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킹' 이승엽도 '양신' 양준혁도 아니었다. 사자군단 역사상 100억원 계약을 따낸 첫 번째 선수는 구자욱(29)이었다. 구자욱은 3일 삼성 라이온즈와 5년 최대 120억원(연봉 총 90억원, 인센티브 30억원)에 계약했다. 구자욱은 올 시즌 뒤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릴 예정이었지만, 이번 계약으로 2026년까지 삼성 유니폼을 입게 됐다.
총액 100억원 계약은 리그 역대 10번째이며 삼성에선 처음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해 7월 FA가 아닌 선수들의 다년 계약을 허용했고 12월 박종훈과 문승원, 한유섬(이상 SSG)에 이어 구자욱이 리그 네 번째 비(非)FA 다년 계약에 사인했다. 총액으로는 구자욱이 역대 비FA 계약 중 최대 규모다.
구자욱은 대어급 예비 FA로 분류됐다. 지난해 139경기에 출전, 타율 306(543타수 166안타) 22홈런 107득점 88타점을 기록했다. 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데뷔 첫 골든글러브까지 수상,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렸다. 호타준족 외야수로 나이도 젊어서 여러 구단이 눈독 들였다. 구자욱은 FA 권리 행사를 포기했지만 삼성으로부터 섭섭하지 않은 조건을 제시받았다. 그의 2021년 연봉은 3억6000만원이었다.
구자욱은 매년 연봉 협상이 난항이었다. 프로 두 번째 시즌이던 2016년부터 연봉 관련 잡음이 꾸준히 흘러나왔다. 2019년에는 연봉 협상을 앞두고 구단에 권리를 백지 위임했다. "알아서 달라"는 백지위임은 상호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지만, 구자욱의 백지위임은 누적된 연봉 불만에 대한 시그널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구자욱은 2020년에는 스프링캠프가 시작하기 전까지 연봉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아 대구에서 개인 훈련을 하다 가까스로 도장을 찍었다.
이번 겨울에도 팽팽한 협상이 예상됐다. 일찌감치 구단 안팎에서 구자욱의 희망 연봉이 최소 6억원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직전 연봉 대비 67% 정도가 인상된 고액이었다. 간극을 어떻게 좁혀가느냐가 관건이었는데 삼성은 파격적인 비 FA 5년 계약으로 선수의 마음을 샀다. 최근 주전 중견수 박해민(현 LG 트윈스)이 FA 이적한 삼성으로선 구자욱까지 뺏길 경우 외야진을 재편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었다.
홍준학 삼성 단장은 일간스포츠와 통화에서 "처음부터 다년 계약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1월 첫 협상을 할 때 선수에게 의사를 물어보니 '나쁘지 않다. 고맙다'는 얘길 하더라.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논의가 진행됐다"며 "지난해 활약이 기준이라면 이 정도 계약은 가능하다고 봤다. 20대 외야수 중에서 20홈런을 친 선수가 몇 명 되지 않는다. 이제 전성기에 접어드는 선수다. 나이가 무기"라고 말했다.
구자욱은 "삼성을 떠난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좋은 조건을 제시해 주신 구단에 감사드린다. 앞으로 팀이 강해지는 데 집중해 매 경기 최선을 다하겠다. 팬 여러분께도 감동을 드릴 수 있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