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애를 비롯, 흙수저를 향한 사회의 냉정한 시선과 동정 어린 시선, 사내 왕따, 정치 비판까지. ‘작은 아씨들’은 단순히 가난하지만 우애 있게 자란 세 자매의 이야기만을 담은 드라마는 아니었다.
지난 3일 첫 방송된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는 각자의 세상에서 발버둥 치는 세 자매 오인주(김고은 분), 오인경(남지현 분), 오인혜(박지후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도입부터 세 자매의 삶 속에는 사소한 변화가 일었고 특히 죽은 비밀 친구로부터 거액이 담긴 돈 가방을 받게 된 오인주의 반전 엔딩은 안방극장에 짜릿함을 안겼다. ‘히트 메이커’ 정서경 작가와 김희원 감독의 시너지도 빛났다. 빠른 전개, 예측을 넘어선 미스터리, 유려한 미장센과 배우들의 빈틈없는 열연은 또 하나의 ‘웰메이드’ 드라마를 탄생시켰다.
시청률 또한 시청자의 폭발적인 반응을 반영했다. 4일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1회 시청률은 전국 유료방송 가구 기준 평균 6.4%를 기록하며 케이블과 종편을 포함한 동시간대 1위에 오르는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이날 첫 회는 막내 오인혜의 생일날 풍경으로 막을 열었다. 가난한 형편에도 첫째 오인주와 둘째 오인경은 오직 동생을 위해 유럽행 수학 여행비 250만원을 선물했다. 행복도 잠시 그날 새벽 철없는 엄마 안희연(박지영 분)이 돈이 든 봉투를 들고 몰래 떠났다. 그럼에도 세 자매는 각자의 삶 속에서 고군분투했다. 수학여행비를 다시 마련하고자 다급해진 오인주에게 손을 내민 이는 회사 비밀 친구 진화영(추자현 분)이었다. 진화영과 오인주는 각자 13층과 14층의 사내 왕따. 진화영은 “눈치가 없어서 왕따가 된 것 같아? 너 2년제 회계학과에 흙수저이자 이혼녀. 나 고졸에 무수저, 결혼 시장에 나가 본 적도 없는 도태녀”,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한테만 공감하니까”라며 흙수저를 향한 사회의 시선과 사내 왕따, 인간의 악랄한 본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촌철살인 대사들을 남겼다.
그의 도움으로 다시 돈을 만든 오인주는 들뜬 마음으로 오인혜를 찾았지만 동생은 선뜻 기뻐하지 않았다. 자신을 위한 언니들의 고생과 노력이 미안했고 또 버거웠기 때문. 이어 오인혜는 같은 반 부유한 친구 박효린(전채은 분)의 집에서 그림을 그려주며 그의 엄마 원상아(엄지원 분)에게 돈을 받고 있었다. 이 장면을 눈앞에서 본 오인주는 원상아가 내민 돈 봉투를 단호히 거절했고 집으로 가는 택시 속 오인혜에게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 뭐 주는 사람들 있어. 우리가 없어 보여서. 먹을 것도 주고 입던 옷도 주고. 그거 넙죽 받으면 나중에 꼭 ‘쟤네 거지라고. 불쌍하다’고 그런 말 돌아와”라며 냉정하게 말했다. 가난했기 때문에 더 치열하게 살고 모든 것을 동정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었던 오인주와 오히려 돈을 받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은 것 같았다며 기뻤다고 말한 오인혜.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닌 두 자매의 대비가 선명히 그려진 순간이었다.
사회부 기자인 오인경은 보도하던 중에도 사건에 감정 이입해 눈물을 흘리는 인물. 오인경은 “넌 분하지도 않냐. 불공평한 대접 받는 거? 이제 전문성을 찾아야지”, “가난하게 컸어? 하도 잘 참아서”라며 비난을 일삼는 선배에게도 “현장성이 내 전문성이다”고 뚜렷하게 말하는 강단 있는 모습도 보였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그는 알코올 중독자로 테킬라를 가글 병에 담아 들고 다니며 마시기도. 그가 알코올 중독자가 된 서사에도 궁금증이 쏠리는 가운데 오인경은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 박재상(엄기준 분)을 주시했다. 과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보배저축은행 사건’의 은행 측 변호사였던 박재상. 오인경은 이 사건을 줄곧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 길로 박재상 재단 설립 기념식에 찾아간 오인경은 기자회견 도중 보배저축은행 사건을 거론, 당당하게 질문하며 박재상을 자극했다. 이는 오히려 패착이 됐다. 회견이 끝난 뒤 그와 마주한 오인경은 피해자들의 감정에 녹아들어 눈물을 보였다. 박재상은 기자답지 못한 태도를 지적하는 한편, 그가 음주 상태라는 사실까지 폭로했다. 현장에 함께 있던 같은 보도국 선배는 이를 영상으로 찍었고 이러한 사실이 사내에 밝혀지며 오인경은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았다.
폭풍은 전개는 계속됐다. 진화영이 유럽에 잠시 나간 사이 런던에서 온 컨설턴트 최도일(위하준 분)이 오인주를 찾아왔다. 진화영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그의 말에 오인주는 진화영의 집을 찼아갔지만 그곳에서 진화영의 시신을 목격했고 절망과 혼란에 휩싸였다. 이후 오인주에게 예상치 못한 인물이 찾아왔다. 진화영과 불륜 의혹이 있던 이사 신현민(오정세 분), 그리고 최도일이었다. 두 사람은 진화영이 15년간 회사의 불법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었고 진화영이 뒤통수를 치고 법인 계좌에서 700억을 빼돌렸다고 밝혔다.
최도일은 사라진 700억을 찾기 위해 진화영을 잘 아는 오인주가 필요하다며 도움을 청했다. 오인주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직서를 던지고 나오는 길에 그는 진화영이 다니던 요가원 회원권이 양도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곳의 라커룸에는 커다란 배낭이 남겨져 있었고 가방 속에 5만 원권 다발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액수의 돈, 죽은 친구가 남긴 위험한 선물 앞에서 그는 기어코 눈물을 터뜨렸다. ‘작은 아씨들’은 탄탄한 서사에 날카로운 메시지를 숨겨두며 거대한 사건에 조금씩 휩쓸려가는 세 자매의 변화를 섬세하게 담아냈다. 여기에 상황에 맞는 배경 음악 또한 몰입도를 극대화, 어딘가 모르게 어두운 듯한 화면의 색감과 미장센은 독보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완성한 배우들의 열연 또한 ‘작은 아씨들’을 완성했다. 김고은은 철없는 맏언니와 삶의 무게감을 인 어른의 얼굴을 오가는 완급 조절로 극의 분위기를 조율했다. 남지현 역시 내면에 자신만의 소용돌이를 감춘 오인경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속 깊은 막내 오인혜의 예민한 심리를 그린 박지후의 활약도 남달랐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최도일의 면모를 입체적으로 완성한 위하준 역시 그 진가를 발휘했다. 여기에 이제 막 물밑에서의 움직임을 시작하며 긴장감을 더한 엄지원, 엄기준, 김미숙과 강훈, 전채은 그리고 거대한 사건의 서막을 연 추자현, 오정세, 박지영은 더욱 확장될 이야기를 기대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