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열린 한국야구위원회(KBO) 2023년 제2차 이사회(사장단 모임)에선 꽤 의미 있는 결정이 내려졌다. 올해 프로야구 올스타전(7월 15일)을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고 부상자 명단 등재 연장 방법을 간소화하기로 했다. 결정 사안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수비상 신설'이다. KBO 관계자는 "골든글러브가 공격과 수비 지표를 모두 참고하는 게 맞지만 아무래도 공격 지표에 특화돼 있다 보니 수비 중요성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논의했다"고 말했다.
KBO리그는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2년 동안 수비 능력으로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뽑았다. 타격을 포함한 포지셜별 MVP 성격의 '베스트10' 시상식이 별도로 열려 공격과 수비 균등 평가가 가능했다. 하지만 1984년 '베스트10'이 폐지 됐다. 당시 '베스트10' 의 폐지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결국 한 포지션서 공격과 수비가 겹친 선수가 골든글러브와 베스트10을 중복 수상하다 보니 상의 변별력이 크게 모자란다는 평가 때문이다. 타율, 홈런과 다르게 수비율 지표는 비슷한 수준의 선수들에겐 큰 차이가 드러나지도 않는다. 프로야구 초기, '수비 잘 하는 선수'를 명징하게 드러내는데 어느 정도의 어려움도 감안 됐다.
그러나 또 다른 부작용이 나타났다. 골든글러브 시상식만 진행되면서 수비의 중요성이 약해졌다. 공격과 수비를 모두 참고해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결정해야 되지만 아무래도 공격 지표가 더 우선시되는 게 현실이다. 눈에 보이는 숫자가 결국 다득표에 유리하게 마련이다. 매년 수비보다 공격이 특출난 선수들이 수상자로 결정돼 적절성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수비하지 않는 지명타자가 골든'글러브'를 받는 것도 아이러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는 공격과 수비를 따로 평가한다. 공격은 실버슬러거, 수비는 골드글러브로 수상자를 가린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태극마크를 달았던 토미 에드먼(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은 2021년 내셔널리그(NL) 2루수 부문 골드글러브 수상자다. 그해 NL 2루수 중에서 홈런 공동 13위에 머물렀지만 폭넓은 수비 범위와 강한 어깨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일본 프로야구(NPB)도 포지션별 최고 수비수에게 미쓰이 골든글러브가 주어진다. 지난해에는 양대 리그 수상자 18명 중 절반에 가까운 7명이 첫 수상자였다. 2023 WBC 일본 우승에 힘을 보탠 겐다 소스케(세이부 라이온스)는 NPB 통산 홈런이 14개. 시즌 최다 홈런도 4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퍼시픽리그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5년 연속 받은 '수비 달인'이다.
2009년부터 조아제약과 일간스포츠가 공동 제정,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조아제약 프로야구 대상' 시상식에선 수비상이 있다. 포지션을 통틀어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수비수를 뽑는다. 매년 상을 받는 선수들이 빼놓지 않고 하는 멘트가 있다. 하나같이 "가치를 인정해줘서 고맙다"고 힘주어 말한다. 숨어 있는 가치를 발굴한다는 의미에서 이번 수비상 신설은 의미가 크다. 그렇게 발굴된 선수들이 하나의 모멘텀을 만들어 내 또 다른 도약에 나설 수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기존 타격 중심의 시선에서 수비 관점으로 조명하면 뉴페이스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환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