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페이스가 독보적이다. 그런데도 문동주(20·한화 이글스)는 "아직 완벽하지 않다"고 했다.
한화는 지난 19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과 연습 경기를 치러 4-1로 승리를 거뒀다. 이날 선발 투수로 등판했던 문동주는 1과 3분의 2이닝을 무피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팀 승리에 힘을 보탰다.
네덜란드는 야구가 대중화된 국가는 아니지만, 국제대회 야구 강국 중 하나로 통한다. 네덜란드령으로 남아있는 퀴라소 출신 야구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통산 1410안타 156홈런을 기록하고 올스타에도 4회 선발된 잰더 보가츠, 통산 391세이브의 켄리 젠슨 등 아직도 정상급 기량을 유지 중인 메이저리거들이 이번 대회에도 참가한다.
물론 한화가 네덜란드 빅리거 올스타와 만난 건 아니다. 보가츠, 젠슨 등은 스프링캠프와 시범 경기 일정을 소화하다 중도에야 대표팀에 합류한다. 대신 전 빅리거인 디디 그레고리우스, 일본 프로야구(NPB)의 전설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대표팀에 참가해 한화전에서도 타석에 들어섰다.
그레고리우스는 통산 134홈런을 기록한 강타자다. 과거 뉴욕 양키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던 베테랑이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이력 덕분에 기사 작위를 받으면서 실제 공식 호칭도 디디 경(sir. Didi)이다. 발렌틴은 단일 시즌 60홈런으로 NPB 신기록을 세웠고, 통산 홈런도 301홈런에 이르는 일본프로야구의 '역대급' 외국인 타자였다.
문동주는 그런 이들을 상대로 씩씩한 투구를 펼쳤다. 1과 3분의 2이닝 무피안타 2탈삼진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다. 1회와 2회 세 타자씩 총 여섯 타자를 상대하면서 33구를 던졌다.
안타는 맞지 않았지만, 베테랑 외국인 타자들은 역시 쉽지 않은 상대였다. 이날 1회 맞대결을 펼친 그레고리우스는 문동주에게 헛스윙 삼진을 당했지만 10구까지 승부를 끌고 갔고, 발렌틴은 볼넷을 골라내고 1루 베이스를 밟았다. 그래도 위기는 없었고, 문동주는 자신 있는 투구를 펼친 끝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냈다.
한화 이글스 문동주가 투구를 마치고 동료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문동주는 경기 후 구단 인터뷰에서 그레고리우스 상대 소감을 묻자 “공을 던지면서 계속 스트라이크를 던져서 붙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타 하나 맞는 건 지금 시점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상대가 누구든 자신을 믿고 던진 게 통한 셈이다.
지난 시즌 부상과 부진으로 주춤했던 문동주는 이날 경기에서 벌써 최고 시속 156㎞를 기록했다. 이미 고교 시절 기록한 구속이지만, 의미가 크다. 문동주는 지난해에도 3월 최고 시속 155㎞를 기록했고, 시즌 중 최고 시속 157㎞를 기록했다. 그러나 3월 내복사근 미세 파열로 페이스가 늦어졌고, 재활에 집중했으나 1군 콜업 후인 6월 13일 견갑하근 부분파열 및 혈종 진단을 받았다. 결국 다시 재활에 들어갔고 9월에야 올라올 수 있었다.
완벽하지 않았던 상태에서 정규시즌 끌어올린 구속이 시속 157㎞였던 문동주다. 지난해 3월과 비교해도 구속 페이스가 괜찮고, 시즌 중 최고 구속에도 근접했다. 그런데도 그는 “몸 상태가 잘 올라오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 완벽하진 않다. 그래도 잘 준비하고 있고 앞으로도 준비해야할 점들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페이스가 더 올라올 수 있다는 의미다. 지금대로면 지난해 안우진(키움 히어로즈)이 기록한 시속 159㎞ 이상까지도 기대해볼 수 있다.
물론 문동주는 구속 숫자에 신경쓰지 않겠다고 수 차례 밝혔다. 신인왕 자격이 남아있어 1년 후배인 김서현과 함께 유력 후보로 꼽히지만, 신인왕 역시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했다. 말 대신 숫자로, 투구로 문동주는 자신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무시무시한 페이스지만, 한화는 문동주를 무리시키지 않을 계획이다. 이동걸 피칭퍼포먼스 코치는 본지와 통화에서 문동주가 올 시즌 100이닝에서 110이닝 정도를 소화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지난해 투구 이닝이 적은 만큼 규정 이닝을 채우기보다 적절한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이닝이 적어도 현재의 구위라면 기대하기 충분하다. 안우진의 각성도 2021년 107과 3분의 2이닝을 투구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에이스' 후보 문동주의 성장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