후 부진에 대해서는 "나도 나이를 먹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 구위가 떨어졌다는 걸) 부인할 필요는 없다"며 "나도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여러 시도도 해봤다. 투구 스타일도 많이 바꿨다. 하지만 결국 나이를 이기기는 힘들었다"라며 아쉬워했다. 21년간의 신문을 돌아본 오승환은 "당시가 새록새록 기억이 나서 재밌었고 조금 뭉클하기도 하다. 내가 '오래 뛰었구나'라는 생각도 든다"라며 "좋은 팀에서 뛰면서 팬들에게 많은 별명과 사랑을 얻었다. 정말 감사했고, 남은 시즌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선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겠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윤승재 기자 2025.09.30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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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MVP] 폰세 만나 '펄펄' 난 고영표 "슬슬 가을 냄새가 납니다"

"우리만큼 가을을 잘 즐기는 팀이 어디 있을까요?"KT 위즈의 가을 야구 진출 가능성을 묻자, 고영표(34)는 자신 있게 말했다. 매 시즌 슬로스타터라는 오명 속에서도 KT는 후반기 파죽지세로 지난해까지 5년 연속 포스트시즌(PS)에 올랐다. 이러한 저력을 피부로 느끼고, 또 직접 이끌기도 했던 고영표는 "날씨도 선선해지고 슬슬 가을 냄새가 나고 있다"라며 포스트시즌 진출을 자신했다. 고영표는 지난 20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홈 경기에 선발 등판, 7이닝 동안 102개의 공을 던져 7피안타 3탈삼진 2실점으로 호투하며 4-2 승리를 이끌었다. 시즌 11승(6패)을 올린 고영표 덕분에 KT는 5위를 수성하며 PS 진출의 희망을 이어갔다. KT로선 정말 중요한 경기였다. 5위 수성이 걸린 경기인 데다, 상대 선발 투수가 KBO리그의 '슈퍼 에이스' 코디 폰세였다. 폰세는 이 경기 전까지 개막 27경기에서 17승 무패 행진 중이었다. KT와는 무려 5차례 만나 4승 무패 평균자책점(ERA) 0.93(29이닝 3자책점)을 기록할 만큼 막강했다. 고영표는 그런 폰세와의 대결에서 승리했다. 폰세는 KBO리그 첫 패배를 맛봤다. 본지와 조아제약은 중요한 경기에서 호투한 고영표를 9월 셋째 주 최우수선수(MVP)로 선정했다. 그는 "우리 KT로서는 엄청나게 중요한 경기였다. 당시 4연패 중이었고, 가을 야구와 멀어질 수 있었다. 중요한 경기라고 생각하고 집중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고영표는 "리그 최고의 투수를 상대로 승리해서 기분이 더 좋았다"라고 말했다. 폰세의 아우라에 기가 죽을 법한데, 고영표는 오히려 자신 있게 맞붙었다. 그는 "폰세와 맞대결을 한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강적을 만나면 의욕이 생긴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라며 "마침 날씨도 선선해지고, 가을 야구 느낌이 나더라. 항상 이맘때 강한 팀이 바로 우리다. 좋은 분위기로 즐기면서 경기를 해서 승리할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고영표는 후반기 11경기에서 3승 2패 ERA 2.70으로 호투 중이다. 이 기간 고영표는 선발로 나온 9경기에서 퀄리티스타트(QS·선발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8회나 달성했다. 지난 1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전에선 개인 통산 1000탈삼진 금자탑까지 쌓았다. 프로야구 44년 역사상 1000탈삼진 이상 기록한 사이드암 스로는 이강철(1751개) 임창용(1474개) 이재학(1205개) 3명밖에 없었다. 고영표가 4번째 대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고영표는 "이강철 감독님이 '1000탈삼진은 하다 보면 나오는 기록'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맞다"고 웃으면서 "그래도 꾸준하게 마운드에서 선발 투수로서 내 임무를 잘 수행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특히 고영표의 통산 삼진/볼넷 비율은 5.26으로, KBO리그 역사상 가장 높다(2위 선동열 4.96). 고영표는 "통산 삼진 비율이 낮지 않다. 국내 선수들 중에선 톱급 아닌가. 내게 자신감을 줄 수 있는 기록"이라며 웃었다. 고영표의 활약 속에, KT에도 '가을 훈풍'이 불고 있다. 