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우리나이로 서른여덟 살. 김재호(두산 베어스)는 선수 생활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목표는 부끄럽지 않은 뒷모습을 남기는 것이다.
김재호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유격수다. 수비 기본기와 상황 판단력은 으뜸으로 꼽힌다. 골든글러브를 두 번(2015·2016년) 수상했고,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국가대표팀에서는 주전 유격수를 맡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그는 부진하다. 왼쪽 어깨 부상 탓에 수비력와 공격력 모두 떨어졌다. 2021시즌에는 89경기밖에 나서지 못했다. 올 시즌 초반에도 2년 차 안재석에게 주전 유격수를 내줬다.
김재호는 투혼으로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어깨 통증이 조금 나아진 5월부터 선발 출전이 늘어났다. 주전 3루수 허경민이 부상으로 이탈했을 때는 그 자리를 메우기도 했다. 26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4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하며 두산의 6-1 승리를 이끌었다. 김재호는 "솔직히 100% 힘으로 뛸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지만, 코칭 스태프의 배려 속에 경기에 나서고 있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며 웃었다.
두산은 26일 기준으로 37승 2무 48패를 기록, 리그 7위에 처져 있다. 5위 KIA 타이거즈와 승차는 무려 7.5경기다. 두산은 최근 7시즌(2015~2021) 연속 한국시리즈(KS)에 진출한 강팀이다. 그러나 매년 주축 선수들이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은 뒤 이적한 탓에 전력이 크게 떨어졌다.
야수진 최고참인 김재호는 후배들을 독려하고 있다. 그는 "현재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 팀은 갑자기 상승세를 탈 수 있다. 선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면서 "내년, 후년에도 야구를 해야 한다. 후배들이 멀리 바라봤으면 좋겠다. 어떤 방향으로 야구를 할지 생각하고, 더 욕심을 갖고 그라운드에 서길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재호도 예년보다 약해진 팀 전력을 인정한다. '왕조'가 쇠락하는 것도 필연이라고 본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남은 선수들의 마음가짐과 태도다. 김재호는 "채워야 하는 구멍은 커졌지만, 분명히 기회가 늘어난 선수가 있다. 지금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강팀으로 남거나 또는 암흑기를 겪게 될 것"이라며 "허경민, 정수빈, 양석환, 강승호 등 현재 중간 서열 선수들이 개인 성적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으로 후배들을 이끌어주길 바란다. 그런 선수가 많아야 우승할 확률이 높아진다. 팀이 잘 돼야 개인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재호는 2021시즌을 앞두고 두산과 3년 재계약했다. 남은 선수 생활 가장 큰 목표는 두산이 강팀으로 남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그는 "올 시즌 성적이 좋지 않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부끄럽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라면서 "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언제 은퇴하게 될지 몰라도, 몸 관리를 잘해서 최대한 많은 경기에 나가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 좋은 선배, 멋진 형이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떠날 수 있길 바란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