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관심이든 나쁜 관심이든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데뷔 26년 차 배우 김윤진의 연기 철학과 가치관은 뚜렷했다. 김윤진은 지난 24일 공개된 넷플릭스 한국 시리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1’(‘종이의 집’)에서 남측 협상 전문가 선우진으로 활약했다. 극 중 전 남편과는 양육권을 두고 소송을 벌이고 있는 동시에 학생인 딸과 알츠하이머 어머니를 돌보며, 경찰 업무에서도 과중한 업무에 스트레스를 받는 인물이다.
‘종이의 집’은 통일을 앞둔 한반도를 배경으로 천재적 전략가와 각기 다른 개성 및 능력을 지닌 강도들이 기상천외한 변수에 맞서며 벌이는 사상 초유의 인질 강도극을 다룬다. 스페인에서 제작된 ‘종이의 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공개 이후 넷플릭스 TV쇼 부문글로벌 3위에 올랐는데. “넷플릭스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개 후 즉시 3위를 기록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너무 감사하다. 이 열기가 계속 이어져서 ‘종이의 집’을 더 많은 분이 봐주셨으면 한다.”
-어떻게 출연을 결정했나.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호불호가 100% 있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했다. 다른 배우들도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유지태 배우와 촬영하며 ‘잘해봤자 본전이다’는 얘기도 나눴다. (평가가 갈리는 현상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 생각했다. 그런데도 ‘종이의 집’이라는 검을 잡은 이유는 원작의 힘을 믿었고, 류용재 작가가 쓴 대본이 마음에 들었다. 또 김홍선 감독의 ‘손 더 게스트’와 ‘보이스’를 너무 재미있게 봐서 꼭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 마지막 이유로는 넷플릭스 플랫폼에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원작은 어떻게 봤나. “스페인 ‘종이의 집’이 공개했을 당시 LA에 있었다. 주변 친구들이 꼭 ‘종이의 집’을 보라며 추천을 하길래 한 두편 정도를 보고자 시즌1을 봤다. 3일 안에 시즌 1, 2를 다 봤던 기억이 있다. 팬으로서 원작의 매력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연기하며 중점을 둔 부분이 있나. “선우진의 침착하고 섬세한 면모를 살리고 싶었다. 선우진은 TF팀이라는 남성 세계에서 여성으로서 작전을 지휘하는 인물이다. 여성이 남성세계에서 일하는 연기를 하면 ‘강하게 보이고 싶다’는 뻔한 느낌의 연기를 하게 된다. 그런 느낌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선우진은 TF본부 안에서는 교수처럼 설명적인 대사가 많다. 템포 있게 설명적 대사를 소화하려 했다.”
-완성된 작품은 어떻게 봤나.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다. 조폐국 안에 있는 강도들과 헤드쿼터 안의 교수 등 내가 촬영하지 않은 부분이 나오는 장면들이 새로웠고 몰입이 됐다. 빠른 속도를 좋아하는 20대 관객에게 재미있게 다가오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출연한 부분을 볼 때는 ‘이런 부분은 넣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싶은 생각이 계속 들어 아쉬운 감정만 들었다. 모든 스케줄이 끝나고 다시 볼 때 좀 편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판 ‘종이의 집’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빠른 전개와 한국적인 요소가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파트2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시즌1에서 강도들과 교수에 놀아나는 선우진의 답답한 모습이 조금 해소가 된다. 그것도 하나의 매력 포인트다. 파트2는 모든 캐릭터의 감정이 더 깊어지고 상황도 다채롭다.” -유지태와의 호흡은 어땠나. “선우진은 싱글맘으로 치열한 양육권 다툼을 하고 있다. 게다가 전남편은 유력한 대선후보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 일상적인 상황도 복잡다단하다. 긴박하게 일을 처리하고 인질들을 구하기 위해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는 선우진에게 박선호(교수)라는 남자는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통로다. 2개월 만난 남자지만 유일하게 선우진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든 감정을 잘 풀어나가고 싶었다. 유지태는 워낙 좋은 파트너였다. 첫날부터 교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역할에 몰입해서 촬영장에 나타났다. 촬영 기간 동안 정말 나를 여자친구처럼 대했다. 현장에 도착하면 따뜻한 커피까지 챙겨줬다. 작품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공유한 배우다.”
-함께 출연한 배우들을 칭찬하자면. “유지태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배우다. 동시대 가장 핫한 스타였다. 이 작품에서 함께 만난 것이 큰 축복이었다. 후배지만 많이 의지했다. 다른 후배 배우들도 앞으로 K콘텐츠를 빛낼 인물이다. 이현우, 전종서, 이주빈, 김지훈, 장윤주, 이규호 모든 배우가 다른 작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많이 된다. 김성오도 다양한 캐릭터를 잘 소화하는 좋은 후배다. 김성오는 TF팀 촬영 분위기를 책임졌다. 촬영하며 ‘이렇게 좋은 배우들과 함께할 기회가 다시 올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미국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데, 양국 촬영 시스템에 차이가 있나. “한국과 미국의 시스템은 명확히 차이가 있다. 하지만 ‘종이의 집’을 찍을 때는 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종이의 집’ 촬영 현장은 하루 12시간 촬영 규칙이 정확히 지켜졌다. 미국과 한국 모두 여러 사람이 한 작품을 위해 쏟는 열정은 동일하다.” -김홍선 감독과의 작업 어땠나. “김홍선 감독은 현장에서 막힘없이 연출한다. 놀랄 정도로 빠르게 촬영한다. 초반에는 그 속도를 따라가느라 헤맸다. 콘티도 없는 상황에서 모든 장면 전개가 순식간에 이뤄지는 게 신기했다. 김홍선 감독은 나에게 강한 선우진을 주문했다. 개인적으로 여자 배우가 남성적인 대사를 하면서 남자같이 연기하면 반감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선우진의 톤을 잡기 위해 김홍선 감독과 머리를 맞대며 고민을 나눴다. 결론적으로 무게감 있는 선우진 캐릭터를 감독과 함께 만들었다.”
-K콘텐츠의 흥행을 피부로 느끼고 있나. “K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각광 받는 부분에 대해 ‘브라보’라고 말하고 싶다. 2004년 ‘로스트’에 캐스팅됐을 때 관계자가 ‘주연급 배우에 아시아인 2명이 캐스팅된 게 최초’라고 했었다. ‘내 생애 이런 기회가 다시 올까’ 생각할 정도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OTT 플랫폼이 없었다. 현재는 한국 감독과, 배우, 한국말로 찍은 작품이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너무 놀라운 일이다. K콘텐츠가 흥행하는 시기에 ‘종이의 집’으로 한국 배우들과 한국말로 연기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 꿈 같았고 놓치고 싶지 않았다.”
-호불호가 갈리는 반응에 대해선 생각하나. “좋은 관심이든 나쁜 관심이든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애정이든, 애증이든 배우로서 모든 관심과 반응이 다 좋다. 파트2에서도 이런 관심이 지속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서 말했듯 이런 반응은 분명히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시즌1, 2를 12부작으로 압축해 보여주다 보니 캐릭터마다 차곡차곡 쌓이는 감정을 섬세하게 보여주지 못했다. 그 부분이 아쉽다. 작품 촬영 당시 동남아에선 많은 사람이 원작을 안 본 상태라고 들었다. 그들이 익숙한 동양인이 나오는 한국 리메이크 작품을 본다면 재미있게 볼 것 같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