고영표는 "지난해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업셋에 성공하며 준플레이오프에 올라갔다. 팬들에게 도파민을 드렸는데, 올해도 가을 야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지금부터는 공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필승의 의지를 담아 던져야 한다. 마운드 위에서 팀이 이길 수 있게, 점수를 주지 않는 피칭을 하도록 더 노력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수원=윤승재 기자 2025.09.2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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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LG전 출격' 류현진, 송진우의 최고령·선동열의 최소 경기 1500탈삼진 동반 경신 도전…10개 차이

한화 이글스 류현진 KBO리그 역대 최고령·최소 경기1500탈삼진에 10개 차이로 근접했다.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류현진은 26일 기준으로 38세 6개월 1일의 나이로 1490탈삼진을 기록 중이다. 2002시즌 송진우(전 한화)가 세운 최고령 1500탈삼진인 36세 5개월 26일 경신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 또한 통산 243경기를 소화, 선동열(전 해태 타이거스·301경기)이 보유한 최소 경기 1500탈삼진 기록도 동반 경신이 가시권이다. 이날 열리는 대전 LG 트윈스전에 선발 등판해 대기록 사냥에 나선다.2006시즌 한화에 입단한 류현진은 같은 해 4월 12일 잠실 LG전에서 첫 탈삼진을 기록했다. 이후 2011년 6월 19일 대전 두산 베어스전에서 역대 최연소(24세 2개월 25일)이자 최소 경기(153경기)로 1000탈삼진을 정복했다. 그뿐만 아니라 탈삼진 관련 다양한 기록을 남겼다. 2006시즌부터 2012시즌까지 7시즌 동안 다섯 차례(2006~2007, 2009~2010, 2012) 탈삼진상을 차지, 선동열과 함께 시즌 탈삼진 최다 1위에 이름을 올린다. 또한 류현진은 2010년 5월 11일 청주 LG전에서 17개의 탈삼진으로 당시 9이닝 기준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 기록은 올 시즌 코디 폰세(한화)가 18탈삼진으로 경신하기 전까지 15년 동안 리그 1위였다.1500탈삼진은 한화 소속으로 2002시즌 송진우, 2006시즌 정민철에 이어 19년 만이며, 역대 왼손 투수로는 송진우, 양현종(KIA 타이거즈), 김광현(SSG 랜더스)에 이어 네 번째다. KBO는 류현진이 1,500탈삼진을 달성할 경우, 표창 규정에 따라 기념상을 수여할 예정이다.인천=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5.09.2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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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가 묻고 오승환이 답한다④ 오승환 모의고사, "제 영광의 순간, 위기의 순간은요" [창간56]

신문에는 단순한 기록의 의미를 넘어 활자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지난 56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일간스포츠는 21년 동안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오승환을 주목하고 '끝판대장'의 스토리를 활자에 꾹꾹 눌러 담아 독자들과 공유했습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오승환의 길고, 멋진 여정을 일간스포츠가 옛 신문 기사를 통해 돌아봤습니다. 신문이 묻고, 오승환이 답하는 형식입니다.①"팬들의 가슴에 더 많은 스트라이크 던지고 싶었는데.."②"2011년 오승환은 끝났다는 말, 보란 듯이 부활하고 싶었죠"③"마무리 투수, '내 손으로 끝낸다' 자부심 큰 보직"④오승환 모의고사, "제 영광의 순간, 위기의 순간은요" 1. 나는 1982년생 동갑내기 타자 중 _가 가장 두렵다.1) 김태균 2) 이대호 3) 정근우 4) 추신수 5) 기타오승환(이하 오) : 다들 너무 좋은 선수들이라 한 명을 꼽기가 어렵다. (김)태균이나 (이)대호는 '한 개의 실투가 장타로 연결된다'는 두려움을 주는 타자다. 정근우는 내보내기만 하면 언제든지 도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까다롭다. (추)신수는 타자로서의 모든 툴을 갖고 있는 선수다. 