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에 성공한 거포 박병호(36·KT 위즈)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무대까지 밟을 수 있을까. 4년 만에 국가대표 승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내년 3월 열리는 WBC 야구대표팀의 숙제 중 하나는 1루다. KBO리그에 기량을 갖춘 전문 1루수가 부족해 최종 엔트리 확정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더욱이 올 시즌 뒤에는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롯데 자이언츠)마저 은퇴한다. "대표팀의 구심점을 잡아줄 선수가 필요하다"는 우려 섞인 이야기가 나오는 가운데 박병호의 반등이 눈에 띈다.
박병호는 현재 KBO리그에서 위협적인 타자다. 3일 기준 90경기 타율 0.267(329타수 88안타) 32홈런 84타점을 기록했다. 홈런과 타점, 장타율(0.596) 부문 모두 리그 1위. 정확도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리그에서 네 번째로 많은 결승타 9개(팀 내 1위)를 때려냈다. 지난달 27일에는 역전 끝내기 홈런으로 3년 만에 '시즌 30홈런'까지 달성했다.
박병호에게 지난 2년은 악몽에 가까웠다. 부진에 부상까지 겹쳐 개인 기록이 크게 악화했다. 2020년 타율 0.223, 2021년 타율도 0.227에 머물렀다. 매년 홈런 20개 이상을 터트렸지만 '공갈포'라는 오명을 들었다. 지난해에는 도쿄 올림픽 출전도 불발됐다. 적지 않은 나이를 고려하면 '국가대표 박병호'를 다시 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지난겨울 키움 히어로즈를 떠나 KT로 FA(자유계약선수) 이적한 박병호는 절치부심 시즌을 준비했다. 그리고 과거의 명성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오재일(삼성 라이온즈) 정도를 제외하면 공·수 모두 가능한 1루수를 찾기 어렵다. 현재 성적이라면 박병호의 WBC 출전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예상했다.
박병호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첫 태극마크를 달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듬해 열린 WBSC 프리미어12에서도 우승에 기여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금메달)과 2018년 프리미어12(준우승)까지 총 네 번의 국가대표 이력이 있는데 유독 올림픽과 WBC는 인연이 없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2017년 WBC에선 김태균(전 한화 이글스)과 이대호에 밀려 최종 엔트리에서 고배를 마셨다. 박병호는 지난 2일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그 당시에는 WBC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 올림픽과 WBC를 한 번도 못 해봤는데…, 다른 좋은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다"고 돌아봤다.
박병호의 WBC 출전 기회는 2017년이 마지막인 것처럼 보였다. 2021년 열릴 예정이던 5회 대회가 코로나19 탓에 2023년으로 연기됐고, 그사이 개인 성적 하락에 대표팀 세대교체까지 맞물리면서 태극마크와 멀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시즌 극적인 반등을 이뤄내면서 WBC 대표팀 승선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WBC 사령탑인 이강철 KT 감독은 "(KBO리그에선) 대형 타자 중 왼손 타자(우투좌타)가 너무 많다. 거포를 떠나 우타 1루수가 없다"며 "(엔트리 확정은) 기술위원회에서 판단할 내용이지만 (박병호는 공격뿐 아니라) 수비도 되는 오른손 타자다. 일본의 왼손 투수들은 (상대하기) 쉬운 선수들이 아니다"라며 그의 발탁 가능성을 열어놨다.
야구대표팀은 도쿄 올림픽에서 4번 타자 때문에 애를 먹었다. 강백호(KT) 양의지(NC 다이노스) 김현수(LG 트윈스)가 하나같이 고전했고, 이는 곧 '노메달 수모'로 이어졌다. 경험에 파괴력까지 갖춘 박병호는 이대호가 은퇴한 야구대표팀의 4번 타자로 손색없다. 그에게 WBC는 국가대표로 유종의 미를 거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WBC는 올림픽, 아시안게임과 달리 MLB 사무국이 주관하는 국제 대회다. 현역 빅리거들이 총출동해 최정상급 선수들이 자웅을 겨룬다. MLB에서 뛰는 최지만(탬파베이 레이스)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도 대회에 나설 수 있다. 박병호는 "WBC는 해외(MLB)에서 뛰는 선수가 (최종 엔트리에) 들어올 수 있다. (1루수로 뛸 수 있는) 최지만 선수도 있고 해서 국가대표가 다시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WBC를 생각하거나 그렇진 않다"고 몸을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