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꽃, 현장의 꽃은 늘 여배우 차지였다. 물론 그 '꽃'의 의미가 썩 좋은 것 만은 아니지만, 성별과 상관없이 극중 없어서는 안 될 존재, 누구보다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를 뜻하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여기 이러한 의미로 꽃이 된 '남배우'가 있다.
영화 '더 킹(한재림 감독)'의 주연배우 조인성(35)은 배성우(46)를 '더 킹'의 꽃이라 표현했다. 타고난 연기꾼에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연기를 선보이면서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로 만인의 사랑을 받은 배성우는 수 많은 꽃 중에서도 가장 활짝 핀 꽃이었다고.
이에 배성우는 "자기가 다 했으면서 괜히 엄살을 피우는 것이다"며 손사레를 쳤지만 '더 킹' 속 배성우의 매력은 가히 빛을 발했다. 가장 눈에 띈 명장면은 배성우의 애드리브였고, 두 비주얼 배우들 사이에서 연기력 하나로 죽지않는 섹시함을 뽐냈다.
"연극 배우로 살았지만 흔히 말하는 배고픔을 경험하지는 않았다"고 고백하는 입담과 "조직생활, 위계질서를 싫어하는 성격에 주눅들어 산 적도 없다"고 말하는 솔직함은 배성우의 인간미를 엿보이게 하기 충분하다. "얼굴·이름이 알려졌다고 태도가 변하면 위험하다"는 마인드까지. '더 킹'의 꽃이 아닌 충무로의 꽃으로 만개할 배성우다.
- '더 킹'이 승승장구 하고 있다.
"우리끼리는 걱정이 많다. 무대인사 등 홍보 일정 때문에 감독님, 배우들과 자주 만나는데 다들 걱정한다. '조금 더…'라는 욕심과 아쉬움이 있다."
- 혹자는 배부른 고민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는 있는데 '더 킹'은 편한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다. 메시지와 내포 된 뜻을 읽어내야 한다. 감독님도 그런 이야기를 하길래 '그럼 편하게 만들지 그랬냐. 뭐하는 짓이냐'고 말했다.(웃음) 물론 장난이다."
- 그런 의미에서 경쟁작 '공조'는 완전한 상업영화다.
"맞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쉬운 영화다. 우리 작품도 어려운 것은 아닌데 비교하면 그렇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한재림 감독의 엄청난 팬이었기 때문에 함께 작업을 한 것 만으로 만족도는 높다. 배우들 중에 한재림 감독은 안 좋아하는 배우는 없을 것이다. '연애의 목적' '우아한 세계' '관상'까지 작품이 모두 좋지 않았냐. 나 역시 같이 할 수 있어 좋다."
- 이 시국에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반응이 많다.
"'더 킹' 팀이 결성됐을 땐 매일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이 물 밑에 있었다. 어렴풋이 듣고 문제가 많다는 것은 통감하고 있었지만 공식화 된 일들은 아니었다. 때문에 계몽을 한다거나 어떤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아 내겠다는 큰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상업영화로써 이 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작품이 한 편쯤은 있어도 괜찮겠다'라는 마음이었다."
- 시나리오가 잘 빠진 작품으로 유명했다.
"나 역시 시나리오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그러다 곪아터진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지금도 어떤 하나의 현상이나 개인의 드라마를 전함과 동시에 우리 현대사 전체를 통찰력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 부분이 가장 매력적이었고. '이 감독님이 이런 생각을 다 했네?'라는 신선함도 느꼈다."
- 준비 기간이 꽤 길었다.
"원래는 2015년 11월에 크랭크인 예정이었는데 조금 더 늦춰지면서 2월에 첫 촬영을 시작했다. 전 작품을 끝낸 후에 '더 킹'에 합류하기까지 개인적으로도 텀이 길었다. 그래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영화의 톤 앤 매너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를 하고 들어간 편이라 그나마 수월했던 것 같다. 하지만 촬영에 들어간 후에도 대화를 많이 나눴고, 어려웠던 지점들도 있었다."