한 명을 고르기 어렵다.2.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기록은 _다.1) KBO리그 28경기 연속 세이브2) KBO리그 최연소/최소경기 200세이브3) KBO리그 한 시즌 최다 47세이브4) NPB 클라이맥스 시리즈 6경기 전 경기 등판, 시리즈 MVP5) MLB 42세이브오 : 한 시즌 최다 47세이브가 소중하다. (50세이브를 못해서 아쉽지 않은가) 그런 건 없다. 그저 (한국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는 자부심이 있다. 3. 내 야구인생 최고의 순간은 _다.1)2005년 한국시리즈 우승2)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3)2011년 한국시리즈 우승4)미국 메이저리그 진출5)한미일 통산 500세이브 달성6)기타오 : 한국시리즈(KS) 우승이다. 연도와 상관없이 모든 KS 우승이 기억에 남는다. 모든 우승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았던 기억이다. 4. 전성기 구위로 제대로 붙어보고 싶은 타자는?1)김도영2)안현민3)최형우4)추신수5)기타오 : 다 해보고 싶긴 한데, 안현민은 아직 못 붙어봐서 궁금하다. (추)신수도 전성기 구위로 맞붙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5. 강렬했거나 아쉬웠거나,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국제대회는_다1)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2)2006년 도하아시안게임3)2008년 베이징 올림픽4)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5)2021년 도쿄 올림픽오 : 첫 번째 WBC가 강렬했던 것 같다. 프로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큰 관심을 받았던 대회였고, 그렇게 큰 국제대회를 나간 것도 처음이었다. 6.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선배는 _다1)선동열 2)김용수 3)트레버 호프만 4)기타오 : 선동열 감독님이다. 어릴 때부터 워낙 좋아했던 투수라서 항상 닮고 싶은 선배이자 롤모델이었다. 7.나는 다시 태어나면 _를 해보고 싶다.1) 또 야구 2) 축구 3) 골프 4)다른 종목 혹은 다른 직업오 : 야구긴 한데, 다시 야구하면 이번엔 타자를 해보고 싶다. 아니면 선발 투수. 잘할 수 있지 않을까(웃음).8. 나는 1~2년 안에 _를 꼭 해보고 싶다.1) 해외 코치 연수2) 해설위원3) 야구 예능 출연4) 기타오 : 한 번 씩은 다 해보고 싶다. 욕심이 많다. 9. 나의 가장 큰 위기는 _였다.1) 대학 팔꿈치 수술2) 2010년 팔꿈치 수술3) 2010년 한국시리즈 실점4) 2024년 부진오 : 대학 시절 받았던 팔꿈치 수술이다. 야구를 계속할 수 있을지 기로에 서 있다. (13년 전 같은 질문에는 2010년 팔꿈치 수술이라고 답했는데) 프로에 와서 받은 첫 수술이고, 생애 두 번째 큰 수술이라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하지만 야구인생 전반적으로 돌아봤을 땐 대학교 때가 가장 큰 위기였던 것 같다. 10. 마무리 후배들의 닮고 싶은 강점은?1) 박영현의 _2) 조병현의 _3) 김택연의 _4) 김서현의 _오 : 네 선수 모두 은퇴 기자회견 때 언급했던 선수들이다. 사실 김원중, 정해영 두 후배의 이름을 언급하지 못해 미안했다. 여섯 선수 모두 특징이 다 다른데, 닮고 싶은 강점이라면 모두 '나이'가 아닐까 생각한다(웃음). 다들 더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잠재력'이 이들의 강점이고, 내가 닮고 싶은 점이기도 하다. 부럽다(웃음). 윤승재 기자 2025.09.2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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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가 묻고 오승환이 답한다① "팬들의 가슴에 더 많은 스트라이크 던지고 싶었는데.." [창간56]

