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명, RE(Re examination). 일이나 사물의 가치를 다시 들추어 살펴본다는 이 말을 스타에 대입해 보려 합니다. 아니, 스타보다는 한 인물을 재조명한다는 말이 더 적합하겠군요. TV·영화·연극·뮤지컬·OTT·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콘텐츠에 등장한 인물 중 왠지 모르게 자꾸 생각나고, 떠오르는 사람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소개하려 합니다. 리(re)스타? 이 스타! <편집자 주>
단언컨대 ‘더 글로리’ 최고의 발견이다. 다소 낯선 이름이었던 배우 김히어라는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파트1, 2로 단숨에 업계와 대중이 모두 주목하는 스타로 떠올랐다. 드라마 ‘괴물’(2021)로 대중매체 연기를 시작한 지 불과 2년여 만이다.
김히어라는 연기 경력을 뮤지컬로 시작했다. 2009년 뮤지컬 ‘살인마 잭’에서 앙상블로 데뷔한 게 처음이었다. 이듬해 공연된 ‘잭 더 리퍼’에서도 앙상블로 무대에 올랐다.
대사 한 마디 하기도 어려운 앙상블이 조연이나 주연급으로 올라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김히어라는 2010년 ‘굿모닝 학교’의 사회 선생님 역으로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2011년과 2012년에는 다시 ‘잭 더 리퍼’, ‘서편제’, ‘인당수 사랑가’ 등에서 앙상블로 활약했지만 그의 경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3년 ‘대구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유앤마’에서 사랑을 연기했고, 2016년 ‘리틀잭’과 ‘팬레터’에서는 줄리와 히카루로 분했다. 그의 앙상블 경력은 2014년 ‘풀하우스’에서 끝났다.
본격적으로 드라마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한 건 2021년 방송된 ‘괴물’부터다. 이후 그 해에만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배드 앤 크레이지’ 등 세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지난해에도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진검승부’ 등 세 편의 드라마로 시청자들과 만났다. ‘더 글로리’ 파트1까지 합하면 모두 네 작품이다.
특히 주목 받았던 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다. 북한에서 온 아이 엄마 계향심 역으로 김히어라는 신스틸러의 존재감을 발휘했다. 감옥에 들어가면 딸과 떨어지게 되는 계향림은 어떻게든 우영우(박은빈)가 속한 로펌의 도움을 받으려 했 승산이 없다고 계향림을 설득하려던 로펌 직원들은 대화를 마치면 도리어 향림에게 설득돼 나왔다.
딸을 지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진 계향림의 곧은 성정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깊게 공감하지 못 하는 변호사 우영우의 마음까지 흔들었고, 화면을 넘어 시청자들에게까지 전달됐다. 방송 이후 시청자 게시판, SNS 등에는 “계향림을 연기한 배우가 누구냐”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브라운관에서는 다소 낯선 얼굴이었던 김히어라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단 하나의 에피소드로 그간 뮤지컬계에서 쌓아온 탄탄한 연기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시청자들을 빨아들였다.
마침내 ‘더 글로리’에 이르러 김히어라는 폭발했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시간이 흘러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을 담은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김히어라는 마약에 중독된 미술가 이사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약에 취해 널부러져 있는 첫 장면부터 이사라의 등장은 파격 그 자체였다. 반쯤 풀린 눈, 더듬거리는 듯한 발음.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이사라만은 자신이 연기하리라 생각하지 못 했다고 했던 김히어라의 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캐릭터에 온전히 몰입한 연기였다.
오디션을 보기 30분 전 배우들에겐 각 배역 별 대본이 주어졌다. 김히어라는 이사라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다른 배역을 연습했는데 그에게 요구된 대사가 이사라의 것이었다. 김히어라는 “사라를 시켜서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고 유튜브 채널 나우무비에서 털어놨다. 연습을 제대로 하지 않은 대사로 오디션에 합격해 캐스팅에 이르렀다는 건 그만큼 평소 김히어라가 연기에 매진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히어라는 올해 tvN 새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2’로 다시 한 번 시청자들과 만난다. 김히어라가 맡은 역은 겔리. 원작 웹툰에서는 남성으로 설정된 캐릭터다. 악귀인 겔리 버허드는 ‘경이로운 소문2’에서 최강의 빌런으로 주인공들과 맞설 전망. 염혜란과 ‘더 글로리’에 이어 두 번째 호흡으로도 주목 받는다.
‘경이로운 소문1’에 지청신(이홍내)이 있었다면 ‘경이로운 소문2’에는 겔리가 있다. 지청신은 1급 악귀가 되지 못 했지만 겔리는 이미 1급 악귀. 시즌1보다 한층 업그레이드 된 갈등과 액션이 펼쳐질 것으로 예감할 수 있다. ‘더 글로리’로 자신의 이름 넉 자를 또렷이 각인시킨 김히어라가 ‘경이로운 소문2’에서는 또 어떤 파괴력을 보여줄까. 김히어라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