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콘텐츠에는 짧은 장면일지라도 그 안에 의미심장한 장치가 보석처럼 숨어 있습니다. 의도한 것이든, 의도하지 않은 것이든 이런 재미를 찾아보는 것이 바로 영상 콘텐츠의 매력입니다. 1초 만에 지나간 그 장면 속 의미를 짚어보고 깊이 있게 맛볼 수 있도록 ‘1초의 미장센’을 소개합니다.
(사진=스튜디오앤뉴) “똑같이 그리다보면 그 사람이 아니라 내 마음이 보여.”
영화 ‘소울메이트’에서 그림은 미소(김다미)와 하은(전소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두 사람이 일치되는 매개체로 쓰인다. 중국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원작으로하는 ‘소울메이트’는 한국적 감성을 잘 살려 ‘사랑’ 혹은 ‘우정’ 등 명확한 언어로 규정하기 힘든 두 사람의 관계를 찬찬히 ‘그린다.’
민용근 감독은 미소와 하은의 설명할 수 없는 관계를 클로즈업을 통해 종종 표현했다. 자유로운 영혼 미소(김다미)와 모범생 하은(전소니)은 둘도 없는 단짝 친구로 자란다. 그런데 완벽할 것 같던 두 사람의 관계에 진우(변우석)가 등장하면서 미묘한 변화가 생긴다.
하은이 진우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면서 어느새 두 사람은 세 사람이 된다. 행복한 청춘의 순간은 제주도 오름 등산에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렇게 오름 등산 장면에서 미소와 하은의 싱그러운 한때가 클로즈업으로 잡히고, 정지돼 필름 속에 담긴다. (사진=스튜디오앤뉴) 미소와 하은이 교차하는 첫 번째 순간이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정지된 미소와 하은의 모습은 인생에 가장 찬란한 순간을 잡아둔 듯하다. 오래된 사진을 꺼내보는 것처럼 추억은 늘 아름다웠던 한 장면이 머릿속에 남기 마련이다. 미소와 하은은 서로를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담은 추억 그 자체로 여긴다. (사진=스튜디오앤뉴) 다음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영혼까지 통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사실 극 중에서 미소와 하은은 어린 시절을 보낸 것 외에 늘 따로 지내게 된다. 미소는 진우가 자신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눈치채고, 하은을 위해 제주도를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후 미소는 떠도는 인생을, 하은은 정해진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미소는 서울 곳곳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은은 제주도에서 입시와 대학 생활을 한다.
그렇게 단절된 두 사람은 ‘공간’을 통해 이어진다. 극 후반부부터 하은은 미소가 살아갔던 서울 곳곳을 하나하나 방문하며 하은의 길을 걸어간다. 공간 속에서 미소가 남긴 흔적을 보면서, 미소가 느낀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며 하은은 미소가 된다. 민용근 감독은 ‘소울메이트’에서 제주도를 청춘 시절로, 서울을 그 이후로 공간을 분리해 철저히 나눴다.
극 마지막에는 비로소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 학창시절 하은은 “똑같이 그리다보면 그 사람이 아니라 내 마음이 보여”라며 진우에게 고백했지만, 결국 하은은 진우 대신 오름 등산에서 찍은 미소의 얼굴을 천천히 그리고 있었다. 이제 미완에 머무른 그림을 완성하는 것은 미소 자신이다. 그림을 그리는 미소와 유리창에 비친 하은은 완벽한 ‘소울메이트’로 서로를 바라보며 영화는 엔딩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