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연예인에게 빌딩 중개를 했다면서 각종 TV쇼에 출연했던 '스타 공인중개사' A 씨가 자격을 갖추지 않은 중개보조원 신분이라는 사실이 최근 드러나면서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공인중개사가 된 이들은 허탈해하고 있다. 수년에 걸쳐 자격증을 따고 힘들게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누군가는 중개보조원이면서도 연예인과 인맥을 과시해 큰돈을 벌어왔기 때문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와 업계는 "정당한 자격을 갖춘 공인중개사를 보호하는 장치 마련과 함께 판치는 중개보조원을 제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스타 공인중개사'의 배신
17일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이하 협회)에 따르면 강남구청은 최근 각종 방송에서 자신을 '공인중개사'라고 소개한 A 씨를 공인중개사 사칭 혐의로 민생사법경찰단에 수사 의뢰했다.
A 씨는 그동안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유명 연예인인 서장훈과 한효주·이종석 등의 부동산 투자를 맡아 왔다고 소개하면서 '스타 공인중개사'로 올라섰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공인중개사 10기이며, 고객 자산을 불려준 액수만 6조원에 달한다고 자랑했다. 대중은 자주 언론에 얼굴을 내비치고, 탁월한 중개 실력을 갖춘 A 씨에게 부동산 컨설팅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잘 나가던 A 씨의 실체는 한 시민이 "A 씨가 진짜 공인중개사인지 중개보조원인지 확인해 달라"며 국토교통부와 협회에 민원을 제기하며 드러나기 시작했다. 국토부와 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A 씨는 공인중개사가 아닌 중개보조원이었다. 현행법상 공인중개사가 아닌 자가 '공인중개사' 또는 이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면 1년 이하 징역형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업계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빌딩 거래 전문 공인중개사 B 씨는 "솔직히 A 씨가 공인중개사가 아니고 보조원이라는 사실은 이 업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던 터라, 다들 이제야 알려지게 된 것뿐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그는 "A 씨가 방송에 나와서 소위 '건물주'로 불리는 스타에게 건물을 중개했다고 밝혔다. 수수료도 받았고, 몇 기(공인중개사)인지도 말했다. 사칭했으니 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꼬집었다.
늘어나는 중개보조원, 왜
협회에 따르면 중개보조원은 2020년 3분기 9692명에서 그해 4분기 1만99명, 2021년 1분기 1만637명, 2021년 2분기 1만956명으로 꾸준히 증가세다.
공인중개사법상 중개보조원은 공인중개사 업무를 보조해주는 역할만 할 수 있다. 법률상 직접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계약 내용을 설명하지 않기만 하면, 자격증이 없어도 4시간 직무교육만 이수하면 된다.
B 씨는 "중개보조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이 업계의 진입 장벽이 낮다는 뜻이기도 하다"며 "자격 요건을 중요하게 여기기보다는 소위 말하는 영업력과 인맥이 부동산 중개인에게 더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중개보조원도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탁월한 영업력을 자랑하는 일부 중개보조원들이 공인중개사를 사칭하면서 상당한 수익을 올린다는 점이다. 현행법은 주택 외 건물 매매 수수료율을 법정 상한 0.9% 이내 협의 사항으로 명시하고 있다. 가령 50억원 짜리 건물을 중개한다면 0.9%인 4500만 원 정도의 수수료가 발생한다. 당연히 건물 매매 가격이 높아질수록 수수료도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특히 A 씨처럼 대중에 널리 알려진 이들 중에는 법정 공인중개수수료 외에도 컨설팅 비용을 따로 받는 경우가 허다해서 벌어들이는 수익도 높아진다.
업계 관계자는 "소위 강남의 수백, 수천억 원짜리 매매를 중개하는 분 중에도 보조원들이 적지 않다"며 "이런 분 중에는 컨설팅 비용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수천억 원짜리 건물 중개를 하고 큰돈을 벌고 나면 3~5년 쉬다 나오는 분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B 씨는 "A 씨가 방송에 나가서 이름을 알리고 모객하는 순서를 밟았다"며 "A 씨가 공인중개사를 사칭한 것은 잘못했지만, 일부 언론이 최소한의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고 너무 띄워준 부분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개보조원 믿었다 '큰일'
유명세가 있다고 '가짜 공인중개사'만 믿고 매매를 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
협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공인중개사법 위반으로 기소된 43건 중 67.4%인 29건이 중개보조원 사고였다. 중개사고 3건 중 2건이 중개보조원에 의한 사고인 셈이다. 중개보조원 사고 비율은 2017년 61.2%에서 2018년 57.1%로 소폭 줄었다가 2019년 62.7%로 다시 늘었다.
중개보조원 중에는 고의 사고를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협회 조사 결과 2016~2021년 5년간 중개보조원 고의 사고로 인한 공제금 청구 금액은 약 193억5300만원이다. 전체 공제사고 청구 금액(약 1182억원)의 20%가 중개보조원이 고의로 사고를 낸 데 따른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협회가 제공하는 책임보장을 통해 중개보조원을 고용한 중개업자가 개인일 경우 연 2억원, 법인은 연 4억원까지 보상받을 수 있다. 하지만 거래금액이 이 한도를 초과하면 의뢰인들이 돈을 온전히 돌려받을 수 없다. 결국 개인이 조심해야 하는 구조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15일 "중개보조원으로 인한 중개 사고가 전국적으로 만연한 상황이지만, 이들은 사고를 내도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며 "협회는 정부와 국회에 중개보조원의 문제점을 알리고 인원수 제한이나 교육 제도 강화 등 다양한 방안 마련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