신문에는 단순한 기록의 의미를 넘어 활자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지난 56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일간스포츠는 21년 동안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오승환을 주목하고 '끝판대장'의 스토리를 활자에 꾹꾹 눌러 담아 독자들과 공유했습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오승환의 길고, 멋진 여정을 일간스포츠가 옛 신문 기사를 통해 돌아봤습니다. 신문이 묻고, 오승환이 답하는 형식입니다.①"팬들의 가슴에 더 많은 스트라이크 던지고 싶었는데.."②"2011년 오승환은 끝났다는 말, 보란 듯이 부활하고 싶었죠"③"마무리 투수, '내 손으로 끝낸다' 자부심 큰 보직"④오승환 모의고사, "제 영광의 순간, 위기의 순간은요" ▶2004년 9월 17일: 단국대 6년 만에 추계리그 우승, 오승환 최우수선수상기사 본문 : "단국대 마운드에서는 삼성에 2차 1번으로 지명된 오승환이 4회부터 구원투수로 등판해 6이닝을 2피안타 10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막아내 승리에 공헌했다."오승환(이하 오):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된 대회였던 것 같다. (팔꿈치 수술 이후) 4학년 때부터 조금씩 던지면서 삼성까지 오게 됐다. 1·2학년 땐 정말 힘들게 재활 훈련을 했다. 고생 끝에 우승도 했고, 최우수선수상(MVP)도 받아서 의미가 뜻깊었다. ▶2005년 10월 22일: 한국시리즈(KS) MVP 오승환 "팬들의 가슴에 스트라이크 던지고 싶다.""MVP는 생각도 못 했다. 아직도 얼떨떨하다. 앞으로 야구를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안 아프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하고 싶다. 팬들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선수로 남고 싶다."오: 은퇴를 선언한 지금 돌아보면, 팬들의 가슴에 더 많은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싶었는데 아쉽다. 팬분들께서 좋게 봐주신 덕분에 많은 별명도 생기고 삼성 투수 최초로 영구 결번(21번)도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항상 감사드린다. ▶2005년 11월 1일: 신인왕 오승환, 10년 만에 신인왕 배출"신인으로 가장 큰 상을 받았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앞으로 10년, 15년 동안 흐트러짐 없이 최선을 다하겠다."오: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는 한 해였다. 삼성이라는 좋은 팀에 와서 이기는 경기도 많이 했고, 시즌 중반에 마무리까지 맡으면서 신인왕도 타고 KS MVP도 했다. 이런 팀에서 뛸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데뷔부터 마무리 보직을 맡을 거란 예상을 했나) 프로에 와서 마무리 투수를 할 거라고는 사실 생각하지 못했다. 보직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고, 감독님, 코칭스태프가 결정하는 거다.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던져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이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선동열 감독님께서 좋게 봐주신 덕분이다. ▶2006년 5월 6일: 오승환 "승리 세리머니 구경 오세요""오승환은 지난 (2006년 5월) 2일 대구 SK 와이번스와의 홈경기부터 마지막 타자를 잡고 나면 마운드를 내려와 진갑용과 함께 눈빛을 교환한다. 마운드 앞에서 만난 두 선수는 손을 얼굴 높이에서 맞잡는다. 이어 맞잡은 손을 가슴까지 살짝 내렸다가 올리면서 각각 검지손가락을 올려 하늘을 가리킨다."오: 세리머니에 큰 의미는 없다. (진)갑용이 형이 '세이브를 기록한 뒤에 뭔가 좀 밋밋하다'고 하면서 세리머니를 만들어주셨다. 원래는 아무 세리머니 없이 하이파이브하는 수준이었다. 당시엔 그런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들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많이들 하고 있더라. ▶2006년 11월 18일: 강행군 오승환 무쇠 체력 비결"프로 데뷔 2년 차로서 지난해 한국시리즈(10월)와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11월)부터 올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프로야구 일정(3~10월)-한국시리즈(10월)-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11월)-도하 아시안게임(12월)까지 쉴틈없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오: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오면서 먹는 것도 달라지고 훈련도 체계적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체력이 붙은 것 같다. 