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21-2022 프로농구 서울SK와 안양KGC인삼공사의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서울SK가 승리,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시상식 후 진행된 골대 그물커팅 세레머니에서 전희철 감독이 단 위에서 그물을 잘라 목에 걸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잠실=김민규 기자 kim.mingyu@joongang.co.kr /2022.05.10/ 4054일.
전희철(49) 서울 SK 감독이 1군 수석코치를 거쳐 사령탑으로서 2021~22시즌 프로농구 통합우승(정규리그 1위+플레이오프 우승)을 일구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전 감독이 이끄는 정규리그 1위 SK는 챔피언결정전(7전 4선승제)에서 안양 KGC를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꺾고 세 번째 플레이오프 우승이자 창단 첫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시즌 SK는 정규리그 8위에 그쳤다. 이번 시즌 개막을 앞두고 SK는 변화를 선택했다. 10년 동안 팀을 이끌었던 문경은 전 감독을 기술고문으로 물러나게 하고, 수석코치였던 전희철 코치를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계약 기간은 2024년 5월까지. 전희철 코치는 문경은 전 감독을 10년 동안 보좌하며 SK를 가장 잘 아는 지도자였다. SK 구단은 팀을 다시 정상권에 올려놓을 적임자로 '2인자'였던 전희철을 선택했다.
문경은 전 감독이 서울 SK를 이끌던 시절 수석코치였던 전희철(왼쪽) 감독. [사진 KBL] 농구계는 전희철 감독을 ‘준비된 초보감독’이라고 표현했다. 1990년대 농구대잔치 스타였던 전 감독은 2008년 SK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이례적으로 구단 프런트 업무를 봤다. 전력분석원과 구단의 살림살이를 챙기는 운영팀장으로 일했다. 수석코치가 된 2011년부터는 문 전 감독 옆에서 2012~13시즌 정규리그 우승, 2017~18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 등 영광의 시간을 함께했다. 화려한 스타의 그림자 행보였다.
SK는 암흑기도 겪었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8위를 비롯해 2011~12시즌, 2015~16시즌, 2018~19시즌 세 차례 9위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2002~03시즌부터 2011~12시즌까지 SK가 부진했던 시기를 일컫는 ‘잃어버린 10년’이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있었다. 든든한 자금력을 갖춘 모기업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모래알 군단’이라는 오명도 있었다.
10일 오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21-2022 프로농구 서울SK와 안양KGC인삼공사의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서울SK가 승리,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시상식 후 진행된 골대 그물커팅 세레머니에서 전희철 감독이 단 위에서 그물을 잘라 목에 걸고 있다. 잠실=김민규 기자 kim.mingyu@joongang.co.kr /2022.05.10/ 전희철 감독이 사령탑으로 부임하기 직전에도 SK에는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외국인 선수 자밀 워니는 코로나19로 인해 어머니 등을 잃으면서 우울증에 빠졌다. 최준용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이한 행동으로 악동 이미지가 있었다. 시즌 개막 전 미디어데이에서 전희철 감독은 “SK에는 세 가지 물음표가 있다. 워니, 최준용, 그리고 나”라고 말했다.
개성이 강한 선수들이 모인 SK를 ‘하나의 팀’으로 묶은 건 전희철 감독의 리더십이었다. 그는 선수들과 격의를 두지 않았다. 선수단 사정을 속속히 꿰고 있는 전 감독은 선수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팀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통합우승 후 전 감독은 “선수들이 우리(코칭스태프)와 다른 세대지 않나. 선수들과 맞추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라며 되돌아봤다.
기자회견 도중 전희철 감독은 선수들에게 샴페인 세례를 맞았다. 최준용 등 선수들은 “전희철 어딨어?” “왜 이렇게 말이 많아”라며 기자회견장에 난입해 샴페인을 전 감독에게 뿌렸다. 전 감독은 워니가 들고 있던 샴페인을 “내놔” 하며 뺏어 한 모금 마시기도 했다. SK의 감독과 선수 간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낸 장면이었다.
10일 오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21-2022 프로농구 서울SK와 안양KGC인삼공사의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서울SK가 승리,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시상식 후 진행된 골대 그물커팅 세레머니에서 전희철 감독이 단 위에서 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잠실=김민규 기자 kim.mingyu@joongang.co.kr /2022.05.10/ 전희철 감독은 ‘밀당의 고수’다. 당근만 주지 않았다. 전 감독은 수원 KT와 3라운드 맞대결에서 큰 점수 차로 뒤지자 작전타임을 부르고 “턴오버하면 게임 안 할 거야?”라며 선수들을 크게 질책했다. 김승기 KGC 감독은 “전희철 감독이 코치 생활을 오래 한 것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며 “모래알처럼 흐트러지는 팀이었는데 (선수들을) 하나로 만들었다”고 짚었다.
전희철 감독은 SK의 강점을 더욱 강화했다. 문경은 전 감독이 가드 김선형을 중심으로 만들었던 공격 농구 기조를 이어갔다. 워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김선형과 최준용을 앞세운 속공 농구(경기당 6.9개·리그 1위)를 펼쳐 완성도 높은 공격을 구사했다. 시즌 초 김선형도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여러 선수가 점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팀이 됐다”고 했다.
김진 전 대구 동양 오리온 감독 이후 KBL 두 번째로 감독 부임 첫해 통합우승을 이끈 전희철 감독은 선수단을 앞에서 이끄는 리더가 아니라 뒤에서 관리하는 '매니저 리더십'을 보였다. 그는 “통합우승으로 물음표 세 개를 지웠는데, 나는 숟가락만 얹은 것”이라며 “SK는 매니저가 되는 게 맞더라. ‘나를 따르라’면서 누르는 형태로는 선수들을 이끌 수 없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