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동계 올림픽의 살아있는 전설 아리아나 폰타나. [연합뉴스] 최민정(24·성남시청)의 금메달이 더 빛난 건 아리아나 폰타나(32·이탈리아)라는 '멋진 조연' 덕분이었다.
폰타나는 16일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승에서 2분17초862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가장 빠르게 결승선을 통과한 최민정(2분17초789)을 마지막까지 추격,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지난 5일 혼성 계주 은메달, 7일 500m 금메달에 이어 대회 세 번째 메달을 따내며 베이징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폰타나는 개인 통산 올림픽 메달을 11개(금 2개, 은 4개, 동 5개)까지 늘려 아폴로 안톤 오노(미국) 빅토르 안(러시아·이상 8개)을 제치고 쇼트트랙 올림픽 최다 메달리스트가 됐다.
폰타나는 이탈리아 쇼트트랙의 살아있는 역사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 2018년 평창에 이어 베이징까지 5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 매 대회 하나 이상의 메달을 획득했다. 15세 10개월의 나이로 출전한 토리노 대회에서는 여자 3000m 계주에서 이탈리아 동계올림픽 최연소 메달 획득 기록을 갈아치웠다. 밴쿠버 대회에서는 이탈리아 선수로는 사상 첫 쇼트트랙 개인전(500m) 메달을 따냈고, 평창 대회에서는 개인 첫 올림픽 금메달(500m)로 '2인자 징크스'를 털어냈다.
베이징 대회를 앞두고선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서른 살을 넘긴 나이에 최민정처럼 열 살 가까이 젊은 선수들과 경쟁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500m에서 폭발적인 순간 스피드를 앞세워 대회 2연패를 달성했고, 1500m에서는 노련한 뒤집기로 메달 색을 바꿨다. 5위권에서 레이스하다 세 바퀴를 남겨 놓은 시점부터 치고 나가 최민정과 우승을 경쟁했다. 탁월한 기술에 풍부한 경험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최민정이 16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승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금메달을 확정한 뒤 태극기를 어깨에 두른 채 은메달 이탈리아의 아리안나 폰타나와 포옹하며 축하를 받고 있다. 최민정은 쇼트트랙 1500m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연합뉴스] 동·하계 올림픽을 통틀어 이탈리아 개인 최다 메달리스트는 13개를 획득한 에도아르도 만자로티(펜싱)다. 폰타나가 2026년 자국에서 열리는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 대회에서 메달 3개를 추가한다면, 이탈리아 스포츠 역사를 새로 쓸 수 있다. 워낙 개인관리가 철저한 선수인 만큼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관건은 이탈리아 빙상연맹과의 해묵은 갈등이다. 평창 대회부터 이탈리아 빙상연맹은 폰타나가 미국인 남편 앤서니 로벨로 주니어를 코치로 선임한 것에 대해 부정적 의사를 밝혀왔다. 폰타나는 베이징 대회를 이탈리아가 아닌 헝가리에서 따로 준비했다. 500m 2연패를 달성한 뒤에는 공식 기자회견에서 "그들은 내가 남편을 코치로 두는 걸 원하지 않았지만, 오늘 그가 최고의 코치임을 증명 했다"고 작심 발언을 하기도 했다.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폰타나는 "500m 종목에서 세 번째 금메달을 노리나"라는 질문에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다시는 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부정적 의사를 내비쳤다.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평창 대회 이후 빙판 위에서 자신을 의도적으로 공격한 남자 선수들이 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로이터는 '(갈등이 지속하면) 이탈리아가 홈에서 열리는 2026년 올림픽을 폰타나 없이 치러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