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리그 최고의 하드웨어에 드디어 어울리는 소프트웨어가 장착됐다. 파이어볼러 김서현(21·한화 이글스)에게 '돌부처'의 아우라가 풍긴다.
김서현은 지난 15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5 KBO리그 정규시즌 SSG 랜더스와 원정 경기 9회 말 등판해 1이닝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시즌 4호 세이브를 수확했다.
페이스가 뜨겁다. 올 시즌 11경기에 등판한 김서현은 9와 3분의 2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0을 유지 중이다. 리그에서 10경기 이상 던져 무실점을 기록하는 투수는 그가 유일하다. 최고 158㎞/h 강속구를 뿌리는 그는 타자의 스트라이크존을 적극 공략한다. 탈삼진은 이닝당 1개에 가까운 9개를 기록하는 동안 볼넷이 단 2개에 불과하다.
2023 KBO 프로야구 SSG랜더스와 한화이글스의 경기가 2023년 5월 14일 오후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렸다. 7회말 구원 등판한 김서현이 역투하고 있다. 인천=김민규 기자 mgkim1@edaily.co.kr 전에 없던 신무기를 장착한 게 아니다. 김서현은 2년 전 신인 때도 데뷔전부터 최고 160.1㎞/h를 찍었다. 투구 레퍼토리도 그때나 지금이나 직구와 슬라이더가 핵심이다. 하지만 그땐 타자와 붙지 못했다. 최원호 당시 한화 감독은 김서현의 호투에 주목해 5월 부임하자마자 그를 필승조로 기용했다.
하지만 김서현은 스스로를 옭아맸다. 그해 5월 탈삼진 14개를 기록하는 동안 사사구 7개를 내준 김서현은 6월 결국 무너졌다. 6월 4경기에서 탈삼진 2개를 얻는 동안 사사구 9개를 내줬고, 완전히 무너지며 2군으로 강등됐다.
당시 최원호 감독은 "김서현 정도 수준의 선수를 패전 처리로 1군에서 기용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필승조로 계속 썼다. 결과적으로 제가 잘못 판단한 것 같다"며 "결정적으로 내려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다. 어제 김서현이 던지고 내려와 주변 눈치를 상당히 많이 보더라.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지 않나. 정말 많이 힘들어 보였고, 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성장통을 거친 김서현은 2024년 살아났다. 고민 끝에 투구 폼을 서울고 시절로 돌렸고, 구종 배합도 직구 대신 제구에 자신 있는 슬라이더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면서 경기를 풀어갔다. 그 결과 구속을 되찾고 1군에 돌아왔고, 37경기 1승 2패 10홀드 평균자책점 3.76으로 필승조가 됐다.
그래도 '자신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당시 김서현은 탈삼진 43개를 잡았지만, 사사구도 36개에 달했다. 이닝당 1개꼴로 사사구를 내주니 경기 운영이 안정적이지 못했다.
올해는 다르다. 김서현은 더 이상 자신을 흔들지 않는다. 또 동료들이 흔들릴 때도 마운드에서 꿋꿋이 버텨낸다. 15일 경기 때도 김서현은 2사 후 주자를 내보냈다. 기록 상 피안타였지만, 어렵지 않은 바운드 타구를 1루수 채은성이 놓쳐 생긴 출루였다. 후속 타자 이지영은 끈질기게 공을 커트해 김서현을 괴롭혔다. 김서현은 흔들리지 않고 이를 모두 막아냈다.
김서현은 경기 후 "팀 승리를 지켜내 기쁘다. 세이브 상황에서 아직까지는 흔들리지 않고 잘 지켜내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 뿌듯하고 자신감이 더 생긴다"고 전했다. 그는 "마운드에서 볼넷을 내주더라도 자신있게 공을 던지는 데 주력하고 있는데, 오히려 스트라이크가 더 잘 들어가는 것 같아 더욱 공격적인 투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라고 답했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김서현이 꽃을 피운 밑바탕엔 코칭스태프의 결단도 있다. 김경문 감독은 부임 후 김서현과 면담해 힘을 실어줬고, 양상문 코치도 김서현이 '본인답게' 던질 수 있게 지지했다. 김 감독은 이어 올해 시즌 초 주현상이 부진하자 신속하게 김서현을 마무리로 올렸다.
김서현은 "기회를 주신 감독님, 코치님께 감사드린다"며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어주신 감독님, 많은 부분을 지도해주시는 투수코치님 덕분이다. 두 분은 내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자신 있게 공을 던지고 있는 계기"라며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앞으로도 계속 좋은 모습만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감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