그리고 그땐 워낙 운동량이 많았다. (대학 시절에도 많은 운동량이 화제였는데) 그때보다 더 많이 했다. 원래 삼성이 운동량이 많은 걸로 유명했고, 일본인 트레이닝코치 오셔서 엄청나게 체계적이었다. 이런 훈련을 통해 몸이 단련되고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2007년 9월 19일: 오승환, 최소 경기·최소 시즌 100세이브"프로 입단 후 3년 만에 100세이브를 돌파한 것은 세계 야구를 통틀어서도 오승환이 처음이다. (중략) 오승환은 "의미 있는 기록이라 욕심을 부렸는데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더 좋은 투수가 되기 위해선 '변화'를 해야 한다고 절감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오: '세계 최초'라는 건 너무 띄워준 것 같고(웃음). 기록은 기사를 보고 알았다. 이때는 기록을 생각하면서 던지진 않았다. 세이브 기록보단 평균자책점을 조금 더 신경 쓰고 던졌다. (세이브 갯수와 평균자책점 중, 더 중점에 두는 기록은?) 나는 블론세이브 개수와 평균자책점에 더 신경 썼다. 블론세이브는 1년에 4개 이상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던졌고, 평균자책점은 1점대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승계 주자를 주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008년 9월 24일: 3년 연속 40세이브 도전, 오승환 기록에 ML도 놀란다"오승환은 (2008년 9월) 23일 현재 36세이브를 기록 중이다. 3년 연속 구원 타이틀은 떼논 당상이고 3년 연속 40세이브 도전이 관심사다. 100년의 역사가 넘는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200세이브 이상 투수들이 40여명이 있지만 3년 연속 40세이브를 기록한 투수는 열 명도 안된다."오: (그해 39세이브로 마치며 3년 연속 40세이브 도전에 실패했는데) 하나도 안 아쉬웠다. 이런 기록들에 대해 둔했다. (언제부터 세이브 기록을 의식하기 시작했나) 일본의 이와세 히토키가 보유하고 있던 단일 시즌 아시아 최다 세이브 기록(종전 46개)에 다가설 때(2006년) 처음으로 '기록을 깨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일본 야구가 역사가 긴데, 마무리 투수 기록은 내가 깨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시아 통산 최다 세이브 기록도 이와세(종전 407개)가 갖고 있어서 욕심이 있었다. 윤승재 기자 2025.09.2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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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경엽-김경문 감독의 '트라우마 시리즈'...누가 웃을까 [IS 포커스]

선두 LG 트윈스와 2위 한화 이글스가 오는 26~28일 정규시즌 우승 트로피를 놓고 뜨거운 주말 3연전을 치른다. 염경엽 LG 감독과 김경문 한화 감독 중 한 명은 '트라우마'를 떨쳐내게 된다. LG는 정규시즌 우승 매직넘버를 '5'까지 줄여,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잔여 7경기에서 5승을 하면 자력으로 정규 시즌 1위를 확정한다.LG가 '1승'을 추가하거나, 한화가 '1패'를 당할 때마다 매직 넘버는 하나씩 줄어든다. LG와 한화는 21~23일 경기가 없고, 24~25일 원정 경기가 있다. LG는 남은 일정상 26일 이후 정규시즌 우승을 노려볼 수 있다. 한화도 LG와 주말 3연전 결과에 따라 막판 대역전 우승의 희망을 키울 수 있다. 두 감독 모두 '아픈 기억'을 지우려 한다. 염경엽 감독이 우승까지 총력전을 선언한 이유이기도 하다. 염경엽 감독은 2019년 SK 와이번스 사령탑 시절 잔여 10경기를 남겨두고 3위 두산 베어스에 5경기나 앞섰지만, 결국 최종전에서 동률을 허용했다. 당시 1위 팀의 승률이 같으면, 상대 전적에 따라 우승 팀을 가리는 규정이었다. SK는 두산과 맞대결에서 7승 9패로 밀려, 결국 정규시즌 2위로 떨어졌다. 분위기를 잃은 SK는 플레이오프에서 키움 히어로즈에 3전 전패를 당해 일찍 짐을 쌌다. 이듬해 염 감독은 성적 부진에 대한 스트레스로 더그아웃에서 쓰러져 충격을 안겼다. 염 감독은 "(2019년에) 내가 경험해 봤잖아"라며 "그 시즌(2019년)이 끝나고 장문의 매뉴얼을 썼다. 일단 최종 순위(우승)를 결정하기 전까지는 정상적으로 경기를 운영한다. 끝까지 죽기 살기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3년 통합 우승에도, 여전히 6년 전의 아픈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는 "조그마한 방심과 여유, 두 단어가 결국 팀을 위기로 만든다.