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나 왜 존재감 없어!'라고 외치거나 툴툴거리고 싶어질 땐, 거울을 한 번 더 보거나 나 자신을 들여다 보는 편이 여러모로 이득이다. 존재감,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는 임팩트는 결국 '나'로 인해 파생되기 마련이다. 영화 '신과함께(김용화 감독)' 시리즈의 염라 이정재는 '밀정(김지운 감독)' 이병헌에 이어 톱스타의 가장 영리한 특별출연으로 기억될 전망이다.
'특별출연, 특별출연' 하지만 쌍천만을 앞둔 시리즈의 주역으로 분량과 비중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1부 때부터 공식석상 한켠에서 조용히 홍보를 도왔던 이정재는 이제 '신과함께' 일정에 없으면 아쉬운 배우가 됐다. 1부가 대성공을 거둔 후 2부 개봉을 앞두고는 매체 인터뷰까지 나선다고 해 취재진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정재가 주연으로 촬영을 마친 '사바하(장재현 감독)'를 통해 곧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졌던 터라 그의 결정은 기분좋은 선물이 됐다.
사진 촬영을 하지 않음에도 깔끔한 댄디룩에 특유의 소년미 넘치는 미소로 기자들을 맞이한 이정재는 '이 배우가 원래 이렇게 멋졌나' 소근거리게 만들 정도로 움직이는 화보를 보는 듯 분위기 넘치는 비주얼을 자랑했다. 이정재의 표현처럼 '한국 영화계의 선배'가 된 존재다. 저승지배자 염라를 지금 만나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될 정도. 이정재는 영화 안에서도, 밖에서도 정신적 지주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겸손의 미덕도 빛난다. 이정재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이후 하정우와 김용화 감독에 의해 다시 정리됐다. "염라는 명백한 조연"이라는 이정재의 발언에 김용화 감독은 "특별한 특별출연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and(그리고) 누구'로 표기된다. 그 캐릭터를 이정재라는 배우가 맡아줘서 감사할 따름이다"고 단언했다. '신과함께-인과 연' 흥행을 "700~800만?"이라고 예측한 수치에 대해서는 하정우가 "우리 염라언니 너무 겸손했다"며 싹둑 잘랐다.
실제 '신과함께-인과 연'은 누적관객수 900만 명을 돌파, 1000만 가시권에 들었다. 한국 영화 최초 시리즈 쌍천만 대기록이다. 이정재는 '도둑들(최동훈 감독)', '암살(최동훈 감독)', 그리고 '신과함께' 시리즈로 연속 1000만 기쁨을 함께 나눈다. 한층 넓어진 팬층에 덤으로 얻은 친근함까지. '신과함께'와 이정재는 서로가 서로에게 행운의 존재가 됐다. - 이제 비중은 크게 따지지 않는 것인가. "한 10년 정도 된 것 같다. 외국 영화를 보면 정말 대단한 배우들이 아주 작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프로젝트라는 이유로 참여해 재미있게 작업한다. 그게 좀 부러웠다. '한국 영화도 좋은 프로젝트,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을텐데' 싶었고, 그 첫 시작이 나에게는 '도둑들(최동훈 감독)'이었다. 본인의 롤이나 크기, 중요도를 따지지 않고 영화적 재미만 놓고 모일 수 있었던 작품이다." - 경험에 의해 생각이 바뀐 것인가. "다른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에 있어서도 '연기적으로 새롭게 보여 드릴 수 있는 역할이라면 모든걸 다 떠나 나도 충분히 즐기면서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든다. 염라같은 경우는 김용화 감독과 친분도 친분이지만 캐릭터가 재미있었고 등장하지 않아도 그 존재 만으로도 충분히 필요한 캐릭터라 더 좋았다."
- 수 많은 지옥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본인의 삶을 되돌아 보기도 했나. "1부를 볼 땐 여러 지옥의 모습들과 그 지옥에서 다루는 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다 보니까 '야, 뭔가 진짜 좀 죄짓고 살면 안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현실로 따지면 기독교라…. 기독교인 염라다. 하하." - 걸어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어떤가. "어떤 자부심보다는 '너도 이제 늙었구나. 진짜 선배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웃음) '나에게 바라는 것이 많이 있고, 기대고자 하는 부분이 많이 있구나. 선배 역할을 해야 하는구나. 나이를 먹긴 먹었네' 싶은 것이다."
- 큰 변화를 느끼나. "거절을 잘 못하겠더라. '한국 영화계의 영화인으로서 당신은 선배니까 이런 역할도 해줘야지' 하는 무언의 이야기도 들리는 것 같아서. 돌이켜 보면 우리 선배들도 한국 영화의 발전과 존립을 위해 굉장히 많은 일들을 서스름없이 하셨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일해왔던 후배인 내 입장에서는 뭔가 '마음의 빚'이 쌓여있는 것 같다. '신과함께' 같은 대형 프로젝트가 기획·개발·개봉까지 할 수 있었던건, 1부가 1400만 명이라는 흥행을 할 수 있었던건 선배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후배들이 '선배 이것 좀 해주세요' 하면 거절이 안 된다."
- 소속사 운영도 그 일환일까. "배우의 마음은 배우가 더 잘 알 수 밖에 없다. '현역 배우들이 주축으로 회사 운영을 하면 다른 소속사보다 효과적인 회사가 되지 않을까'라는 취지에서 만들었던 것이다. 그 취지가 다른 어떤 외부적인 여러 요인에 의해 퇴색되지 않고 꾸준히, 순수하게 발전해 나가길 기대하고 있다. 회사에서도 후배들이 뭘 요청하면 다 해주는 편이다.(웃음)" - 본인이 신인일 때와 요즘 신인을 보면 달라진 점도 있는 것 같나. "너무 다르다. 일단 지금은 완벽할 정도로 준비된 신인들이 많다. 교육기관이 많아져서 그런 것인지,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친구들 자체가 영리해서 그런 것인지 자신이 뭘 해야 돋보일 수 있는지 이미 깨닫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더라. 준비도 철저하다. 첫 영화, 첫 작품인데도 잘 소화해내 놀랍다. 예전 내 모습과 비교한다면 난 정말 많이 쑥스러워 했던 것 같다." - 확실히 환경은 변한 것 같다.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우리 때는…' 이라고 하니까 웃긴데(웃음) 아주 옛날엔 오전 7시에 촬영을 시작하면 다음날 오전 7시에 끝났다. 24시간 내내 촬영한 것이다. 스태프들도, 배우들도 체력적으로 버틸 수 없는 구조였다. 여전히 힘든 부분들은 있지만 '52시간 근무' 등 어떤 확실한 제도 아래 시도하고 시행되는건 정말 좋다고 본다."
- 여름시장, 결국 '신과함께-인과 연'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반응이 많다. "다 잘 돼야지. 나오는 모든 영화들이 의미있고, 그 노력과 고생은 나눌 수 없다.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둬 모두가 보람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