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10년간 구설수 한 번, 열애설 한 번 없이 오로지 작품과 본연의 매력으로만 대중과 소통한 이제훈(34)이다. "저 한 명으로 인해 작품에 피해가 갈 수 있잖아요. 사적인 일로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의식적으로 싫어해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작품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배우의 현답이다.
자신이 쌓는 필모그래피의 의미와 이유를 작품 그 자체로 보여 주는 '배우' 이제훈은 올해 '박열(이준익 감독)'과 '아이 캔 스피크(김현석 감독)'를 통해 일본에 저항하는 캐릭터를 몸소 연기하며 '대한민국 배우'로 깊이 있는 행보를 보였다. 이제훈과 함께 호흡을 맞춘 최희서·나문희는 최근 각종 시상식에서 신인여우상과 여우주연상을 휩쓸고 있다. 이들을 빛나게 만든 이제훈의 덕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어디 한 번 마셔 볼까요? 소주 콜?" 첫마디부터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이제훈이었다. 언제나, 매 순간 아주 간단한 것 하나까지 허투루 지나가는 법이 없는 이제훈은 이미 취중토크의 컨셉트도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인터뷰 때마다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모범 답안'으로 혀를 내두르게 만든 그였지만 이날만큼은 조금 달랐던 것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두 손 두 발 다 든 것은 역시 기자들이었다. 최고의 일탈이 5년 전 '건축학개론' 촬영 당시에 택시를 발로 차 찌그러뜨린 것이었고, 집요하게 캐묻는 열애 관련 질문에도 "없어요. 없네요. 다 없네"라며 도리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훈은 '아직'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배우가 맞았다.
솔직한 줄은 알았지만, 이토록 수다스러운 배우였는지, 이토록 속마음을 잘 꺼내 보이는 배우였는지는 7년 만에 처음 알았다. 작품보다, 작품 속 이제훈보다 개인 이제훈을 더 많이 알 수 있었던 시간. 이제훈은 "재미있는데 저 실수하고 있는 거 아니죠?"라는 불안함을 보이면서도 맥주 두 병을 거뜬하게 비워 냈다.
>>②편에 이어
- 본인에 대한 가십을 들어 본 적 있나요. "정말 많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런 음모설이. 잡히기만 해 봐라'고 생각해요.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는 나더라고요. 연예계에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루머에 대해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아요. 가족만 안 건드리면 되죠 뭐."
- 그래도 흔히 말하는 '지라시'에 오른 적이 없어요. "맞아요. 그래서 스스로 아직 '핫'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핫하면 나도 모르는 여러 이야기가 오르내린다는데 '난 아직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이요. '더 열심히 하고 인기가 많아져야겠다'는 다짐을 역으로 하게 되네요.(웃음)"
- 모범적인 성격은 어린 시절에 만들어진 건가요. "초등학교 땐 거칠고 공격적이었어요. 친구들을 놀리는 거죠. 그걸 통해서 상처를 받는 친구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이 방과 후에 부르시더라고요. '친구들이 너를 참 좋아하는데, 말을 함부로 할 때가 있어. 이야기할 때 세 번 생각하고 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정말 큰 가르침이었죠. 그 후부터는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게 된 것 같아요. 장난으로라도 희화화하거나 상처 주지 않으려고 해요. 연기를 시작하면서 더 조심하게 됐고요. 제 언행으로 끼치는 영향력이 작지 않다는 걸 느끼니까 주의를 하죠"
- 키우기 쉬운 아들이었겠네요.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친구들과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요. 이긴 것도 아니고 진 것도 아니고, 싸우다가 '선생님 와!'라고 하면 흩어지고 그런 경우요. 실내화를 신고 학교에 들어가는데 실내화 던지는 놀이를 하다 창문도 자주 깼어요. 점심시간에 재빨리 철물점에 가서 몰래 유리 사이즈 맞추고 그랬죠. 조용하기보다는 꽤 짓궂었던 것 같아요." - 잘생겼다는 댓글 보면 어때요. "작품 속 캐릭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해 주시는 것 같아요. 잘생겼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원빈 선배님, 장동건 선배님은 잘생겼다고 생각해요. 저는 축에도 못 끼죠. 거울을 보면서 '난 진짜 연기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연기할 때 캠코더로 저를 많이 찍었거든요? 영상 보면서 엄청 절망했죠. 생김새, 목소리 뭐 하나도 제 맘에 드는 게 없더라고요. 그럼에도 영화가 너무 좋았고, 스크린 안에 제가 담기면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다양한 연기를 통해 식상하지 않은 배우로 남길 바라죠."
