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진 앞에선 정몽규 협회장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사안 관련 임원 회의를 마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4.2.16 ondol@yna.co.kr/2024-02-16 14:51:28/ <저작권자 ⓒ 1980-2024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의 선임 과정을 두고 “오해가 있다”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또다시 궁지에 몰린 모양새다. 정 회장은 명확한 프로세스를 거쳐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했다고 해명했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이미 지난달 사실상 정반대 되는 인터뷰를 독일 현지 매체와 진행했던 바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독일 탐사보도 매체 슈피겔과 클린스만의 인터뷰에 따르면 클린스만 감독과 정몽규 회장은 이미 지난 2022년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의 한 경기장에서 만났다. 당시 한국은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감독이 이끌고 있던 시기이자, 벤투 감독이 브라질과 16강전 패배 후 사임 의사를 밝힌 뒤였다. 대한축구협회 입장에선 벤투 감독의 뒤를 이어 차기 감독을 물색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기술연구그룹(TSG) 일원이던 클린스만 전 감독은 정몽규 회장에게 다가가 ‘새로운 감독을 찾고 있냐’며 농담조로 말했다. 정 회장과 클린스만 감독은 이미 지난 2017년 한국에서 열렸던 20세 이하 FIFA U-20 월드컵 때부터 친분을 쌓아왔다. 클린스만 감독의 이 농담을, 정 회장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게 슈피겔의 설명이다.
곧바로 정 회장과 클린스만 전 감독은 다음날 카타르 도하의 한 호텔에서 커피를 마시며 논의했다. 클린스만 전 감독은 당시 “스트레스는 받지 말라.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해본 말이다. 관심이 있으면 그때 연락 달라”는 취지로 말했다. 농담이었음을 재차 강조하면서도 감독 가능성도 함께 열어둔 것. 그리고 실제 정 회장은 몇 주 뒤 클린스만 감독에게 직접 연락을 건넸고, 결과적으로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해 3월 한국 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해 3월 취임 기자회견 당시에도 정몽규 회장과 각별한 사이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정몽규 회장과는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며 “2017년 아들이 FIFA U-20 월드컵에 출전하게 되면서부터 상당히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사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임원회의 결과 발표하는 정몽규 협회장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사안 관련 임원 회의를 마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4.2.16 ondol@yna.co.kr/2024-02-16 14:48:02/ <저작권자 ⓒ 1980-2024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축구대표팀과 튀니지 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경기에 앞서 벤치에서 클린스만 감독과 포옹하고 있다. 상암=김민규 기자 mgkim1@edaily.co.kr /2023.10.13/ 클린스만 감독의 이같은 인터뷰 내용은 정몽규 회장이 직접 선임 과정에 선을 그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기도 하다. 정몽규 회장은 지난 16일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회장직 사퇴’에 대한 질문을 받자 “오해가 있는 것 같다. 클린스만 감독은 벤투 감독 선임 때와 똑같은 절차로 진행했다”고 했다.
당시 정 회장은 “벤투 감독의 경우 1순위와 2순위 후보가 답을 미루거나 거절한 뒤 제3순위 후보로서 결정했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때도 61명에서 23명으로 좁혀지자 최종적으로 마이클 뮐러 위원장이 5명을 대상으로 우선순위를 정했다. 뮐러 위원장이 5명의 후보를 인터뷰했고, 우선순위 1, 2번 2명을 2차 면접을 진행했다. 최종적으로 클린스만 감독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클린스만 감독 경질 여론과 맞물려 그를 선임한 정 회장 역시 사퇴해야 한다는 압박이 거센 시점이었다는 점, 그리고 취재진 질문 역시 ‘회장직 사퇴 여부’를 재차 묻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정 회장의 이같은 설명은 클린스만 선임 과정과 자신의 연관성에 선을 그으려는 의도였다. 자신은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에 관여한 바 없으며, 따라서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하더라도 회장직에서 물러날 이유는 없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함으로도 해석이 가능했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 인터뷰와 슈피겔 보도에 따르면 정 회장은 벤투 감독의 후임을 찾는 작업이 이뤄지기 한 달 전부터 클린스만 감독과 관련 논의를 했고, 클린스만 감독에게 직접 연락을 할 정도로 적극적이기까지 했다. 벤투 감독 선임과 같은 프로세스를 거쳤다는 정 회장의 설명과는 크게 다른 지점이다.
'감독 경질 논의' 대한축구협회 결정은?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2024.2.16 [공동취재] ondol@yna.co.kr/2024-02-16 10:32:09/ <저작권자 ⓒ 1980-2024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물론 정 회장의 설명대로 실제 클린스만 감독이 61명에서 23명, 5명, 2명 순으로 좁혀지는 경쟁에서 거듭 좋은 점수를 받았을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다만 당시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 대표팀을 맡기 전 감독으로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던 데다, 외신들조차 우려할 정도로 전술적인 역량 등에 대한 의구심이 컸던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좋은 점수를 받아 최종 감독 자리 올랐다면, 대한축구협회의 감독 선임 시스템이 완전히 엉망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엉망인 시스템의 책임에서 정 회장 역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더구나 이미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들이 클린스만 선임 30분 전에 통보를 받을 만큼 유명무실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 정황상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에 정 회장의 영향력이 컸을 것이라는 의심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가뜩이나 벤투 감독 때처럼 정당한 프로세스를 거친 선임이었다는 정 회장의 설명에 설득력이 떨어지던 가운데 클린스만 전 감독의 이번 인터뷰는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 클린스만 감독의 실패 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의 선임 과정부터 세밀하게 살펴보는 게 첫 번째. 클린스만 감독의 인터뷰가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서 침묵을 지킨다면, “오해가 있다”며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 과정에 선을 긋던 정 회장의 자신감은 거짓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제 시선은 다시 정 회장에게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