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수 웨스 벤자민(30·KT 위즈)이 한 단계 진화했다. 비결은 '향상된 구속'이다.
벤자민은 지난 1일 수원 LG 트윈스전에서 상대 타선을 압도했다. 개막전 선발 중책을 맡은 그는 6회 1사까지 퍼펙트로 LG 타선을 꽁꽁 묶었다. 최종 기록은 6이닝 2피안타 무사사구 4탈삼진 1실점(비자책) 승리 투수.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부터 벤자민의 개막전 선발을 공언했던 이강철 KT 감독은 "(캠프에서) 공이 너무 좋아 1선발을 하라고 했는데 그 컨디션을 그대로 가져왔다. (오히려) 더 좋아진 거 같다"며 흡족해했다.
스피드건에 찍히는 구속이 달라졌다. LG전 벤자민의 최고 구속은 KT 전력 분석 기준 151㎞/h(최저 144㎞/h)였다. 이강철 감독은 "작년 최고 구속은 147㎞/h, 평균 구속이 144~145㎞/h였는데 LG전에선 평균 149㎞/h를 때린 거 같다"고 달라진 부분을 설명했다. 염경엽 감독도 "5회까지 퍼펙트 아니었나. 타자들이 '공이 너무 좋다'고 하더라. (전력 분석을 보니까 KT보다 더 빠른) 152㎞/h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구속 향상은 의도한 변화다. 벤자민은 "비시즌에 계약해서 컨설팅 해주는 센터가 있다. 구속 증가를 원한다고 했다"며 "지난해에는 시즌 중반 들어와서 부상도 있었다. 몸이 정상적으로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그 부분에서 로스(구속이 떨어지는)도 있었다. 올해는 그런 게 없다"고 설명했다.
벤자민은 지난해 5월 부상으로 아웃된 윌리엄 쿠에바스 대체 선수로 KT와 계약했다.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그는 6월 9일 KBO리그 데뷔전에서 팔꿈치 미세 통증을 느꼈다. 관련 문제로 선발 등판을 2~3번 걸렀는데 복귀 후 전력 투구가 쉽지 않았다. 재계약에 성공한 올해는 스프링캠프부터 차근차근 100% 몸 상태를 만들었다. 그는 "(투구할 때) 가슴을 더 많이 쓰는 동작을 비롯해 지난해에는 공을 미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더 정확하게 힘을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부분이 경기 때 잘 보여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23 KBO 시범경기 두산 베어스와 KT 위즈의 경기가 20일 오후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렸다. 선발 벤자민이 역투하고 있다. 수원=정시종 기자
구속을 올리는 데 한몫한 건 성실함이다. 이충무 KT 스카우트 팀장은 "벤자민은 인성이 정말 좋은 선수다. 지난해 합류 때부터 적응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최고"라며 "한국 야구를 반 시즌 경험하고 스스로 대비를 철저히 했다. (구위가 가장 좋았던) 택사스 레인저스 시절 구속으로 복귀했다"고 반색했다. 이 팀장은 미국 현지 코디네이터 데이브 디프레이타스와 함께 벤자민 계약을 이끈 핵심 관계자다. 벤자민은 영입 당시 KT에 부족한 '왼손 선발'이라는 장점 이외 디셥센(투구 시 공을 숨기는 동작)이 뛰어나고 '워크에식(work ethic·성실함)'이 좋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리고 팀의 기대대로 구단에 녹아들고 있다.
공이 빨라도 제구가 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벤자민은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예리한 제구까지 갖췄다. 컷 패스트볼(커터)과 슬라이더의 완성도가 높은 편이다. 그래서 더 위력적이다. 염경엽 감독은 "(볼카운트) 2볼 1스트라이크에서 거의 다 스트라이크를 던졌고,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도 좋았다"며 "주자가 나가야 흔들리는데 주자를 내보내지 않았다"고 호평했다.
KT는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고영표와 소형준의 컨디션이 아직 궤도에 오르지 않았다. 새로 영입한 보 슐서와 함께 벤자민이 시즌 초반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 이강철 감독은 벤자민을 보면 "미국(메이저리그)으로 돌아갈 거냐"고 묻는다. 그만큼 만족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