- 가장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어디인가요. "귀요. 가끔 제 귀를 보면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눈이요. 눈이 잘생기고 예쁘고 멋진 걸 떠나서 무언갈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눈인 것 같아요. 배우를 볼 때 가장 먼저 보는 부분도 눈이라고 생각해요. 다 맘에 안 드는데 제 눈을 보면서 '조금만 더 해 보자'라고 다독이며 이끌었어요. 제 절실함은 눈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게 저의 강점이 되길 바라고요."
- 동안이라는 불만은 없나요. "전혀 없죠. 자연스러운 흐름이니까요. '늙으려면 어떻게 하지?'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간이 더 가치있는 삶인 것 같아요. 돈을 벌기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 가치가 기준이 되지 않잖아요."
- '잘생김'이 생명인 멜로 연기도 잘 하던데요. "과찬이에요. 사랑이라는 관계를 맺는 작품을 자주 하고 싶지는 않아요. 작품 속이지만 누군가를 만났는데, 바로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거잖아요. 그렇게 반복되는 모습이 배우로서 딱히 좋은 것 같지는 않아요. '건축학개론' 끝나고 나서 멜로가 없었고, '내일 그대와'가 첫 로맨틱 코미디였죠. 앞으로 제가 뭘 할지 모르겠지만, 사랑 이야기를 연기하는 절 보시는 건 힘들지 않을까해요. (멜로 작품이) 대중적으로는 가장 저란 사람을 가깝게 만들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는 있죠. 그냥 이상하게 맘에 안 들어요."
- 재미있게 본 멜로 작품이 있나요. "많죠. '별에서 온 그대'·'도깨비'·'태양의 후예'를 재밌게 봤어요."
- 김은숙 작가를 좋아하네요. "오, 그렇네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캬캬캬!" - 한류스타 욕심은 없는 것 같아요. "이상하게 전 돌아서 가는 것 같아요. 하면 좋고, 인기를 얻는 것도 좋죠. 그런데 그 전에 사랑 이야기 말고 다른 장르가 더 끌렸어요. 멜로 연기를 연속적으로 하는 건 옳지 못하다는 생각을 해요. 이상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거죠. 제 필모그래피를 아끼는 마음도 커요.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어요. 젊었을 때 '샤방샤방'한 모습을 사랑 이야기를 통해서 남기면 뒤돌아봤을 때 좋을 거 같긴 해요. 그게 연기적으로도 좋을 거 같아서요."
- 배우이자 연예인은 때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하는 직업이죠.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건 당연한데, 외적으로 해야할 것들도 경중이 같다고 생각해요. 크게 제약을 두지는 않아요. 도움이 된다면 저를 많이 활용하시라고 하죠. 특히 홍보 같은 경우는 영화가 개봉하는 그 시기가 끝이에요. 시간이 지나서 작품을 다시 꺼내 많이 봐달라고 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홍보하는 과정이 어색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 작품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게 돼요. 뭔가를 억지로 한 적은 없어요. 소속사(사람엔터테인먼트) 방침이 그렇기도 하고요. 대표님은 늘 아티스트가 선택할 수 있게 해주시죠. 그래서 광고를 많이 안 찍나."
- 광고 많이 찍잖아요. "아 그런가요? 더 찍어야죠! 빨리 연락 주셨으면 합니다. 저 너무 없어 보이네요. 하하. 과거엔 배우로서 이미지가 소비되고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염려스럽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잘 조절하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 차기작은 '파수꾼' 윤성현 감독의 신작 '사냥의 시간'으로 가닥이 잡혔죠. "감독님과 오래 논의했어요. 크랭크인까지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있는데 어떻게 되든 저는 끝까지 기다리려고요. 다른 작품과는 조금 다른 마음이에요. 감독님이 7~8년 동안 영화를 안 하셔서. 이번엔 저도, 감독님도 꼭 같이하려고요."
- 어떤 역할인가요. "'파수꾼' 기태처럼 남성성이 두드러지는 캐릭터예요. 총격 액션이 많고 쫓고 쫓기는 스릴러 장르죠. 기대해 주세요."
- 사업에는 관심 없나요. "상상은 하죠. 그런데 상상으로 그쳐요. 커피 마시는 걸 좋아하니까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를 손수 차리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근데 요즘엔 전문적으로 잘하는 분들이 너무 많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깜냥이 안 돼요. 그냥 즐기는 정도면 하려고요. 연기 외적인 관심은, 뉴스 잘 보는 정도?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유심하게 봐야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아니까요. 그런 걸 알아야 연기적으로 파생되는 것들이 많고요. 너무 제 안에만 갇혀 살기보다 주변에 관심을 두려는 편이에요."
- 제작이나 연출 욕심은요. "지켜봐 주세요.(웃음)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연기만 할 거예요!'는 아니에요. 혹시라도 나중에 연기를 안 하게 되더라도 영화 일은 계속하고 싶어요. 어디서든, 뭐든 하고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