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다"라고 다짐했다. 김경문 감독은 '2등 트라우마'가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9전 전승 우승 신화'를 이끈 사령탑이지만, 프로 무대에선 정상 문턱에서 늘 좌절했다. 2005년 한국시리즈(KS)에서 선동열 감독이 이끈 삼성 라이온즈에 4전 전패로 패퇴했고, 2007년과 2008년에는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에 리버스 스윕을 당했다. 김 감독은 NC 다이노스 창단 감독으로 부임한 뒤 2016년 KS에선 두산에 4전 전패로 무너졌다. 4차례 준우승 모두 현행 포스트시즌(PS) 체제에서 정규시즌 2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김경문 감독도 과거 자신을 '준우승 전문'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정규시즌 우승이 더 절실하다. 최근 10년 정규시즌 1위 팀 중 KS 우승에 실패한 팀은 2017년 두산이 유일하다. 한화는 33년 만에 전반기를 1위로 마쳤으나 8월 초 선두를 내준 뒤 탈환하지 못했다. 최근 10경기에서 7승 3패로 상승세를 타며 LG를 추격하고 있다. 염경엽 감독은 "피 말리는 승부"라고 말했다. 염경엽 감독은 잔여 경기 일정 발표 후에 9월 말 한화와의 '미리 보는 한국시리즈'에 "1~3선발을 투입을 정해놓았다"라고 밝혔다. 톨허스트-요니 치리노스-임찬규가 차례로 출격을 대기한다. 한화 역시 '우승 희망'이 남아있는 한 총력전을 펼칠 수밖에 없다. '에이스' 코디 폰세가 20일 등판한 만큼 닷새 휴식 후 26일 LG전 등판이 충분히 가능하다. 폰세는 개막 후 17연승을 달리다가 20일 수원 KT 위즈전서 첫 패배를 당했다. 특히 올 시즌 9개 팀 중 LG를 상대로만 유일하게 승리가 없고, 평균자책점도 3.46으로 가장 높다. 포스트시즌 맞대결 등 여러 이유로 LG전서 반드시 필승 각오를 다진다. 이형석 기자 2025.09.2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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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과 임창용을 소환한 정해영의 극심한 '성장통'

마무리 투수 정해영(24·KIA 타이거즈)이 극심한 '성장통'을 앓고 있다.정해영은 현재 이범호 KIA 감독의 고민 중 하나다. 지난 시즌 통합 우승에 힘을 보탠 주전 마무리 투수지만 부진을 거듭한 탓에 입지가 좁아졌다. 잔여 시즌 기용 방법을 고심해야 할 정도로 각종 지표가 악화했다.지난달 31일 수원 KT 위즈전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정해영은 6-4로 앞선 9회 말 등판, 3분의 2이닝 3피안타 3실점 하며 무너졌다. 지난해 3개였던 블론세이브가 벌써 7개. 후반기 평균자책점이 2일 기준으로 8.38(시즌 4.17)에 이른다. 전반기에도 이전만 못 한 투구 내용으로 우려를 낳았는데 뚜렷한 반등 조짐이 없다. 지난달 17일 1군에서 제외돼 열흘 동안 재정비 시간을 갖기도 했으나 복귀 후 세 번째 경기였던 KT전에서 흔들렸다. 2020년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정해영은 첫 시즌 두 자릿수 홀드(11개)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듬해부터는 마무리 투수로 승승장구했다. 지난 시즌에는 미국 유학(드라이브라인) 효과를 톡톡히 보며 1995년 선동열, 1998년 임창용에 이어 타이거즈 역대 세 번째 구원왕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만 22세 8개월 1일의 나이로 통산 100세이브를 달성, 2000년 임창용(당시 23세 10개월 10일)이 보유한 부문 최연소 기록을 1년 이상 앞당겼다.우여곡절이 많은 올 시즌에도 구대성(전 한화 이글스)과 손승락(전 롯데 자이언츠)에 이어 역대 세 번째 '5년 연속 20세이브'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2023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과 2024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 12 대회에선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김택연(20·두산 베어스) 조병현(23·SSG 랜더스) 박영현(22·KT) 등과 함께 향후 리그를 이끌어갈 차세대 클로저로 주목받았다. 현재 겪고 있는 슬럼프가 더 부각되는 이유다. 정해영은 전년 대비 투구 이닝, 상대 타자, 투구 수 등이 크게 늘었다. 