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는 '여배우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고 말하고, 여배우들이 설 자리가 없다고 하지만 장외대결은 완벽한 여배우의 승리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곳곳에서 여배우들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이들은 힘겨워 하는 부산을 지키며 '여성 파워'를 보였다.
큰 언니 윤여정부터 손예진·한예리 그리고 막둥이 김태리까지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영화인들이 찾지 않은 영화제의 빈틈을 완벽하게 채웠고 참여할 수 있는 모든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며 존재감을 발휘했다.
이 여배우들이 없었다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분위기는 더욱 삭막하지 않았을까.
윤여정은 말만 하면 빵빵 터졌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윤여정은 관객과의 대화(GV)부터 오픈토크, 야외 무대인사까지 소화했다. 툴툴거리고 할 말은 다 하면서도 애정의 깊이가 남다른 여배우. 윤여정이 등장하는 곳마다 이슈는 터졌다.
윤여정은 "좋은 일이라면 돈을 따지지 말고 했으면 좋겠다. 싼 값에 열심히 하다 보면 결국 자신의 가치가 비싸진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죽여주는 여자'에서 함께 호흡 맞춘 윤계상은 이러한 윤여정을 지원사격, 부산을 방문해 주요 일정을 함께 했다.
누구보다 빛난 손예진이다. 손예진 역시 관객과의 대화를 시작으로 오픈토크에 25회 부일영화상 참석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른 일정을 치러냈다. 충무로에서 원톱 여주인공이 가능한 여배우로 미(美)친 활약상을 펼쳤던 만큼 손예진에 대한 관심도는 남달랐다.
갈아입은 옷 만 여러 벌. '소예진'이라는 별명에 대해 어감은 예쁘지 않지만 좋다고 밝힌 손예진은 "남자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는 많은데 여자들은 없지 않냐"며 "전도연 김혜수 선배님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들이라 함께 하면 내가 너무 작아지겠지만 그래도 그런 기회가 주어지고 영화가 탄생한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한예리는 개막식 당일부터 바빴다. 개막작 '춘몽' 여주인공으로 개막식 레드카펫을 밟은 것은 물론, 공식 기자회견을 비롯해 '춘몽'과 '더 테이블' 무대인사, 관객과의 대화 일정을 날아다녔다. 아예 부산국제영화제를 위해 스케줄을 비워둔 듯 동에번쩍 서에번쩍 부산국제영화제를 즐겼다.
영화 속 세 남자의 '뮤즈'로 사랑받은 한예리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뮤즈'로도 각광받은 것. "중요한 시점에 있는 영화제에 참여하게 돼 기쁘다. '춘몽' 개막작 선정은 진심으로 뭉클했다"고 말한 한예리는 "찾아주셔서 감사하고 영화를 촬영하며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즐겨달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제 영화계에 데뷔한지 1년, 작품은 오로지 '아가씨' 하나 뿐인 막둥이 김태리는 '핫한' 인기몰이로 차세대 충무로를 이끌어 나갈 여배우의 입지를 공고히 다졌다. 분위기 넘치는 미모를 감상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아가씨 김민희의 부재를 느끼지 못하도록 김민희에 대한 마음을 표현해 강단있는 성격을 엿보이게 했다.
김태리는 25회 부일영화상 신인상 트로피르 거머쥐고 "첫 눈에 반한 민희 언니. 꼭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하는가 하면, '아가씨' 촬영 에피소드를 기억하며 "언니는 분장실에 자기 테이블을 놓는다. 아무도 못 앉는, 자신만의 자리가 있다. 내겐 그 모습이 고양이처럼 느껴졌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