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철 KT 감독은 지난 4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 9회 말, 다소 의아한 투수 교체를 보여줬다. KT가 6-2로 앞선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셋업맨 김민수를 마운드에서 내리고 배제성(26)을 투입한 것.
당시 김민수의 투구 수는 11개였다. 이틀 연속 등판했지만, 휴일(5일)을 앞둔 상황이었기에 한 타자를 더 맡아도 문제없을 것 같았다. 4점 차로 이기고 있는 팀이 아웃카운트를 1개 남겨두고 투수를 교체하면, 상대 팀의 불쾌감을 살 수도 있다. 마운드에 오른 배제성은 KIA 최형우를 좌익수 뜬공으로 처리하며 임무를 완수했다.
배제성이 하루라도 빨리 구원 등판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이강철 감독이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 배제성은 2019년 5월부터 올해 8월 중순까지 줄곧 선발 임무만 맡았던 투수다. 그러나 6월 말 갑자기 부진했고, '경쟁자' 엄상백이 좋은 페이스를 이어가는 상황이 겹치며 불펜 투수로 보직이 바뀌었다. 지난달 26일 SSG 랜더스전에서 1197일 만에 구원 투수로 나서 1과 3분의 1이닝을 소화했고, 이날 KIA전에서 두 번째로 불펜에서 출격했다.
배제성이 최형우의 타석에서 투입된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강철 감독이 왼손 장타자를 잡기 위해 배제성을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배제성은 우투수인데도 2021시즌 좌타자에게 강했다. 피안타율 0.218, 피장타율 0.299. 작년에는 포심 패스트볼(직구) 구위가 좋았고, 그 덕분에 몸쪽(좌타자 기준) 낮은 코스로 휘어지는 슬라이더도 효과적으로 통했다.
배제성은 6월 22일 NC 다이노스전에서 5이닝 동안 7실점 하며 부진했다. 이 경기 직구 평균 구속은 140.8㎞/h에 불과했다. 다음 등판이었던 삼성 라이온즈전은 141.7㎞/h. 2021시즌 평균 구속(144.4㎞/h)보다 크게 떨어졌다.
구원 등판한 4일 KIA전에서 배제성의 직구 평균 구속은 144.8㎞/h까지 올랐다. 짧은 이닝을 소화하는 만큼 힘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직속이 빠르다 보니,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 구사한 체인지업이 최형우의 빗맞은 타구를 유도했다.
KT는 올 시즌 주권·김민수·김재윤으로 뒷문을 막아왔다. 최근 젊은 투수 이채호와 박영현의 등판이 늘었지만, 여전히 박빙 상황에선 세 투수의 어깨가 무겁다. 배제성이 시속 140㎞대 후반 직구를 뿌릴 수 있다면, 상대 좌타자 라인을 효과적으로 봉쇄할 수 있을 것이다. 예년보다 좌타자를 상대로 고전하고 있는 주권의 부담도 줄여줄 수 있다.
이강철 감독은 2021시즌 SSG와의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선발 투수였던 고영표를 6회 말 수비에 구원 투입, 3이닝을 맡겼다. 포스트시즌에서도 고영표를 허리진에서 활용해 효과를 봤다.
올 시즌은 배제성이 고영표가 맡았던 역할을 해줄 전망이다. 이강철 감독도 "어차피 포스트시즌을 치르려면 선발 한 명이 불펜으로 이동해야 한다. (배제성의 구원 등판은) 지금부터 준비하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KT는 6일 기준으로 리그 4위다. 현재 순위라면 5위 KIA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배제성은 KIA 주축 좌타자들에게 매우 강했다. 최근 4시즌(2019~2022) 기준으로 나성범에겐 피안타율 0.160, 최형우는 0.250, 소크라테스 브리토는 0.111를 기록했다. 4일 KIA전처럼 중요한 순간, 원 포인트 릴리프로 나설 전망이다. '가을 극장'의 신스틸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