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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의 해’, 조선시대 말산업 선구자 김만일 재조명
2014년 ‘청마의 해’를 맞아 말산업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조선시대 말을 잘 키워 숭정대부에 오른 김만일이 재조명되고 그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최근 조선시대 ‘숭정대부(崇政大夫)’의 벼슬을 받은 ‘헌마공신(獻馬功臣)’ 김만일(金萬鎰)을 다룬 소설이 출간된 데 이어,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마와 헌마공신 김만일의 공적에 대한 역사적 고찰’ 세미나를 개최하고, 동상건립을 추진되는 등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김만일은 조선 선조 때부터 광해군, 인조 3대에 걸쳐 천 마리가 넘는 말을 군마로 나라에 바친 인물이다. 한마디로 조선시대 말산업을 이끈 리더였다. 인조는 김만일이 국방에 기여한 점을 인정해 1628년 종1품 숭정대부에 봉하고 헌마공신의 칭호를 하사했다. 종1품은 현재의 부총리 급에 해당된다.김만일은 고려 충렬왕 2년(1276년) 제주도에 목마장이 설치된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개인으로는 가장 많은 말을 사육했던 말 부자다. 제주도에서 1만여 마리의 말(당시 제주도 말의 50%)을 사육한 김만일은 임진왜란 때인 선조 27년(1594년)과 왜란 직후인 선조 33년(1600년), 광해군 12년(1620년), 인조 5년(1627년) 등 4차례에 걸쳐 모두 1300마리의 군마를 조정에 헌상했다.제주도가 말의 본고장이 된 것은 고려시대 원나라의 간섭기부터. 당시 몽골인들은 고려와 강화를 맺은 후 한반도를 통로로 이용하여 왜와 남송을 치고자 했다. 유목민인 몽골은 기병이 주력이었는데 왜 정벌을 계획하면서 전진기지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궁리 끝에 제주도를 선택했다. 제주도가 전진기지로 선택된 것은 남송이나 왜와 가까운데다 따뜻한 기후와 초지가 발달해 말을 키우기에 적당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말은 중요한 노동력이자 유용한 운송수단이었다. 전시에는 기동부대 역할을 해 국가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핵심 전력이며 군수물자였다. 이 같은 이유로 조정은 민가에서의 말 도축을 금지했으며, 말고기 먹은 자를 엄하게 벌했다. 말고기가 민간의 식탁에서 사라진 이유다. 한편 제주특별자치도는 올 초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국내 1호 말산업 특구 지정을 받아 말 관련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채준 기자
2014.01.15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