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경기. 3회말 2사 만루 LG 오스틴 딘에게 2타점 적시타를 허락한 한화 투수 문동주가 마운드를 찾은 포수 박상언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KBO리그 역대 '최고속 투수' 문동주(20·한화 이글스)가 성장통을 겪고 있다. '주체할 수 없는' 광속구 때문이다.
문동주는 지난 1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전에 선발 등판, 4이닝 3실점을 기록하고 패전 투수가 됐다. 그는 시즌 초 프로야구 국내 투수 역대 최고속 투구(시속 160.1㎞)를 기록하며 호투를 이어갔지만, 최근 부진하다. 휴식 후 돌아온 4월 30일 NC 다이노스전 이후 4경기에서 1승 3패 평균자책점 7.79에 그치고 있다.
구위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여전히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59㎞ 안팎을 찍고,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은 최고 시속 149㎞를 상회한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 않다. 경기 중 영점이 흔들리고, 실투가 얻어 맞는 경우가 많다.
19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한화 선발 문동주가 역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구 난조는 코너워크를 너무 의식하기 때문이다. 또한 빠른 공이 맞는 건 역설적으로 너무 빨라서라는 주장도 있다. 20일 취재진과 만난 최원호 한화 감독은 "체인지업이 시속 140㎞대 중반까지 나온다. 동주에게 이야기는 했다. 체인지업의 속도가 너무 빠르면 직구 타이밍으로 휘두르는 방망이에 맞는다. 속도를 조금 낮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원호 감독은 "그래서 똑같은 투구 폼으로 슬로 볼을 던지는 기분으로 던져보라고 했다. 나도 체인지업이 처음 유행했던 2000년대 초 그렇게 했다. 미국인 인스트럭터들에게 배웠다. 슬로 볼처럼 던지니 타자들이 헛스윙하더라"며 "동주의 슬라이더나 체인지업은 직구 타이밍의 방망이에 걸릴 수 있다. 유인구로 들어가면 위력적인데, 스트라이크존 안에 들어가면 맞는다"고 전했다.
한화 문동주. 한화 이글스 제공
변화구의 완급을 조절하는 감각은 결국 문동주의 짧은 투수 경력과도 이어진다. 그는 체격이 늦게 큰 그는 광주진흥고 2학년 때에야 전업 투수로 자리 잡았다. 체인지업 등 일부 변화구는 아예 프로에 와서 장착했거나 교정했다.
구속이 보여주는 수치가 반대로 투수의 심리와 선택을 제약하기도 한다. 구속이 빠르니 빠르게만, 강하게만 던지면 된다고 느끼게 하는 거다. 최원호 감독은 "동주는 올해 건강하게 로테이션 소화만 하면 된다. 2~3년 지나면 훨씬 좋아질 거다. 컨디션이 나쁠 때 타자를 잡아내는 요령이 생길 것"이라며 "지금은 파워피칭만 한다.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은 손에 감각이 떨어지는 경우들이 많다. (구속이 빠르니) 주체를 못 하는 것"이라고 했다.
2023 KBO 프로야구 키움히어로즈와 두산베어스의 경기가 18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다. 3회초 안우진이 삼진 2개와 외야 뜬공으로 이닝을 마무리하고 마운드를 내려오고 있다. 고척=김민규 기자 mgkim1@edaily.co.kr
이는 안우진(키움 히어로즈)의 경험과도 일맥상통한다. 안우진 역시 지난 2021년 세게만 던지려다 제구에 어려움을 겪으며 부진했다. 맞지 않으려고 변화구를 세게 던지니 스트라이크존 밖으로 공이 빠져나갔다. 시행착오 끝에 안우진은 변화구 완급까지 조절하는 완성형 에이스로 거듭났다.
또 다른 롤 모델이 있다. 바로 '코리안 특급' 박찬호다. 박찬호와 92학번 동갑내기였던 최원호 감독은 "박찬호도 동주 같았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컨트롤이 좋았는데, 대학에 가 스피드가 느니까 투구 때 (제구가 안 돼) 백네트를 맞췄다"며 "공이 갑자기 확 빨라지니 주체를 못 한 거다. 그때가 대학 1학년이니 나이로 보면 문동주와 비슷하다"고 떠올렸다.
LA 다저스 박찬호가 지난 1997년 8월 11일 컵스전에서 첫 완투승을 거두고 환호하고있다. IS 포토
투수의 전성기는 20대 중반에 찾아온다고 최원호 감독은 믿는다. 그는 "찬호도 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안 좋았다. 최고 시속 160㎞가 나와도 제구가 안 됐다. 경험이 쌓이면서 제구가 잡혀갔고, 90년대 후반이 전성기였다"며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박찬호를) 만났는데, 공이 너무 좋았다. 나나 김원형 감독님은 (비교될까 봐) 옆에서 안 던지려고 했다. 대만 선수들이 박찬호와 상대한 후 '총을 쏘는 것 같았다'고 평가했다"며 "동주도 2~3년 있으면 훨씬 좋아질 거다. 20대 중반에는 우리나라 최고 투수의 자리에 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