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슈퍼 히어로들이 구하겠지만, 대혼돈에 빠진 ‘닥터 스트레인지2’는 구할 방도가 없어 보인다.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4일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2016년 ‘닥터 스트레인지’를 소개한 지 약 6년 만의 후속작이다. 이 사이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 분)는 어벤져스에 합류해 타노스를 무찌르고 지구를 구했고, 세상을 떠난 아이언맨을 대신해 스파이더맨의 조력자 역할을 하기도 하며 성장했다. 인성도 능력도 한층 업그레이드된 닥터 스트레인지가 멀티버스 속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에 대한 관심은 국내에서도 뜨거웠다. 이 영화는 개봉 전 100만 명의 사전 관객 수를 돌파하며 팬데믹 이후 최고 기록을 썼다.
하지만 정작 베일을 벗은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관객들의 높아진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키기 어려워 보인다. 지나치게 많은 잔가지 때문이다. 마블의 페이즈 4를 여는 작품으로서의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다 되려 정작 주인공인 닥터 스트레인지를 주변부로 밀어버리는 느낌이다. 슈퍼 히어로로서의 파워도, 심지어 분량도 스칼렛위치(엘리자베스 올슨 분)에게 밀려 누가 주인공인지 헷갈릴 정도고, 그나마 있는 분량의 상당 부분을 이번 영화에서 새롭게 등장한 아메리카 차베즈(소치틀 고메즈 분)와 관계를 맺는 데 소비해 영 힘이 빠진다.
앞서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통해 여러 카메오의 등장에 관객들이 열광한다는 걸 눈치챈 마블 스튜디오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도 여러 반가운 얼굴들을 끼워 넣었다. 하지만 그 활용은 너무나 아쉽다.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도 못한 채 우스운 꼴을 당하는 히어로들은 그 히어로들을 사랑한 관객들에게 상처가 될 정도다. 다른 영화에서 멋진 활약을 보여줬던 캐릭터들을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위해 무례하게 소비하는 느낌마저 든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때부터 어벤져스로 함께해온 가련한 완다 막시모프(스칼렛 위치)의 묘사도 아쉽다. 엘리자베스 올슨은 일인 다역을 소화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완다의 일렁이는 내면을 연기한다. 하지만 샘 레이미 감독은 그런 완다를 마치 공포 영화의 주인공처럼 묘사하며 캐릭터에 대한 의문을 가중시킨다. 마치 ‘닥터 스트레인지’에 샘 레이미 감독의 전작들인 공포물 ‘그루지’, ‘부기맨’, ‘이블데드’ 등이 섞인 것 같다. 앞서 이 영화는 마블 역사상 가장 무서운 작품이 될 것이 예고됐고, 그건 확실히 사실이다. 질질 끌다 갑자기 놀라게 하고,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주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지 않는 주인공들이 영화에서 계속 반복된다. 한, 두 번은 재미있지만 여러 번 반복되면 지겨울 뿐이다. 후반부가 되면 개연성보다 공포스러운 장면을 넣는 것에 감독이 더 집착했던 건 아닌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슈퍼 히어로물에 엉성하게 공포물을 섞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