관리가 필요하지만 치열하게 5강 경쟁 중인 팀 사정상 쉽지 않다. 이범호 감독은 "해영이가 마무리를 잘 지켜줘야 우리 불펜이 잘 돌아간다"라고 말했다. 과연 정해영이 반등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KIA의 5강 진입 여부를 결정할 핵심 중 하나다.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5.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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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 MLB 직행했더라면? 선발 투수였다면? 그가 답했다 [IS 인터뷰]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오승환(43·삼성 라이온즈)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 마무리 투수 중 한 명이다. 오승환도 21년간 프로 무대에서 활약하며 수많은 선택의 앞에 놓였었다. 오승환은 2013년 종료 후 한신 타이거스와 2년 총 9억엔(85억원)에 계약, 일본 프로야구(NPB)에 진출했다. 2014년 39세이브를 올리며 선동열 전 감독이 1997년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기록한 38세이브를 넘어 일본 무대 한국인 최다 세이브 신기록을 작성했다. KBO리그 출신 한국인 최초로 일본프로야구 포스트시즌 MVP 수상, NPB에서도 최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위상을 떨쳤다. 2015년엔 41세이브를 올리며 2년 연속 센트럴리그 구원왕에 올랐다.오승환은 이후 미국 메이저리그(MLB)로 건너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콜로라도 로키스 등 3개 팀에서 활약하며 16승 13패 42세이브 45홀드 평균자책점 3.31을 기록했다. 한국과 미국, 일본 무대에서 모두 세이브를 수확 최초의 한국인 선수가 됐다. 그는 "다양한 리그에서 뛴 것은 말이 안 되는 경험"이라면서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승환이 일본 무대가 아닌 MLB로 직행했더라면 어떤 활약을 선보였을지 궁금해했던 이도 많다. 그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오히려 단계별로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쉬움은 전혀 없다. 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MLB 뛰던 당시 트레이드 통보를 받은 적도 있다. 그는 "한 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런 게 트레이드구나 느꼈다. 지난해와 올해 2군에 머무른 시간이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졌다"라고 돌아봤다. 오승환은 한·미·일 3개 리그에서 총 1096경기에 출전했고, 64승 53패 76홀드 549세이브를 기록했다. '선발 투수로 20년을 뛰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말에 "신인 시절에는 (중간 투수로 나서면서도 선발 투수라는) 보직에 관해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1군 생존이 목표였다"라며 "당시 우리 팀에 좋은 투수가 워낙 많아 마무리 보직에 만족했다"라고 말했다. 40대에 접어들어 '선발 투수 오승환'을 꿈꿔본 적이 있다. 그는 "2023년부터 선발 투수를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구종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서고 싶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오승환은 2023년 5월 3일 대구 키움 히어로즈전을 통해 프로 데뷔 후 처음이자 마지막 선발 등판했다. 성적은 5이닝 5피안타(1피홈런) 6탈삼진 3실점. 그가 프로 무대에서 한 경기 최다 투구 이닝을 소화한 것이다. 투구 수도 73개로 최다였다. 지난 7일 은퇴 발표 후 일주일을 보낸 그는 "여전히 훈련하고 있어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라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후련하고 마음이 편하다"고 웃었다. 대구=이형석 기자 2025.08.15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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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이 남긴 21년 발자취, 숫자로 본 '끝판대장의 역사 [IS 포커스]