- 만족감은 어떤가.
"인터뷰를 하러 오면서도 '만약 이 질문을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까'에 대해 고민했다. '아, 저는 진짜 부족한 것이 너무 많다고 느꼈습니다'라는 답 밖에는 떠오르지 않더라.(웃음)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진짜다. 여기에 플러스 '공부가 많이 됐습니다'를 덧붙이고 싶다."
- 어떤 공부가 됐나.
"우리 영화는 촬영 회차가 많았다. 100회 차를 넘어 총 104회 차를 찍었다. 그 중에서 내가 60회 차 가까이 나온다. 처음에는 40회 차 정도 이야기를 하셨는데 계속 꾸역꾸역 쑤셔넣고 자꾸 '저 뒤에 잠깐이라도 나와야 한다'면서 현장에 불렀다. 지방 촬영이 많았는데 한 번 내려가면 서울로 다시 올라오기가 힘들지 않나. 혹사 당했고 나를 아주 못살게 굴었다.(웃음)"
- 그럼 질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근데 그렇게 현장에 상주하면서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오랜시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촬영 뿐만 아니라 후시녹음을 할 때도 자주 불려 다녔다. (조)인성이 내레이션 녹음을 하는데도 오라고 하더라.(웃음) 기획부터 대본 작업, 후반 공정까지 몰랐던 것은 아닌데 이렇게까지 피부로 느껴 본 적은 처음이었다."
- 전혀 몰랐다가 알레 된 부분도 있겠다.
"영화는 결국 감독의 예술, 영화의 꽃은 편집이라고 하는 이유를 완벽하게 깨달았다. 편집이 뒤집어져도 꼭 그 자리, 그 타이밍에 들어가야 하는 신이 있다면, 언제 어떻게 들어가느냐에 따라 영화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신도 있다. 쿠키영상과 비슷한 정우성과 내 장면 같은 경우도 원래는 엔딩이 아닌 후반부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조금 더 산뜻하게 끝을 내고 싶었는지 아주 뒤에 붙였더라. 느낌이 너무 다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이렇게 만들어져 가는구나'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 배우로서 깨우친 점이 있다면.
"깨우쳤다기 보다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났고 그 만큼 치열하게 노력했다. 감독님 스타일을 보면 뭐든 현장에서 많이 뽑아내려 한다. 거기에 맞춰 배우들은 대본 속 글을 그저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목적을 최대한 살리고 '관객들에게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보일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좋은 결과를 뽑아내기 위해 매달렸던 시간이다. 감독님을 잘 따라간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 욕심을 부렸다. 그런 몰입도나 치열함이 좋았다. 공부가 많이 됐다."
- '더 킹'이 15세 이상 관람등급을 받았다. 청소년의 눈으로 봤을 때 어떤 점에 중점을 두면 좋을까.
"어렵다. 뭐 하나 딱 말하기가 애매하다. 여러가지가 있는데 일단 멋진 오빠와 형, 언니와 누나들이 나온다. 이 영화에는 예쁜 사람이 참 많다. 청소년 때는 그런 것에 더 관심이 많지 않은가. 아닌가? 나는 그랬던 것 같은데…(웃음)
그리고 지금 청소년들이라고 하면 당연히 70~80년대를 겪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태어나기 전일 것 같은데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오래 된 역사는 아니다. 경험은 못했지만 가장 가까운 현대사를 영화로나마 한 번 스윽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요즘은 어른보다 나은 청소년이라고 한다. 정치에 관심 많은 청소년들도 많다고 하더라.
"정말 그런 것 같다. 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TV를 봐도, 인터넷을 봐도 특히 요즘은 더 정치뉴스가 도배 돼 있지 않나. 매일 매일 뉴스가 터지고 있는 상황에서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과거가 어땠길래 결국 이런 사건들이 터질 수 밖에 없는지 조금은 더 쉽게 체감적으로 와닿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공부 하라고 관람을 요청하는 것은 아니고.(웃음) 한 개인의 문제는 분명 아니기 때문에 관심있게 보면 여러 갈래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