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미칠 수 있을까. 배우 박병은은 사랑에 미친 연기에도 진심이었다. 박병은은 종영 드라마 ‘이브’에서 재계 1위 기업의 최고 경영자 강윤겸을 연기했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단 한 번의 스캔들 없이 가정과 일에만 충실해 왔지만, ‘팜므파탈’ 이라엘(서예지 분)을 만난 후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어 사랑 앞에서는 여려지고 만다. 지난 21일 막을 내린 ‘이브’는 13년의 설계, 대한민국 0.1%를 무너뜨릴 가장 강렬하고 치명적인 고품격 격정멜로 복수극을 표방했다. 박병은에게 강윤겸에게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물었다. -‘이브’의 종영 소감은. “대본을 받고 10개월, 촬영은 7~8개월 정도 진행했다. 이렇게 오래 찍은 작품은 처음이었다. 캐릭터나 작품 자체도 무거운 면들이 있어서 집중을 많이 했다. 캐릭터 표현에 있어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잘 마무리되어서 시원섭섭하다.”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파격적인 장면들이 많았다. 하지만 대본을 받자마자 강윤겸이라는 외로운 한 남자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모든 걸 다 포기하는, 그런 결말을 이룰 수밖에 없던 상황들이 매력적이었고 마음에 들었다.”
-결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든다. 결말은 촬영 전부터 알고 있었다. 결말에 충실하게, 캐릭터에 맞게 연기하려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다.” -강윤겸의 선택에 이해가 갔나. “한 캐릭터에 집중해서 살다 보면 몰입이 되는 것 같다. 특히 강윤겸과 한소라가 차를 몰고 강에 뛰어드는 장면을 찍을 때 그날 따라 기분이 묘하더라. 이라엘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 이것 뿐일까, 행복할 수 없을까 생각해봤지만 안타깝게도 강윤겸은 그런 선택을 한 것 같다.”
-캐릭터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나. “우선 외적으로는 베드신, 노출신이 있어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진행했는데 토할 것 같았다. 아침, 저녁으로 두 번 트레이닝 교육을 받았는데 살면서 몸을 만들어 본 적이 없어 너무 힘들었다. 대신 주어진 시간 내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체지방을 7kg이나 뺐다. 내적으로는 초반 캐릭터를 잡는 것이 많이 힘들었다. 너무 감정이 과잉돼 초반에 그걸 터트리면 안 될 거 같았다. 내가 생각한 감정을 응축하고 자제해서 연기하려고 했다. 그래야 강윤겸이 중후반으로 갈 때 캐릭터가 잘 보일 것 같았다. 전체적인 플랜을 그렇게 짰다.”
-‘이브’를 통해 입덕한 팬들이 많은데. “강윤겸이 한 여자를 위해 모든 걸 내려놓고 사랑하는 모습을 좋아해 주는 것 같다. 캐릭터 자체가 멋있어서. 매 순간 이라엘이라는 인물에 대해 사랑을 느꼈고, 노력했다. 그 부분들을 입덕이라는 부분으로 칭찬해준 것 같아서 감사하다.” -상대역인 서예지의 논란이 신경 쓰이지 않았나. “당연히 신경쓰였다. 하지만 첫 대본 리딩을 했을 때 서예지가 이라엘을 너무 잘 표현해서 마음이 편해졌다. 현장에 가면 배우와 배우로 캐릭터를 마주하며 만나는 거라 개의치 않고 몰두했다.”
-서예지와 호흡은 어땠나. “정말 잘 맞았다. 서예지의 대본을 봤는데 정말 너덜너덜하더라. 그 모습들이 나에게 믿음을 주고 이런 배우라면 내 감정을 받아줄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이라엘 캐릭터를 연기하는 서예지는 감정적으로 많이 어려웠을 거다. 힘들었을텐데 촬영하는 7개월 동안 그걸 놓치지 않고 감정적으로 집중하는 게 놀라웠다. 촬영 막바지에는 고생했다면서 서예지와 서로 다독였다.”
-유선과 호흡을 얘기하자면.
“유선은 TV나 영화에서 보다가 처음 봤는데 너무 좋았다. 워낙 연기를 열심히 하는 배우고 집에 배우 방이 있다고 들었다. 가끔 전화하면 그 방에서 5시간 동안 대본만 보고 있다고 하더라. 현장에서는 배려도 해주고 엄청난 집중력을 가진 배우다.” -배우의 의견이 반영된 장면이 있나. “엔딩 장면을 제천에서 촬영했다. 강윤겸과 한소라가 차로 뛰어드는 장면이다. 마지막에 핸들을 잡았다가 반지를 한번 만지고 손이 툭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이 작품에서 마지막으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감독님과 상의해 그 장면이 만들어졌다.”
-연기에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극 중에서도 초반에는 이라엘을 의심하고 밀어내려고 하지 않나. 실제로 현장에서도 말수를 줄이려고 했다. 중반으로 가면서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는 현장에서 농담도 하고 웃기도 하는 등 조절했다.”
-강윤겸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해가 됐다. 강윤겸은 혼외자였고 많은 상처, 핍박, 학대를 받으면서 자라온 사람이라 단 한 번도 사랑을 해보지 않았다. 불리한 위치에서 회장으로 올라가기 위해 모든 걸 방어하며 철저히 자기 관리를 했던 강윤겸이 이라엘을 만나고 와르르 무너졌다. 마음을 알아주고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는 이라엘을 보면서 이 여자의 상처가 나의 상처와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어 모든 걸 다 해주고 싶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걸 쏟아낼 수 있는 캐릭터 맡을 수 있어 감사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다면. “16회 오프닝에서 침대에서 대화하는 장면. 그 장면을 촬영하면서 서예지와 호흡이 너무 좋았다. 리허설부터 서로 눈물이 나더라. 오롯이 그 캐릭터가 되어서 감정이 나왔을 때 시원하고 짜릿함이 느껴지는 게 있다. 이라엘과 강윤겸이 진정으로 마음이 통하는 신이라고 생각한다.”
-스타일링에 신경 쓴 부분이 있나. “대기업 회장, 자기의 틀을 완벽히 갖춘 남자라 슈트를 대부분 제작했다. 내 몸에 맞게, 캐릭터에 맞게 준비했다.”
-강윤겸과 실제 모습이 비슷한 점이 있다면.
“굳이 찾자면 없다. 열심히 다가가려고 여러 가지를 신경 쓰고 노력했다. 같은 성향을 가진 캐릭터를 매번 연기할 수 없듯이 나와 다른 캐릭터를 만나서 연구하고 감정을 찾는 과정들이 배우로서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쉬운 점이 있었나. “마지막 장면에서 감정이 조금 더 폭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때 당시는 최선을 다했다. ‘이건 내가 끝내야 해’라는 대사와 함께 오롯이 안고 가는 장면이라 오열보다 감정을 억누르고 차분하게 연기하려고 했다.”
-다른 장르에 도전할 수 있다면. “코믹 멜로에 도전하고 싶다. 처음으로 사랑하는 감정을 진하게 느껴서 이런 감정들이 너무 좋았다. 누군가를 안아주고, 보고 싶은 이런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들을 오래 느껴보니 밝은 사랑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