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재(33·한화 이글스)는 강속구가 각광 받는 시대에 ‘느린 공’으로 경쟁력을 증명하는 투수다.
2022시즌 기준 그의 포심 패스트볼(직구) 평균 구속은 136.9㎞/h에 불과하다. 등판한 32경기에서 3점(3.55) 대 평균자책점을 남겼고, 올 시즌도 8경기에서 2.76을 남겼다.
장민재는 지난 24일 홈(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등판한 KIA 타이거즈전에서도 6이닝 동안 5피안타 1실점을 기록하며 호투했다. 타선이 그가 마운드를 지킬 때 1점 밖에 지원하지 못하면서 승패 없이 물러났지만, 자신의 임무는 잘 해냈다.
25일 KIA전을 앞두고 만난 최원호 한화 감독은 장민재의 경쟁력을 꼽아 달라는 물음에 두 가지를 강조했다. 한 가지는 제구력.
‘투수 전문가’ 최원호 감독은 “현재 KBO리그 투수들 중에서 커맨드(command·구사 능력, 통제 능력)를 갖췄다고 볼 수 있는 투수는 거의 없다"라고 전제를 깔았다.
커맨드는 제구력(컨트롤)의 상위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단순히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능력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로케이션에 꽂는 것.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야구팬이라면 ‘보더라인에 걸치는 공을 던졌다’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도해 이런 공을 뿌리고, 지속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투수는 많지 않다는 게 최 감독의 말이다. 메이저리거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 은퇴한 투수 윤성환를 꼽았고, 외국인 선수 중에는 데이비드 허프를 언급했다.
최원호 감독은 장민재는 커맨드 능력을 갖춰가는 선수로 보는 것 같다. 아직 리그 역사에 손꼽힐 만큼 고급 컨트롤 능력을 갖춘 건 아니지만, 현재 최상위권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기준이 높은 최원호 감독의 평가다. 장민재가 부진했던 시즌은 좁아진 스트라이크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다른 한 가지는 구종 가치다. 주 무기 포크볼 얘기다. 최원호 감독은 “사실상 (무엇을 던질지) 알려주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최근 몇 시즌 동안 그 공(포크볼)을 공략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만큼 구종 가치가 높은 것”이라며 웃었다.
장민재는 지난 시즌 직구 구사율(40.7%)보다 포크볼 구사율(41.3%)이 더 높았다. 직구-포크볼 조합만으로 리그 강타자를 상대하기도 한다. 그만큼 타자의 눈과 판단력을 흔들 수 있는 공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지난 시즌부터 커브나 슬라이더를 조금 더 많이 던지는 ‘피칭 디자인’을 통해 더 다양한 공 배합을 갖추게 됐다. 가운데로 몰리는 직구나 커브가 통타 당할 때도 물론 있지만, 포크볼만큼은 2할 대 초반 피안타율을 유지하고 있는 장민재다.
선수 시절 통산 101승을 거둔 유희관 KBS N 스포츠 해설 위원은 ‘느림의 미학’이라는 표현을 야구계에 남겼다. 1~2년 차 젊은 투수들이 160㎞/h에 육박하는 강속구로 주목받는 상황. 장민재의 경쟁력은 더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