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지 못했을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오늘 완봉, 꼭 돌아가신 아버지께 전해드리고 싶어요."
프로 15년 차. 데뷔 첫 완봉승을 이룬 임찬규(33·LG 트윈스)의 마음 한 켠엔 여전히 아버지가 있었다.
임찬규는 2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5 KBO리그 정규시즌 한화와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9이닝 동안 단 100구만 던지면서 2피안타 2볼넷 5탈삼진 무실점 완벽투로 완봉승을 거뒀다. 2011년 프로 데뷔한 그가 완봉승을 거둔 건 처음이다.
2025 KB0리그 프로야구 LG트윈스와 한화이글스의 경기가 26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4대 0 완봉승을 거둔 임찬규가 경기 후 관중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잠실=김민규 기자 mgkim1@edaily.co.kr 이날 임찬규의 직구 구속은 최고 145㎞/h, 최저 136㎞/h로 빠르지 않았으나 주 무기 커브(28구)와 체인지업(25구)을 고루 섞어 한화 타자들에게 범타를 유도했다. 한화 타자들은 조금씩 다르게 들어오는 변화구를 공략하지 못했고, 기껏 정타를 쳐도 LG 야수진의 수비에 막혀 단 2안타에 그쳤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임찬규는 "완봉을 생각하고 마운드에 올랐던 건 아니다. 한 타자, 한 타자 집중해서 던졌더니 결과가 좋았던 것 같다. 한 번은 해보고 싶었던 기록인데 할 수 있어 감회가 남다르다"고 전했다.
완봉을 하긴 했지만 처음 오른 아홉 번째 이닝에서 마운드는 프로 15년 차인 그에게도 긴장되는 무대였다. 임찬규는 "(9회 등판 전) 감독님께서 '이런 기회가 흔치 않을 것이다. 한번 해보겠느냐'고 하셨다. 나도 역시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며 "감독님께서 OK를 주셨지만, 등판하니 역시 심장이 조금 뛰더라. 더 긴장됐지만 최대한 단순화시키려고 했다.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고, 노력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2025 KB0리그 프로야구 LG트윈스와 한화이글스의 경기가 26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9회초 2사 플로리얼의 강한 땅볼 타구를 임찬규가 몸을 뻗어 잡아내고 있다. 완봉승 완성. 잠실=김민규 기자 mgkim1@edaily.co.kr 끝까지 완봉을 지켰지만, 9회가 만만하진 않았다. 첫 타자 김태연은 3루수 땅볼로 물러났으나 마지막 두 타자가 모두 정타를 쳤다. 하지만 임찬규는 문현빈의 타구를 직선타로 직접 처리했고, 마지막 에스테반 플로리얼의 땅볼은 다이빙 캐치로 포구해 1루로 던져 직접 마무리했다.
임찬규는 "뭔가 더 집중력이 커진 것 같았다. 공이 내게 날아오면 모두 잡아내겠다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나온 듯하다"며 "(박)동원이 형은 '공을 다 잡는다. 골키퍼냐'고 그러더라"고 웃었다.
2025 KB0리그 프로야구 LG트윈스와 한화이글스의 경기가 26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4대 0 완봉승을 거둔 임찬규가 기뻐하고 있다. 잠실=김민규 기자 mgkim1@edaily.co.kr2025 KB0리그 프로야구 LG트윈스와 한화이글스의 경기가 26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4대 0 완봉승을 거둔 임찬규가 포수 박동원과 포옹하며 기뻐하고 있다. 잠실=김민규 기자 mgkim1@edaily.co.kr 임찬규는 "완봉을 한 순간 동원이 형이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사실은 인플레이가 나온 뒤 동원이 형과 마주보고 (멋지게) 끝내고 싶었다. 그런데 공교롭게 투수 땅볼이 나와서 1루수 오스틴 딘을 보면서 마무리했다. 오스틴도 격렬하게 축하해줘서 고마웠는데, 포수와 멋있게 세리머니하지 못한 건 조금 아쉽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파트너보다 더 떠오르는 사람도 있다. 임찬규는 "오늘 누나와 어머니가 직관을 오셨다"며 "그리고 첫 완봉승인데, 아마 보시지 못하셨을 아버지가 많이 생각난다. 그렇기에 오늘 완봉을 꼭 아버지께 전해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2025 KB0리그 프로야구 LG트윈스와 한화이글스의 경기가 26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4대 0 완봉승을 거둔 임찬규가 경기 후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잠실=김민규 기자 mgkim1@edaily.co.kr 임찬규의 부친은 지난 2021년 5월 19일 별세했다. 그해 시즌 초 부진했던 임찬규는 부친상을 치른 뒤 구속이 오르며 LG의 가을야구 진출에 힘을 보탰다. 부친상은 마음을 다잡는 계기기도 했다. 당시 그는 "상을 치르면서 체중이 감소했는데, 투구 밸런스가 오히려 좋아졌다"고 했다. 아버지의 유언인 '쫓기지 말고 즐겁게, 행복하게 야구하라'에 따라 구속에 쫓기는 대신 자신만의 야구를 완성했다.
지난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둔 임찬규는 올해도 완봉으로 좋은 출발을 알렸다. 임찬규는 "사람마다 목표가 있다. 난 매년 조금씩 내가 발전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기쁘다. 재작년보다 작년, 작년보다 올해 조금씩 더 성장하는 자신을 상상하면 행복하다. 그게 목표"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