한 시대를 풍미한 마무리 투수 오승환(43·삼성 라이온즈)이 유니폼을 벗는다. 2005년 데뷔한 그는 21년 동안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 활약하며 큰 발자취를 남겼다. 오승환의 야구 인생을 숫자 키워드로 되돌아봤다. ◇3(KBO리그 세 번째 은퇴 투어)삼성은 '한국야구위원회(KBO) 및 다른 구단과의 협의를 거쳐 오승환의 은퇴 투어를 진행한다'라고 밝혔다. 은퇴 투어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건 1982년 출범한 KBO리그 역사상 2017년 이승엽(당시 삼성), 2022년 이대호(당시 롯데 자이언츠) 둘 뿐이다. 투수로는 오승환이 사상 처음이 될 전망. 다만 삼성은 오승환의 은퇴를 공식 발표하기 전까지 KBO 실행위원회(단장 모임) 및 다른 구단의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5(신인 지명 순위)단국대를 졸업한 오승환은 2005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전체 5순위로 삼성에 지명됐다. 2차 지명에서 그에 앞서 호명된 선수는 조정훈(당시 롯데) 서동환(당시 두산 베어스) 정의윤(당시 LG 트윈스) 양훈(당시 한화 이글스)이다. 2005년 입단 동기 중 현역 선수는 박병호(삼성) 최정(SSG 랜더스) 이원석(키움 히어로즈) 오재일(KT 위즈) 진해수(롯데) 정도. 오승환은 올해 리그 최고령 선수(만 42세 6개월 16일)였다.◇6(KBO리그 세이브왕 횟수)오승환은 데뷔 2년 차였던 2006년부터 3년 연속 세이브왕을 차지했다. 리그 역대 3년 연속 세이브왕은 진필중(2000~2002) 이후 처음이자 역대 두 번째. 이후 세 번(2011~12, 2021)의 타이틀을 추가해 부문 역대 최다 금자탑을 쌓았다. 역대 2위는 임창용의 4회(1998~99, 2004, 2015)이다. 오승환은 지난해 7월 42세 12일의 나이로 세이브를 챙겨 임창용이 보유한 역대 최고령 기록(종전 42세 3일)을 경신했다. ◇11(한국시리즈 세이브)오승환은 한국시리즈(KS) 통산 11세이브를 수확해 부문 역대 1위다. 2위 그룹(4개, 선동열·조용준·임창용)과의 차이가 워낙 커 당분간 깨지기 힘든 기록으로 손꼽힌다. 오승환의 KS 통산 평균자책점은 0.81로 난공불락에 가깝다. 그의 통산 KS 우승은 5회(2005~06, 2011~13). 2005년과 2011년에는 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21(영구결번 등 번호)삼성은 오승환의 등 번호 21번을 영구결번할 예정이다. 프로야구 원년 구단인 삼성의 영구결번은 이만수(22번) 양준혁(10번) 이승엽(36번)에 이어 오승환이 역대 네 번째이자 투수로는 사상 처음이다. 김시진· 김상엽·배영수 등 내로라하는 선배들도 받지 못한 대우다. 영구결번은 리그 전체 역대 18번째이다. ◇28(연속 경기 세이브)오승환은 2011년 7월 5일 인천 SK 와이번스전부터 2012년 4월 22일 청주 한화 이글스전까지 리그 최다 28경기 연속 세이브를 기록했다. 2006년 정재훈(당시 두산)이 세운 15경기 연속 세이브를 훌쩍 넘어 전인미답의 길을 걸었다. 28경기 연속 세이브 기간 오승환의 평균자책점은 0.32(28과 3분의 1이닝 1자책점)에 불과했다.◇47(단일 시즌 개인 최다 세이브)오승환의 개인 시즌 최다 세이브는 47개로 2006년과 2011년 달성했다. 2006년에는 일본의 이와세 히토키가 보유하고 있던 단일 시즌 아시아 최다 세이브 기록(종전 46개)을 넘어서기도 했다. 47세이브는 아직도 깨지지 않는 리그 단일 시즌 최다 기록이기도 하다. 부문 3위는 2013년 손승락(당시 넥센 히어로즈)의 46개이다. ◇80(일본 프로야구 통산 세이브)2013시즌을 마친 뒤 일본 프로야구(NPB)에 진출한 오승환은 2년 동안 한신 타이거스의 뒷문을 책임지며 39세이브, 41세이브를 기록했다. 두 시즌 모두 NPB 센트럴리그 세이브 1위. 2014년에는 센트럴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427(리그 통산 세이브)오승환은 2021년 4월 사상 첫 300세이브, 2023년 10월에는 400세이브 시대를 열었다. 이후에도 꾸준히 기록을 추가한 그의 세이브는 427개에서 멈췄다. 부문 2위 손승락(271세이브)과의 차이는 156개. 현역 2위 김재윤(삼성·185개)과의 격차는 2배 이상. NPB와 미국 메이저리그(MLB·42개)의 기록을 합하면 통산 세이브는 549개까지 늘어난다.인천=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5.08.0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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