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MLB)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구단은 지난 17일(한국시간) 김하성을 2024년 주전 유격수로 기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내셔널리그(NL) 유틸리티 부문 골드글러브(GG) 수상자인 김하성은 빅리그에서 뛴 3년 동안 1루수를 제외한 내야 전 포지션에서 리그 정상급 수비 실력을 뽐냈다. 주전 유격수로도 손색없는 경력을 쌓아왔지만 스타 플레이어 잰더 보가츠를 밀어냈다는 점에서 이번 발표가 더욱 눈길을 끈다. 보가츠는 2022년 12월 샌디에이고와 11년, 총액 2억8000만 달러(3733억원)에 계약한 올스타 유격수다. 이런 선수를 영입 1년 만에 포지션 이동시킨다는 건 좀처럼 보기 드문 '결단'이다. 과연 어떤 배경이 있는 걸까.
우선 보가츠는 MLB에서 11년을 뛰면서 단 1이닝도 2루수로 뛴 적이 없다. 통산 379경기를 뛴 마이너리그 시절도 마찬가지다. 그가 유격수가 아니었다면 3억 달러에 이르는 대형 계약을 따내기 어려웠을 거다. 포지션을 고려한 수준급 공격 수치가 더해져 오늘날 보가츠의 가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마이크 실트 샌디에이고 감독은 보가츠의 수비가 나빠서가 아니라 김하성의 수비가 더 좋기 때문에 포지션을 바꿨다고 조심스럽게 표현했다.
김하성에게 샌디에이고 주전 유격수 자리를 내준 잰더 보가츠. 게티이미지
MLB 통계 사이트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보가츠는 지난해 평균 대비 아웃 카운트를 더 잡아낸 수비 척도인 OAA(Outs Above Average)가 3으로 평균 이상이었다. 하지만 수비로 막아낸 점수(Defensive Run Save)는 4로 평균 이하였다. 반면 김하성의 수치는 훨씬 좋다. 주전 유격수로 뛴 2022년 OAA와 DRS는 8과 10이었다. 김하성은 지난해 커리어 하이 공격 스탯을 기록,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이 5.8로 야수 가운데 11위였다. 높은 WAR을 달성한 배경에는 공격 못지않게 수비 WAR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보가츠는 지난해 도루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격 지표에서 김하성에 앞섰다. 하지만 WAR이 4.4로 낮았다. 공격 WAR은 4.8로 4.2를 기록한 김하성에 우위를 점했으나 수비 WAR이 0.4(김하성 2.1)로 격차가 컸다. 쉽게 말해 김하성이 수비에서 전체 평가를 뒤집은 것이다.
고액 연봉 스타 플레이어의 포지션 변경을 강요할 수 없다. 보가츠처럼 계약 기간이 10년이나 남은 선수라면 더더욱 그렇다. 보가츠는 약간의 아쉬움을 표했지만, 팀에 도움이 된다면 결정을 받아들이겠다고 비교적 '쿨하게' 포지션 변경을 수락했다.
샌디에이고의 지난 3년 투자는 큰 아쉬움을 남겼다. 월드시리즈(WS) 첫 우승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지갑을 화끈하게 열었으나 결과는 미미했다. 올해 전망도 마냥 밝지 않다. 실트 감독은 전력을 대대적으로 강화한 LA 다저스, 지난해 WS 준우승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경쟁해야 한다. 이정후와 호르헤 솔러를 비롯해 타선 보강에 주력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도 만만치 않다. 샌디에이고는 올겨울 대형 선수 영입을 주저했다. 내부 전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인데 그런 면에서 김하성의 포지션 변경은 의미가 크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다. 2024시즌 뒤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리 가능성이 큰 김하성은 본인의 가치를 더욱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