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36·서울 삼성)은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베테랑 슈터이자 역대 최강의 ‘금강불괴’로 불린다. 이런 그에게 올 시즌 당면 목표는 자존심 회복이다. 삼성은 3승 15패로 최하위 대구 한국가스공사(2승 14패)와 승차 없는 9위에 머물고 있다. 또 삼성은 현재 원정 경기 21연패라는 불명예 신기록을 이어가는 중이다. 리그에선 최근 5연패로 성적도 좋지 않다. 삼성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 이정현의 역할이 누구보다 중요하다.
이정현에게 2023~24시즌은 프로 13번째 시즌이다. 그동안 안양 KGC(현 정관장), 전주 KCC(현 부산 KCC)를 거쳐 지난 시즌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KGC에서 통합우승 2회(2011~12시즌·2016~17시즌), KCC에서 정규리그 우승 1회(2020~21시즌)를 경험했다. 2018~19시즌에는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출장 기록이다. 그는 600경기 연속 출장으로 한국프로농구(KBL) 역사상 최다 연속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이정현은 지난 5일 창원 LG전에서 정규리그 개인 통산 600번째 경기를 치렀는데, 커리어 내내 군 복무와 국가대표 차출 기간을 제외하면 단 한 차례도 결장하지 않고 연속으로 뛰었다. 이 부문 2위는 LG의 이재도(연속 408경기 출장 중)로, 이정현과 격차가 상당하다.
이정현은 또 프로 2년 차였던 2011~12시즌을 제외하고 전 시즌 두 자릿수 평균 득점을 올렸다. 부상 없이 강하고, 상대 팀에는 가장 무서운 득점원인 그를 두고 은희석 삼성 감독은 “이정현이 프로 새내기였을 때 룸메이트였다. 정현이가 매번 스트레칭을 1시간 가까이 하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자기 몸 관리가 철저하기에 큰 부상 없이 시즌을 건강하게 치르는 것 같다. 웬만한 부상을 입어도 뛰겠다는 의지 또한 강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정현은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는 그 별명(금강불괴)을 안 좋아했는데, 지금은 나를 대표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애착도 많이 가고, 동기부여도 된다”라고 말했다.
지난 5일 통산 600경기를 치른 날, 삼성은 이정현만을 위한 이색적인 티셔츠도 함께 공개해 그의 대기록을 축하했다. ‘Iron Body’ ‘Bronco(야생마·이정현의 별명)’ 문구와 그의 일러스트가 새겨진 기념 유니폼을 선보였다.
이정현은 “나만을 위한 티셔츠 아닌가. 오래 뛰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삼성에 합류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구단에서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라고 감사 인사를 했다. 건강 관리 비결에 대해서 묻자 “자기 관리, 몸 관리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라며 “결국 농구에 대한 열망과 확실한 목표가 중요하다. 지도자의 성향을 파악해 팀 플레이 스타일에 맞는 농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그에게는 개인 기록보다 팀 성적 쇄신이 더 절박한 목표다. 삼성은 최근 몇 시즌간 하위권을 전전했다. 지난 시즌 이정현이 합류하고도 최하위에 머물렀다. 드래프트 상위 지명권을 통해 영입한 유망주들은 최근 부상·적응 문제로 여전히 기량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이정현은 “내가 어렸을 때는 정신력을 많이 요구받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결국 농구를 하다 보니 중요한 건 농구 경기에 대한 이해”라며 “흔히들 말하는 BQ(지능지수 IQ에 빗대 농구계에서 농구지능을 가리키는 은어)가 높아야 한다. 단순히 주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훈련과 경험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정현은 “2016~17시즌 이후 삼성이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했다. 어린 선수들에게 봄 농구에서 이기는 법을 앞장서서 알려주고 싶다. 단순히 유망주에 그치지 않고, 경쟁력 있는 선수가 되길 바란다”라면서 “언제까지 나와 (김)시래 같은 베테랑이 나설 순 없다. 어린 선수들이 치고 올라와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라고 격려했다.
삼성은 8일 선두팀인 원주 DB와 원정 경기를 치른다. 이정현은 “우선 원정 연패 기록을 빨리 깨야 한다. 단단한 모습, 좋은 경기력을 보여드리고 싶다”라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